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녀 이야기'의 의문을 푸는 이야기
내 삶은 아주 다를 수도 있었다. 내가 주위를 둘러보고, 시야를 넓게 가지기만 했더라도, 일부가 그랬듯, 충분히 이른 시기에 짐을 싸기만 했더라도, 그래서 그 나라를 떠나기만 했더라도, 하지만 나는 여전히 바보같이 그 나라가 내가 그토록 오랜 세월 몸담았던 나라와 같다고 믿고 있었다.
개인의 활동은 물론이고 여성을 굉장히 폭력적으로 억압하는 디스토피아 사회를 생생하게 그렸던 전작 '시녀이야기'의 15년 뒤의 모습을 그린 이야기다.
미국의 극우 성향인 기독교 집단이 쿠데타를 일으켜 길리어드(Gilead)라는 새 정부가 들어섰고 출생률 감소에 따른 관리 명목으로 여성들을 여러 계급으로 분류하여 철저하게 통제하고 착취하는 이야기가 전작에 실려 있었다. 여성의 계급 중 '시녀'는 지배층의 아내가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사용(소유물)되는 여성을 일컫는다. 이들은 단지 '자궁'의 역할로만 존재하며 세 번의 기회로도 아기를 낳지 못하면 독극물 처리장소로 옮겨져 폐기되는 비참한 운명을 맞는다.
전작 소설의 주인공 '오브 프레드(Of Fred )'는 길리어드 내부에서 '메이데이(Mayday)'로 활동하던 요원에 의해 무사히 탈출하는 것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희망을 남겨준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 한 명의 탈출로 안심하기에는 남겨진 시녀들과 이후 길리어드 정부의 몰락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상상만으로는 부족한 결말이었다. 저자는 34년 만에 후속 출간한 이 소설로 길리어드 정권의 몰락 과정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이 소설은 작가에게 영예로운 2019년 부커상을 안겨줬다.
전체주의 사회는 24시간 감시하는 세상이다. 길리어드 사회의 모습은 흡사 소설 '1984(조지 오웰)'를 상상하게 만든다. 하지만 아무리 국가가 시민을 철저히 감시한다 해도 인간의 본능과 감정까지는 통제가 어렵다. 의심은 할 수 있겠지만 인간의 신념을 향한 속임수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능적인 여성과 연대하는 힘이 강할 때는 더욱 그렇다.
하느님의 왕국이라고 포장하고, 개인의 활동과 자유를 아무리 억압한다 하더라도 이기적이고 권력에 눈먼 자들에 의해 길리어드는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부패(腐敗)하고 있었다. 갈수록 시녀들의 유출이 심해졌고 통제 못하는 지역이 늘어갔다. 게다가 내부 반역자이면서 메이데이로 활동하는 자들은 '눈(비밀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고 지능적으로 활동했다.
소설은 세 명의 각기 다른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오며 녹취록과 수기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전작의 시녀이야기의 주인공 '오브 프레드'에게는 두 명의 딸이 있다. 한 명은 길리어드 정부가 들어설 때 탈출하려다 빼앗긴 딸(아그네스)과 시녀라는 신분으로 탈출할 때 함께 했던 딸(데이지)이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주인공은 내부문서칩을 세상에 알리도록 아그네스와 데이지의 탈출에 큰 도움을 준 길리어드 핵심 내부자다.
두 딸들은 친모의 생사를 모른 채 성장하다 우연한 기회에 친모인 '오브 프레드'의 진실을 알게 되고 길리어드의 파멸을 위해 손을 잡게 된다. 길리어드 정권에서 자란 '아그네스'는 사령관과의 결혼 직전 파기되어 아주머니 과정을 밟게 되고, 캐나다에서 자란 '데이지'는 양모의 죽음으로 친모의 탈출과정에 자신이 깊이 연루됨을 알게 된다.
특히 '데이지'는 외견상으로는 사령관의 자식이었으므로 인접국에서 반환해야 할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소재는 길리어드 내 특정 정보원과 메이데이 요원들만 아는 사실이었다. 길리어드는 '데이지'를 '아기니콜(프로파간다)'로 활용하며 인접국을 압박하고 송환을 요구한다. 길리어드 내 핵심 정보원은 메이데이에게 길리어드를 파괴할 수 있는 대용량의 '문서캐시'를 전달하겠다고 약속하고 이는 반드시 '아기니콜'에게 주겠다고 한다.
