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매국 세력과의 역사전쟁
만약 당신의 어린 자녀들이 "아빠 엄마, 우리는 어떻게 일본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어요?" 하고 묻는다면 이렇게 당당히 답하라. "미국이 일본에 승리하면서 우리가 독립된 것도 사실이지만, 독립지사들의 가열한 독립운동이 우리의 완전한 독립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단다. 그래서 우리는 독립운동가를 존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단다."
일부 극우성향의 목소리로 치부하고 주목받지 못하던 뉴라이트들이 윤석열 정부시절에는 전성시대를 맞이했다. 정치와 권력의 힘은 언론, 사학, 교육, 노동 등 정부 주요 기관의 요직에 뉴라이트 인사로 채워진 것이다.
역사기관에 대한 제도적 장악은 단순한 인사교체를 넘어 역사적 기억을 조직적으로 왜곡하고 역사 서술의 근본적 패러다임을 변경하려는 체계적 시도였다고 보인다. 국사편찬위원회, 독립기념관, 근현대사 연구소 등 핵심 기관들에 특정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인사들이 전략적으로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청년소년들의 역사 인식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은 국가의 미래를 근본적으로 위협한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럽다. 최근 국회 교육위원회는 '리박스쿨' 관련 청문회를 열었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업적을 바로 세우겠다는 명분으로 설립된 역사 교육 단체인 리박스쿨이 방과 후 수업인 늘봄학교 강사로 배치된 것이 드러난 것이다.
'황현필의 진보를 위한 역사'는 이들(뉴라이트)과의 역사전쟁을 선포하며 나온 책이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닌 현재를 이해하는 거울이라고 말하는 그는 조직적으로 역사의 기억을 왜곡하는 집단의 위험성을 깨닫고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이 책을 발간했다고 고백한다. '역사바로잡기 연구소장'이기도 한 그는 대한민국에서 올바르게 산다는 것은 결국 우리 모두가 역사의 주체로서 역사에 책임을 다하는 자세라고 보고 있다.
서두에 저자는 그들이 주장하는 왜곡된 역사인식의 근거를 조목조목 반박하기 위해 이 책을 완성했다고 말한다. 책의 목차를 먼저 읽으며 이들이 주장하는 역사왜곡이 너무 많아 놀랐고 이어 반박하는 그의 뜨거운 애국심과 그들을 바라보는 분노 섞인 마음이 감정이입되어 내 가슴도 뜨거워졌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 감정이었다.
뉴라이트의 역사관은 크게 식민지근대화론, 이승만 건국론, 박정희 부국론을 주장한다. 조선을 비하하고 독립운동을 부정한다. 세종대왕을 추락시키고 독립운동의 상징인물인 김구를 죽이려고 노력한다. 조선의 광복 없이는 우리 민족 구성원 누구도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한 독립운동가들을 이들은 폄훼한다. 그렇게 해야만 식민지근대화론과 이승만 건국론이 설득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가해자는 옳았고, 피해자는 바보였다는 논리를 펼친다. 우리나라 스스로 일어설 수 없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비로소 근대화를 이뤄냈다는 것이다. 이들은 역사적 접근이 아닌 경제학적, 정치학적으로 역사를 재단한다. 역사적 사실을 취사선택하여 관념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저자는 조선의 문헌뿐만 아니라 중국 및 해외 관련 기록을 비교, 검토하여 사실 개연성이 확실한 자료들로 이들의 거짓된 날조 역사의식을 혼내주고 있다. 여러 주장들을 사진과 함께 반박할 수 없을 만큼 논리적이고 투쟁하듯 보여줘서 속이 다 시원했다.
민족의 정체성을 인식하려면 당시의 군상의 감정과 생각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이들에겐 이것이 생략되어 있다. 특히 가장 문제가 되는 친일감정을 옹호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은 굉장히 위험하기 짝이 없다. 뉴라이트가 추종하는 비뚤어진 역사관의 출발점이기도 한 식민지근대화론을 제대로 인식해야 하는 이유를 저자는 수없이 반박했지만 중요한 몇 가지만 정리해 보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시각적으로 비치는 근현대의 조선의 모습을 뉴라이트는 일제강점기의 시기로 이용한다. 조선과 대한민국의 과도기에 일제강점기가 있었다 보니 일제강점기에 마치 큰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는 일종의 착각이며 선입견이다. 역사왜곡은 그럴싸하게 뭉쳐 완성된 논리다.
일제강점기에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모든 변화는 국권이 피탈되기 이전의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에서 있었던 변화였다. 하필 그 시기에 국권을 강탈당했을 뿐이다.
조선 후기에 이미 우리나라는 서구문물 도입 및 의식주에 이미 변화가 있었다. 우리 민족의 역사도 보편적 역사법칙에 따라 발전해 왔고 외부에서 이식하지 않아도 자본주의 단계로 이행하는 중이었다는 의미다.
- 전환국(화폐제조), 기기창(무기제조), 우정국(우편사무) 모두 1880년대 설립되었다.
- 1887년 경복궁 내 건청궁에 전등을 켜질 수 있었던 것 역시 발전설비 갖춰졌다는 뜻이다.
- 1894년 1차 갑오개혁의 시작은 일본의 내정간섭의 일환으로 타율적인 진행이었지만 청. 일전쟁으로 일본은 조선에 신경을 쓰지 못한 시기이기도 했다. 이때 조선은 동학농민운동의 주장을 적극 받아들인 급진개화파의 의지로 자발적 평등사회로의 개혁을 하게 된다.
