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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고전의 숲

별은 어둠의 깊이를 탓하지 않는다



모든 실패에는 이유가 있다. 그것을 아는 자는 흔들리지 않는다.


- 관중 <관안열전>




삶의 방향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들, 경쟁과 비교에 지치고 노력해도 실패만 반복하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방향성을 조용히 건네는 고전이야기다.



저자 강경희 씨는 대학부터 박사학위의 모든 과정을 중국 고전문학을 이해하는 데 시간을 보냈고 이어 수십 년간 동양 고전과 문학을 주제로 강의해 온 수재다. 저자는 고전에서 얻은 깊은 지혜를 대중의 언어로 풀어 간결하면서도 풍부한 언어로 전달하려 노력했다. 고전의 어원과 배경 그리고 사상가의 성향(맥락 이해)을 설명하고 방향을 잡는 형식을 취했는데 이는 글의 줄기가 튼튼하다는 의미다.



자본주의체제는 성공한 사람에게 부를 집중하게 만들었다. 이는 성과와 효율을 중시하는 능력주의를 양상 했고 성공을 향한 끝없는 경쟁을 부추겼다. 성과에 따른 상대 평가에서 뒤처지면 실패자가 되는 식의 구조다. 그러나 아무리 열정과 능력을 오롯이 쏟아도 실패하는 경우는 반드시 발생한다. 승자는 소수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통일제국'이라는 하나의 의자에 앉기 위해 수많은 국가가 경쟁했던 춘추전국시대를 현대에 소환해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상대를 죽어야만 내가 사는 처참한 시대가 현대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고 본 것이다. 당시는 부국강병을 위해 실무에 뛰어난 전문가를 초빙하는데 온 나라가 혈안이 된 시기였다. 위기에 기회가 오듯이 훌륭한 인재를 등용하기 위한 각국의 불꽃 튀는 각축전 속에서 빛나던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게 된다.



책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장자, 공자, 소동파, 사마천, 관중 그리고 시경, 당시, 송사, 주역 등의 글들이 나온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하나같이 위기와 고통과 고난(위기)을 겪었지만 '자기 초월'을 했다는 점이다. 고통과 고난은 인간의 삶에서 죽음과 같은 두려움으로 다가오는데 이들은 모두 자신의 방법으로 극복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존재하는 모든 것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소멸한다'는 생명의 이치를 깨달았다는 점도 그렇다.



젊었을 때는 죽음이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원한 젊음이 있으리라고는 물론 믿지 않지만 당장 내일의 두려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 성찰 또는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죽음의 고통을 마주해야 했을 때 우리는 인간의 운명에 대해 재고하게 된다.



인생이란 폭풍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빗속에서도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_소동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그렇다. 우리는 모두가 죽는다. 안전한 곳으로 요리조리 피해 다닌다고 용을 써도 시간만 다를 뿐 모두가 동일하다. 그렇다면 선택해야 한다. 잘 살 것인가 단지 오래만 살 것인가.



어차피 자본주의 체제에서 모두의 성공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실패를 통해 확인하지 않았는가. 이번 생은 망했다고 포기하지 말고 고전이 권하는 진정한 행복인 내면의 성장이라는 삶 쪽으로 눈길을 돌려보자.



여러 선택지가 있다. 장자처럼 최소한의 소유로서 이 세상을 즐겁게 향유하며 사는 방법이다. 그는 세속의 가치를 부정하는 은사였다기 보다 시비와 생사를 초월하는 자연과 노닐었던 삶을 선택했다.



커다란 담론을 기대하는 동양철학과는 다르게 장자의 철학은 이솝우화처럼 이야기 형식으로 철학을 전개한다. 그동안 장자의 철학은 비현실적이고 과장이 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저자의 해설을 듣고 무릎을 쳤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다. 한 곳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여름 벌레에게는 얼음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한 철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하나만 아는 사람에게는 도를 말할 수 없다. 그가 받은 교육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 장자 <추수>



각각의 존재는 자신이 처한 시공간에서 자신의 규칙을 내면화하며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구축한다. 이를 장자는 성심成心(이미 만들어진 마음)이라 불렀다. 즉 장자의 철학은 은유와 문학적 서사를 동원하여 듣는 이의 자기 수준에서 해석하도록 구현한 것이었다. 자신의 생각을 유보하고 관찰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상대편을 관찰하는 소통의 대가였던 것이다. 우물 속이든 바다에 살든 내 방식대로 살면 되기 때문이다.