메이데이는 강하게 데이지를 훈련시킨 후 '진주소녀(선교사)'에게 신앙으로 개종된 것으로 위장하여 길리어드로 잠복시킨다. 아그네스와 데이지는 그렇게 아주머니 과정을 밟는 교육센터에서 만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단순한 '내부 반역자'로는 길리어드 내부의 비밀증거물을 획득하기 어렵다는 점을 알고 있다. 철저히 준비하고 철저히 은폐할 수 있는 힘 있는 내부인이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누굴까? 그는 놀랍게도 길리어드 정부의 초기 창설자인 '리디아 아주머니'였다. '시녀 이야기'에서 나왔던 그 가장 악독하고 살벌하게 여성들을 교육했던 '리디아'가 길리어드를 배신하는 아이콘이었다는 사실에 나는 참으로 놀라웠다. 반전!
그녀는 남자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체제로서 필요한 인물로 선택되었었다. 여성을 핍박하고, 기획하고, 통제할 수 있는, 그러니까 여성을 가장 잘 아는 똑똑한 판사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쩌다가 여성들을 억압하는 최고의 악질 창설자가 되었고 또 어쩌다가 내부의 비밀을 세계에 알리는데 앞장서게 되었을까? 아무리 내부를 고발하는 녹취록이 나온다 하더라도 반박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힘을 잃게 마련이다. 그 증언에 뒷받침할 수 있는 반박불가 증거물의 제공자는 '리디아'였고 그녀는 그렇게 길리어드를 함몰시키는 증거를 차근차근 쌓아갔다.
내가 흐느껴 울었던가? 그렇다. 보이는 내 눈에서, 내 축축한, 흐느끼는 인간의 눈들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내게는 제3의 눈이 있었다. 이마 한가운데에, 나는 그 눈을 느낄 수 있었다. 차가웠다. 돌처럼. 그 눈은 울지 않았다. 보았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누군가 생각하고 있었다.
'리디아 아주머니'는 길리어드 정부 출범 전까지 가정법원 판사로서 공정하게 수행하는 직능인이었다. 여성을 철저히 억압하는데 필요했던 그녀의 능력을 길리어드 지배층 사령관은 모진 고문으로 자신들의 명령에 복종하는 개로 만들었고 성공했다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모진 고문으로 외면적 존엄성을 박탈하는 상황에서 내면의 무언가를 발견했고 결심한다. 그것은 우리가 심리학에서 말하는 '배경자아'라 생각된다. 그녀는 앗아갈 수 없는 자신의 영혼을 복수로 사용하겠다고 결심한다. 잘못된 선택으로 길리어드 정권의 개가 되었지만 후회를 딛고 일어선다. 그것이 15년이 걸렸고 결국 성공한다. 독자인 나는 그녀를 용서하며 눈을 부릅떴다.
장편 소설이었지만 '시녀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흡입력 있는 저자의 문장력은 압도적 몰입감을 준다. 소설을 읽고 나면 복잡한 심정으로 서성이게 만든다. 그것은 현재의 지구촌 현실의 미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시녀이야기' 이후 15년 이야기인 '증언들'에는 '비아(非兒)'출생이 더욱 빈번해지고 있다는 대목은 걱정스럽게 읽힌다. 지구촌 환경오염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구온도 마지노선은 이미 붕괴되었고 대지와 바다 수온이 비정상적으로 올라 폭염과 같은 극한기상 현상이 지구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구는 우주에서 유일하게 생명이 서식하고 있는 행성이란 점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산다.
또 전체주의와 가부장적인 사회를 상상하게 만드는 이 극단적인 이야기는 얼마나 인간의 본능과 감정을 조직적으로 파괴하고 순응하게 하는지 끔찍하게 읽힌다. 인간은 비합리적인 세상이 오면 처음에는 반항하지만 한도 끝도 없이 자행되는 숙청과 체포, 고문 그리고 주변인물들의 증발이 당연시되는 사회가 정착되면 항거를 포기하게 된다.
나는 '리디아' 아주머니와 메이데이(Mayday)라는 조직의 활동은 인간의 존엄과 신념과도 같은 내적 동기를 절대 잃지 말라는 저자의 의미를 발견했다.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그래서 '리디아' 아주머니다. 오브 프레드의 두 아이들은 어리다.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소명을 심어주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우리 어른들의 몫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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