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공간일기

인생공간은 나의 감정을 찾은 장소다


무엇이 나 다운 것인지는 스스로 깨달아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무시할 수 없다. 타인의 시선을 통해 나의 개성은 더욱 성장하고 단단해진다.





브런치 독서챌린지로 읽은 새해 첫 번째 책이다.


사람들의 취미 중 여행은 언제나 상위 랭킹에 오른다. 특히 해외여행은 반복되는 일상의 공간을 완전히 벗어나고 싶다는 욕구로 표현된다. 우리의 기억 속에 한 두 개쯤 남는 여행 속 '인생공간'은 좋은 추억으로 포장된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라면 시간을 내야 하고 자주 갈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책의 저자는 여행이라는 탈출구에서 찾은 '인생공간' 은 가까운 내 주변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해외여행의 번거로움을 귀찮아하는 나로서는 저자가 해외에서 발견한 인생공간과 유사한 한국의 공간을 비교체험 해주는 글들이 꽤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다. 무엇보다 전문 건축가가 쓴 공간일기라는 차별화된 독특한 설정이 마음에 든다. 이 책은 인간의 감정을 한껏 발휘하는 공간 활용법을 소개하고 있다.



'공간의 쓸모'로 표현하는 작가의 의도는 분명하다. 사막이나 아무것도 없는 평지에서 우리가 어떤 공간도 느껴지지 않는 것은 건축물이 없기 때문이다. 건축물이라는 공간은 인간의 삶 속에 휴식을 위해 존재하고 또한 인간의 삶과 욕망이라는 쓸모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학창 시절 어느 유명한 건축가의 강연에서 들은 '소크 연구소'로 말문을 연다. 강연자는 건축가 '루이스 칸'이 설계한 건축물을 인생공간이라 말하며 '입구에서 모퉁이를 돌아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눈물이 흘렀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저자는 오버한다는 의심으로 훗날 직접 그 연구소에 들렸는데 느닷없이 슬픈 감정이 울컥하고 올라왔다고 한다. 공간이 예술로 우리의 감정을 건드린 순간이었다.



건축가의 공간수법 중에 비스타(Vista)라는 개념이 있다고 한다. 좁은 나무나 건물 사이에 길을 내고, 그 끝에 멀리 경치가 보이도록 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전망을 향해 우리의 시선을 천천히 유도하여 감동을 배가 시키는 수법이다. 건축가 유현준 씨도 비슷한 경험을 '공간이 만든 공간'이란 책에서 소개한 것이 기억이 난다. 서양의 기하학과 동양의 상대적 관계성을 잘 융합시킨 일본의 '안도 다다오' 건축물인 '물의 교회'와 '바람이 교회'라는 건축물이다. 처음에는 좁은 공간(벽)을 따라가도록 설계되었지만 갑자기 확장되듯 펼쳐지는 공간에서 받는 신비감이 신세계를 체험하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우리가 삶 속에서 자극을 받을 때는 언제인가. 영감을 받을 수 있는 매력적 공간에 서 있을 때다. 저자는 삶 속에서 생활감이라는 기능적 쓸모가 아닌 우리의 행동을 바꾸어 무언가 하도록 하고 감정을 바꾸어 무언가 느끼도록 하는 쓸모의 작동에 대해 강조한다. 즉 공간 감상법이 작동하는 순간이다.



단순히 건축물을 보는 감상에 그치지 말고 좋은 공간을 만났을 때 왜 내가 이곳에서 만족스러운지 나의 감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감정변화를 느꼈다면 관찰력 있게 감정을 묘사하다 보면 인생공간이 보인다고 말한다.






질서는 만들기 쉽다. 하지만 의도된 혼돈을 만드는 건 고수의 영역이다. 우리가 하나라도 더 많은 가게를 구경하고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과 스쳐가도록 건축가는 공간에 의도된 혼돈이라는 비밀장치를 해둔 것이다.




개인적으로 저자가 소개한 스페인 '산타 카테리나 시장'과 그와 유사한 한국의 '망원시장'을 산책공간으로 이야기한 대목과 뉴욕의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은 나의 감정도 비슷해 참 좋았다.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곳으로 시장만 한 곳이 있을까. 그리고 북적이는 공항이나 터미널은 또 어떤가. 시장이란 곳과 터미널은 무도회장처럼 뛰거나 흐느적거리거나 여유롭게 움직이는 다양한 사람들이 응집된 공간이다. 혼란스럽지만 질서 있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산타 카테리나 시장'은 지붕 덮인 화려한 아케이드와 사선 통로 배치를 통해 언뜻 보면 막힌 공간처럼 보이지만 움직이다 보면 다음 행선지가 보이도록 배치한 재미있는 시장이다. 우리나라 망원시장도 아케이드가 설치되어 있어 비나 눈의 영향을 받지 않고 쇼핑할 수 있고 망원한강공원과 연결되어 있어 편안한 명소로 자리 잡았다.



100년 전 철도는 교통수단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뉴욕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은 건축가 입장에서 본다면 거대한 육교를 만드는 사명을 가지고 설계했으리라 짐작하고 있다. 충분한 육교 폭과 대기 공간, 식당 등은 물론 광장은 교차로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차역과 시장은 계절성 우울증에 특효약이었다고 저자의 경험을 소개하고 있는데, 나 역시 동감한다. 바쁠 때 말고 나는 조금 더 걷더라도 재래식 시장에 가는데 그 감정이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군중 속에서 익명성과 유대감을 느낀다. 활기찬 공간은 북적이고 소란스럽지만 오히려 위로와 힘을 받는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 속 공간에 인생공간을 만드는 방법은 없을까. 저자는 거장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 저택에 들렸다가 재미있는 자극을 받게 된다. 엄숙하고 의미 있는 설계로 꾸며져 있을 상상을 깨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입구에 걸려있던 샌드백은 밖에서 있었던 나쁜 일이 있다면 한방 날리고 들어오라고 말하는 듯했다고 한다. 또 간신히 들어갈 폭으로 만든 화장실 내부는 온통 분홍색이다. 자극받은 저자의 사무실에 화장실 변화를 시도했다.



웃고 긴장을 풀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보자. 나만의 개성만 우길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무시하지 않는 방법으로 공간을 활용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라는 여럿과 함께해야 위로와 행복이라는 관계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생 공간은 나의 감정을 알게 되는 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날의 감정, 그때의 관찰에서 발견된 소중한 감정이다.



<건축가의 공간일기 / 조성익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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