권위에 따르려면 스스로 판단하라
사람을 지배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는 비합리적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는 지배하는 측의 압도적 영향력과 이 권위에 따르는 사람의 불안이 필요하다.
인간은 '인간관계'라는 끈을 이어가며 살아간다. 부모. 자식관계로 시작해서 사회 관계망에 이르기까지 현대사회의 복잡한 면면에는 수많은 관계의 틀 안에서 움직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관계의 속내에는 다양한 '의존과 지배'가 난무하고 있다.
우리는 성공(칭찬)이라는 목표에 매달리고 나에 대한 평가에 전전긍긍하며 나 자신의 감정을 돌보기보다 타인지향형 인간으로 살아간다. 불편하고 억울해도 참게 되고 그들의 평가에 훈련되어 가는 것이다. 스스로 판단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주어진 일만 착실하게 수행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배라는 불안에 굴복하는 것이 편하다고 수용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의존을 택하는 것이다.
이 책은 '미움받을 용기'로 유명한 '기시미 이치로'가 썼다. 읽는 내내 '인간관계'로 힘든 사람들을 위해 처방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이 나를 싫어해도 두려워하지 말고 사는 것은 가장 나다운 삶이라는 말하는 이 책은 '미움받을 용기'의 후속작품이라고 보면 좋겠다.
현재 맺고 있는 모든 관계(부모, 형제, 친구, 조직 등)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필요해 보인다. 읽은 내내 내담자가 된 기분으로 읽었던 것 같다. 진정성 있는 진단과 위로 그리고 왜 우리는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깨닫게 해 준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가장 강력한 권력인 부모라는 양육자를 만난다. 절대적 의존기를 거치며 우리는 인간의 심리상태를 배우게 된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의존심이라고 한다. 특히 신경증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이로운 관계를 배우지 못하고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저자는 정신과 의사 '로널드 랭'의 '속성부여'라는 개념을 인용했다. 속성부여란 어떤 사람에게 주어지는 속성이 그 사람을 한정 짓고 특정한 경지에 가둬두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엄마가 아이에게 '넌 엄마를 좋아하지 않니?'라고 질문했다고 했을 때, 아이가 '그렇다'라고 반항했다고 하자. 이때 엄마는 '그래도 난 네가 날 좋아한다는 걸 알아'라고 말하는 것은 '속성부여'라는 것이다. 이것은 넌 순종해야 하며 부모에게 대들거나 반항하는 아이가 아니라는 속성부여다.
정신적 지배자로부터 작든 크든 성격형성이 시작되는 아이에게 '너는 좋은 성적을 받을 거야' 또는 '착한 아이로구나'라고 말했을 때 아이는 좋은 성적을 받는 아이거나 착한 아이로 한정되는 것이다. 납득이 가지 않아도 거역하지 않게 되고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공동체 생활인 경우라면 권력자(교사, 조직의 장)는 권위를 무기로 공동체의 화합과 질서를 강조하며 다수의 이익에 소수의 의견을 배제하는 식으로 운영되는 것이다.
지배와 의존은 함께 다닌다.
독재자들이 시민을 지배하는 방법은 불안과 공포의 이용이라고 한다. 불안은 인간을 초조하게 만들고 초조는 인간을 충동적으로 만들어 비합리적인 일에도 쉽게 몸을 맡기게 된다. 나를 정신적으로 지배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반증이라 보아야 한다.
좋은 부모자식관계라고 말할 때 좋은 부모자식관계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고 반항하지 않는 자식관계일 때만 가능하다. 만약 내가 부모와의 관계가 불편하다면 더 나은 관계 맺기를 위해 해로운 관계인지 점검해봐야 한다. 조직관계도 마찬가지다.
'불안에 사로잡힌 당신에게'의 저자 '가토 다이조'는 "나는 이런 말을 듣고 싶다."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는 자립적 욕구가 정립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기초에서 상대가 어떤 점에서 억지를 부리는지, 어떻게 주장을 펼치는지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습관적인 지시와 규칙이라 불리는 것에 순응하는 것이 불편한 마음보다 우선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감시받고 지배받는 것에 유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시켜야 하는 사람들이다. 잠자코 따라주면 지배자는 고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자기 없이 사는 사람들이다. 미움받을 용기는 깨닫지 못하면 갈등조차 하지 않는다. 지배받으며 사는 것이 편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신을 속이고 있다.
복종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합리적 권위를 가진 교사에게는 자율적 복종을 한다. 그것은 지식과 능력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성적이며 보편적이다. 생각하지 않고 안이하게 답을 구하는 의존적 사람들은 비합리적 권위 앞에 그들의 판단을 수용한다. 타율적 복종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양 떼들처럼 몰려다니지 말고 스스로 판단해서 살자. 불편한 관계에 칼을 대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만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가려는 인생의 프레임을 넓게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타인과 무관하게 살지 않는다. 나의 선한 의지는 당장은 불편하고 성과가 없다고 하더라도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틸 수 있다. 다른 사람과 비슷한 삶을 산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