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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살고, 죽고, 기억되고, 잊힌다


젊은 시절, 세상은 노골적 이게도 섹스를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나중에는 사랑을 아는 사람과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그 후에도 여전히, 세상은 슬픔을 견뎌낸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으로 나뉜다. 이런 분류는 절대적인 것이다. 이는 우리가 가로지르는 회귀선이다.





2008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던 시기 '줄리언 반스'는 30년을 함께한 아내를, 자신의 삶의 심장과 같다고 표현한 아내를 잃었다. 그의 모든 소설의 첫 장에는 항상 그의 아내 '팻에게 바친다'라는 헌사로 시작하는 것처럼 그에게 아내는 삶의 전부였다.



삶의 전부였던 그녀가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았을 때 처음 받은 충격을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지금 막 얼음처럼 차가운 북해에 빠졌는데 생존을 유지해 줄 장치는 우스꽝스러운 코르크 오버재킷 한 벌뿐인 것과 다르지 않다'라고.



영국 문단에서 '팻 캐바나'는 수많은 작가들의 영감의 대상이었던 '뮤즈'였다고 단언될 만큼 차지한 위상이 대단했던 것 같다. 그런 그의 평생 문학적 동지이자 에이전트였던 아내가 뇌종양으로 급작스레 떠났을 때 충격은 상상도 힘들다. 그가 아내의 죽음 이후 5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회고록이자 자신의 내면을 그린 에세이를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독서의 연결고리는 항상 우연처럼 다가오는데, 이 책은 얼마 전에 읽은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의 글의 구성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시작되었다. 먼저 나는 사별에 대한 회고록에 그 구조를 사용했다니 놀라웠다.



저자가 회고록을 내놓은 시점이 5년이었다는 것은 아내 사별 후 5년이 되어서야 떠돌이 행성이 정상궤도로 진입되었다는 의미기도 했다. 이렇게 표현하면 거칠지만 확실히 느지막이 복귀한 셈이다. 그만큼 순도 높은 순애보다.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는 소설 속에 '논픽션(소설 속 화자의 산문)'을 삽입해 놓았었다. 그는 진실을 탐구하는 르포르타주 형식을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을 깨기 위한 배경으로 썼다. 그것은 소설의 형식에서 신선한 충격 구성이었는데, 한 사람을 알고자 할 때 이해를 교정하는 단계를 수없이 거치고 더 이상 교정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러서야 확신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는 의미를 역발상 한 구성이었다.



아내의 죽음을 간신히 인정한 '줄리언 반스'는 그녀에 대한 회고록은 보다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녀에 대한 사랑에 대해 근본적 물음은 역사적 깊이로 올라갔고 인간의 쓸데없는 욕망으로 추락한 기구의 죗값이라며 절망했다.



반스는 글을 쓰기 위해 하루이틀 떨어져 지내야 하는 시간에도 도덕적으로 그녀를 그리워하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사랑은 진정함과 진실을 요청하는 행위이며, 도덕적이지 않을 때는 극대화된 쾌락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무신론자이고 논리적이고 아내와의 생활패턴에 완전히 정착해 있던 그가 비탄의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자살을 구상하는 대목을 읽을 때는 예상했지만 꽤 충격을 받았다. 그의 치밀한 계획은 완벽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없는 궤도 밖 현실은 새로운 지형에 떨며 서있는 고아로 보였다.



비탄은 시간을 바꾼다. 시간의 길이를, 시간의 결을, 시간의 기능을 바꿔놓는다. 오늘 하루가 내일과 전혀 다르지 않게 돼버린 마당에, 굳이 각각의 날들에 별도의 이름을 붙여야 할 이유가 있을까? 공간 또한 바뀌게 된다. 우리는 새로운 지도 제작법에 의거해 측량된 새로운 지형에 들어서게 된다.




이 책은 장르적 성격이 다른 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첫 번째 이야기는 기구의 개척자이자 초창기 사진가인 '나다르'의 실제 역사다. 기구를 타고 '신의 공간'이었던 하늘을 날았고 그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인류의 자리를 천상으로 옮겨놨던 '나다르'는 바람둥이였으나 애처가이기도 했다. 아내가 죽자 하늘의 삶을 포기한다.



두 번째 이야기는 기구 광신자 '버나비'와 그의 로맨스를 그린 이야기다. 사랑으로 비상과 합일하고자 했던 버나비의 꿈은 추락과 함께 처참히 끝난다.



모든 사랑 이야기는 잠재적으로 비탄의 이야기이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기구를 타고 비상하는 꿈을 꾼다. 그렇게 기구는 사랑의 전제조건이 되며 신의 자리에 오르지만 바람에게만 의지하는 기구의 운명은 추락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푹신한 착륙지는 결코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겐 사랑의 패턴이 존재한다. 그것은 둘만의 습관으로 존재하기에 사별의 아픔이 다가왔을 때는 무방비로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저자는 무신론자였고, 나다르의 위치(신의 공간)를 얻었다고 믿었기에 추락 시 기댈 수 있는 정신적 의자도 없는 처지였다.



이제 그는 사별을 극복하느냐, 무의미하게 살 의미를 찾지 않느냐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이는 남아있는 모든 이들의 궁극적 문제라 볼 수 있겠다. 그는 사별을 경험한 수많은 친구들과 지인들로부터 위로를 받다가 문득 이렇게 결론짓는다.



'사별의 슬픔에 젖은 사람은 우울증에 걸린 게 아니라, 다만 적절하게, 합당하게,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슬픈 것'이라고.



'반스'는 철저히 고통을 느끼고 때론 고통을 즐기기도 하는 행위(자기 학대가 아니다)는 아직 잊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고통은 기억에 풍미를 더해주고 고통은 사랑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그 고통도 힘든 비탄의 시간과 충분한 애도의 과정을 지나면 서서히 멈추는 어떤 발전이 이루어졌음을 알리는 순간이 찾아온다고 고백한다.



배우자의 죽음을 다행히 나는 경험하지 않았다. 죽음에는 순서가 없지만 독서는 항상 나의 시선에서 느끼는 거니까.. 독서는 상상하게 만들고, 삶을 공유하는 상대를 가치 있게 바라보게 만든다. 사랑의 강도와 상관없이 우리는 언젠가 떠나보내야 하고 비통하게 기억하고 잊힐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힘든 시간도 멈춘다. 아내를 그토록 사랑했던 그가 한 말이니 믿어보자.



단 하루도 거르는 법 없이 주체할 수 없게 흐르던 눈물이 멈출 때, 다시 집중력을 회복해, 전처럼 책 한 권을 다 읽을 수 있게 될 때, 휴게실 공포증에서 벗어날 때, 유품을 처분할 수 있게 될 때, 그리고 그런 다음에는? 당신은 무엇을 기다리고, 기대하고 있는가? 인생이 오페라에서 사실주의 소설로 돌아가는 때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 줄리언 반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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