쓸모 있는 인간만이 대접받는 이 세상은 세속의 가치로 평가하려는 자본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허상과도 같다. 모두 각자 자신의 이유로 세상을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장자는 말한다.



공자 역시 참된 사람이 되기 위한 지향점과 진정한 성공은 배움에 대한 열의에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취업이라면 취업 후 긴 인생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우리는 답해야 한다. 맹자는 배움을 도구화할 때 닥칠 비극을 예고한 바가 있다. 배움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일로 도움이 되는 지식 전수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이 물질과 욕망의 도구로 변질될 때는 비극이 된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한 배움을 우리는 하고 있는가 자문할 필요가 있다.



사마천과 소동파는 참으로 억울하게 불행한 삶을 살다 간 사람들이었다. 사마천은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가벼운 죽음을 거부하며 치욕 속 삶을 선택하고 중국의 역사를 만드는 책으로 자기 존재를 대신하기로 결심한다. 소동파 역시 중국 역사상 타의 추종을 불허한 천재 예술가로 통하지만 수많은 유배지 생활로 고초를 겪은 불행의 사나이였다.



이들은 자신에게 닥친 억울한 고통을 '동의'하는 삶을 살았다.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역사서와 글을 남김으로써 이들은 최고의 중국 역사상 최초로 체계적 이론을 가진 역사가, 중국 문예사상 가장 걸출한 인물이란 존칭을 얻었다.



인간의 운명은 내일을 알 수 없다. 그러니 죽음을 기억하고 나만의 고유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고전 속의 진리다.



저자는 실패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수정하도록 돕기 위해 사마천의 관안열전의 관중이야기를 꺼낸다. 우선 성공의 결과는 자신의 능력과 상관이 없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관포지교(管鮑之交)로 유명한 관중(管仲)은 제나라 '환공'과 적대관계였으나 절친 포숙의 추천으로 환공의 신하가 되었고 재상이 되어 제나라를 춘추시대의 5대 강국으로 만든 인물이다. 제나라의 전설적인 인물이었던 관중이 언제나 잘 나가는 사람이었을까. 아니다. 관중은 상인에서 관리로 또 군인으로 자리를 바꿔가며 수없이 많은 실패에서 다음 실패로 거듭되었던 일명 루저였다. 그는 세상사람들이 실패자라 여겨도 좌절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포숙(鮑叔)의 절대적 믿음(그의 실패 원인이 그의 능력과 관계없음을 알았음)으로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그는 '주머니가 작으면 큰 것을 담을 수 없고, 두레박줄이 짧으면 깊은 물을 길을 수 없다.'는 말을 한다. 실패와 좌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의 그릇을 키우는 것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실패에서 다음 실패로 넘어가는 과정을 통해 두려움을 극복하는 '자기 초월'의 단계를 경험한다.



우리의 삶 속에는 많은 다른 요인들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억울한 마음을 내려놔야 한다. 노력 외에 운도 작동하고 모든 실패에는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은 수많은 실패의 돌 위에 서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자.



스피노자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직시해야 하는 이유를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그 순간이 고통이기를 멈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감정의 발성, 그것은 바로 치유의 시작이란 점이다. 우리는 평온할 때 나의 문제점을 모른다. 치유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고통의 적극적 관여는 자신을 성찰하는 순간이다.



중년은 자신을 돌아보는 시기라고 흔히들 말한다. 최초의 가족을 떠나 결혼하고 사회에 적응하고 삶을 꾸려가는 데 혼 힘을 다해 살아온 나는 과연 누구인가 하는 의문이 고개를 쳐드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삶이었는가 질문하게 되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지나온 삶에 고난과 실패는 고통스러웠지만 나에게 자양분과 안정된 인격을 형성하도록 만들어준 버팀목이기도 했다. 실패만큼 큰 교훈도 없었다. 장자의 말처럼 자신만의 인생길이다. 실패의 쓴 약은 어떤 형태로든 분명 도움이 된다.




<어른을 위한 고전의 숲 / 강경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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