- 조선은 신분제 폐지, 고문 형벌금지, 연좌제 금지 등 자율적 개혁이었고 반발 역시 적었다.
-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자 일본은 2차 갑오개혁을 단행했고 일본인의 입맛에 맞추어 친일적 색채를 강화하는 개혁을 단행하게 된다.
일본근대화론이 설득력이 없는 과학적 증거로 저자는 일제강점기 전후 조선인의 키를 예로 든다.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일제강점기 때 오히려 조선인의 평균신장이 줄어든 것이다.
조선인은 곡물 섭취량이 많아 일본인 보다 월등히 키가 컸다. 조선인은 대식가로 690g(밥그릇 2배, 7홉)을 한 끼에 소화했다. 당시 일본인은 조선의 1/3 정도 먹었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전까지만 해도 두 끼만 먹던 그들이 일제강점기 때에야 비로소 세끼로 정착한 것이다.
저자는 2012년 조선시대 유골 116명을 연구한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조선인 남성 평균키는 161cm였고 일본인 남성은 154cm였다고 하니, 일본인이 키가 작다는 왜(倭)라는 의미가 여기서 발현된 것으로 추측되는 바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전후 상황이 전복된다. 일제강점기 이후 조선인 키가 3cm 줄어든 반면 일본인들은 더 커졌다. 1920년에 실시한 '산미증식계획' 실시로 조선의 쌀을 터무니없는 값으로 수탈하듯 일본으로 수출했기 때문이다.
고종 폐위(1907년) 전까지 일본은 조선의 땅에서 수많은 전쟁(임오군란,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치르며 야금야금 각종 이권을 챙겨가더니 1910년 주권을 강탈한 이후는 더욱 심해졌음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농민들은 토지를 강제로 빼앗겼고 강제징용, 징병, 투옥과 고문으로 수많은 조선인이 고통을 받았고 민족의 정체성을 말살하는 창씨개명, 신사참배 강요, 조선어 사용금지가 강행되었다.
조선전기(임진왜란 발발 전까지)까지 조선은 같은 시기 유럽, 중국보다도 압도적으로 편안한 삶을 영위했다. 민본을 이해했기 때문에 평온했다. 반면 일본의 전국시대는 잦은 전쟁으로 인간생명을 경시했다. 백성사랑의 개념 없이 칼의 문화만 전개해 온 일본이 메이지 유신 이후 급격한 근대화와 부국강병을 무기로 조선을 침략했고, 조선은 끝내 일본의 불법적이고 강압적인 식민지배를 당한 것이다.
일본은 자국민조차 수탈의 대상이었던 침략자 DNA를 가지고 있는 민족이다. 전쟁이 난무하던 시기 군인들은 침략한 마을을 공격하여 여성과 아이를 납치해 자신들의 노예로 삼기도 했고, 유럽 각지에 팔린 여성 노예가 5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인신매매 금지령을 내렸고 5년 뒤 조선을 침략하게 된다. 일본인은 조선의 침략을 조선인 사냥(노예전쟁)이라 말한다. 이들이 우리의 근대화를 위해 식민지지배를 했다고 믿는 자들은 무슨 정신 상태인가. 일본의 식민지배는 결코 근대화가 아닌 체계적 수탈의 역사란 사실을 더 이상 논쟁해서는 안된다.
또 뉴라이트들은 식민지근대화론을 통해 일제강점기를 미화하기 위해 김구를 테러리스트로 묘사한다. 이는 독립운동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발언이다. 독립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김구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헌법 전문 첫 줄에는 3.1 운동의 영향으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쓰여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ㆍ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 헌법 전문 일부
저자는 친일파와 이승만 추종자들은 김구에 대한 열등의식이 있다고 진단했다. 왜냐하면 이승만은 초대 대통령이었지만 탄핵당한 대통령이고, 김구는 임시정부의 고난을 끝까지 함께하며 훗날 충칭 임시정부에서 주석의 자리에 올라 임시정부의 상징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아픔을 공감하는 능력이 상실된 집단이기에 일제강점기에 수탈당한 조선인에 대한 연민이 없으며, 이승만에 의해 희생된 수많은 민간인을 빨갱이로 취급하는데 서슴지 않는다.
뉴라이트가 미국을 찬양하는 이유 중에 미국이 일본에 승리하면서 우리가 독립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완벽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독립지사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의 독립은 국제사회로부터 약속을 받아내지 못했다. 즉 일본이 패망했어도 즉각적 독립은 어려웠다는 이야기다. 오히려 일본과 묶여 패전국과 전범국 취급에 놓였을 수도 있다.
독립운동가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승리하고 일제가 패망했더라도 1945년 8월 15일 우리의 즉각적인 해방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카이로선언(1943년)에는 일본이 패망하더라도 제1차 세계대전 발발(1914년) 이후 식민지된 나라만 독립시킨다는 표현이 있다. 우리는 1910년에 식민지가 되었기 때문에 일본이 패망했어도 독립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김구는 '장제스'에게 카이로 회담 시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확약을 요청했고 승낙을 받아 부록에 별도조항에 넣었기에 가능했다.
저자는 많은 부분 일본강점기에서 비롯된 역사왜곡이 해방정국 이후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자신들의 이권에 매몰되어 반민족 행태를 벌인 것에 분노하며 열거하고 있다.
단순한 정보오류를 넘어 국가에 대한 정신적, 문화적 이해를 근본적으로 왜곡하는 뉴라이트는 역사를 왜곡하며 대한민국의 전체성을 뒤흔드는 단체다. 역사 바로 세우기는 시민사회, 학계, 교육기관 모두가 합심해서 역사 서술을 제대로 복원하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