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사람만이 희망을 소유한다
나는 내가 되어 살아간다. 인간의 운명이다. 개별적인 존재로서 살아가야 하는 이상 인간은 서로 다름이 원칙이다. 굳이 무리해서 다름을 부각할 필요는 없겠지만, 타고난 유전자가 다르므로 살아가는 취향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내겐 인상 깊게 읽었던 '계로록(戒老錄)_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의 저자 '소노 아야코'씨의 삶에 대한 사유를 엿보는 에세이집이다.
'계로록'을 처음 집필할 당시가 그녀 나이 40세였다. 40대에 다가올 노년에 대비하여 경계할 것을 메모했다는 것 자체로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책은 대략 10년 단위로 세 번의 개정이 이루어졌다. 작가는 먼저 노인들의 흠집을 들추어내기 위해 쓴 것이 아님을 밝혔다. 스스로 노년이 되어서 경계해야 할 것들을 기록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노인이 경계해야 할 세 가지를 그녀는 노욕, 노추, 노망이라고 정의했다. 남이 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유아적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어떤 연유로 그녀 자신을 이렇게 단단하게 만들었을까 궁금해진다. 저자는 폭력적인 아버지, 불화로 인한 이혼가정에서 자랐다. 선천적인 고도근시로 살다가 50대에는 '중심성 망막염'이라는 치명적 진단까지 받게 된 불행의 아이콘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현대의 의학기술 덕분으로 성공적으로 수술을 받았지만, 안경 없이 세상을 또렷이 본 행운은 반늙은이가 된 후였다.
괴로운 가정환경과 불행한 신체를 가지고 살아야 했던 그녀의 글은 감사하게도 결코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일찍 시작된 불행과 고통은 그녀에게 운명의 수레바퀴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진 듯하다. 부모를 선택하고 태어날 수 없듯이 운명 또한 선택할 사항이 아니라는 수용적인 태도는 일찌감치 험난한 세상을 냉정하게 바라볼 줄 아는 단단함을 형성하게 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인간이 나약한 존재임을 문학작품을 통해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만약 그녀가 환경적 불행 앞에서 자신의 인생을 저당 잡히며 살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사람들은 유전적 특질이나 양육환경 등으로 자신의 인생이 결정되었다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놓친 부분을 그녀는 짚어냈다. 내면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그것이 책이었다는 사실이 나는 굉장히 반갑게 읽혔다. 책은 그녀의 삶의 방향을 스스로 개척하게 만든 매개체였다. 나 역시 빈번한 부모의 전쟁같았던 싸움과 노동처럼 느껴진 집안일을 잊을 수 있었던 것은 독서라는 공통점이 있다.
인간이 나약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부모는 완벽하지 않다는 결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고 나약하고 약간의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려 든다. 남의 불행이 내 불행이 아닌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의 위대함은 인생의 진리를 깨닫는 순간으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그녀의 마음을 깊이 공감하고 있다. 그녀는 불행이야말로 재산이라고 말한다. 고통을 경험한 사람이야 말로 별것도 아닌 일에 고마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쓰라린 운명의 선물인 것이다. 그녀의 불행에 대한 고찰이 잘 드러난 글이 있다.
인간은 비극적인 체험을 통해 진리에 도달한다. 나는 옛날부터 그렇게 생각했다. 질병, 빈곤, 차별, 폭력에 따른 불안한 생활, 전쟁, 이런 것들은 바람직하지 못한 환경이다. 세상에서 근절시키려고 다 같이 노력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이런 비극적인 체험이 위대한 성과의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불행은 엄연한 사유재산이다. 불행도 재산이므로 버리지 말고 단단히 간직해 둔다면 언젠가 반드시 큰 힘이 되어 나를 구원한다.
언제나 밝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지나치게 자신감이 넘쳐있다. 그들은 행복이란 노력에 의해 얻어진다는 믿음을 확고하게 갖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인간세상은 영원히 성공하도록 놔두지 않는다. 저자는 운명이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의심 한 점 없는 생각은 망상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우리가 인생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순탄한 행복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비협조적이고 게으르고 유복하지 못하고 병마와 싸울 때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운명에 패배하는 법이다.
버트런트 러셀의 '행복의 정복'을 읽어보면 행복에 대한 고찰보다 불행에 대한 원인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행복은 제각기 만족도가 달라 규정짓기가 모호하지만 불행의 원인은 대체로 정확히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불행의 탐구는 체념의 단계에 도달할 수 있고, 불필요한 욕심을 버릴 수 있으며, 드디어 자아의 확대가 가능해진다고 러셀은 말한다.
결국은 '나답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남과의 비교를 중단하고 나의 생활을 키워 나가는 나만의 '기호'를 발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불행의 가치를 인정하고, 고통을 마주하고 불행을 탐구하며 살아야 한다. 쓰고 나니 참 따분한 말이다. 하지만 이 또한 고통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의 핀잔으로 들릴 것을 나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