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후회 없이 살다 간 버트런드 러셀
러셀의 지적탐구의 시작은 '확실한 지식에 대한 추구'였다.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리에서 시작된 확실성의 의문이 수학과 논리학의 결합으로 이어지고 그 논리적 분석은 세계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철학자라 부르기엔 너무 길고 다양한 활동들로 자신의 생애를 채운 '버트런드 러셀'의 여정 중 지적탐구를 분석한 책이다. 러셀을 소개하는 수식은 그의 관심영역이 어느 시기에 머물렀느냐에 따라 다르게 표현될 정도로 다채롭게 산 인물이다. 그의 삶은 지식에 대한 탐구는 물론 사랑에 대한 갈망 그리고 인류의 고통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 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의 저자 박병철 교수는 '버트런드 러셀'의 생애를 돌아보며 그의 삶을 움직였던 지적 원동력에 대한 키워드를 '확실한 지식의 추구'로 표현했다. 확실한 지식에 도달하려는 러셀의 욕구는 철학으로 이끈 주된 동기였다고 보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레셀의 어떤 열정이 이성주의적 논리와 철학을 놓지 않을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러셀은 정신적 자유실천(비판과 논리적 사고)을 통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실천적이고 평화주의자인 지성인의 모습을 객관적이면서도 담담히 탐구한 이 책이 반가운 이유다.
러셀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조모 밑에서 자랐다. 러셀은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우울한 유년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 그의 사고를 환기시켜 준 계기는 형(프랭크)이 가르쳐준 유클리드 공리(수학)였다고 한다. 기하학을 만난 그 순간을 러셀은 이렇게 묘사했다. "첫사랑처럼 눈부신 가장 큰 사건 중 하나였다."
사랑으로 채워지지 않는 결핍이 지적 호기심으로 전환한 순간이 수학이라니! 하지만 그의 결핍은 훗날 네 번의 결혼과 간헐적으로 이어졌던 혼외정사로 이어진다. 이 책에서는 지적탐구라는 키워드의 완성도를 위해 그의 사랑에 대한 열정을 혼선으로 생각해 다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사랑에 관한 해석은 객관성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독자의 주관적 입장에 맡긴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러셀이 논리학과 철학에서의 기념비적인 업적들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과 그가 지식을 바라보는 관점(경험주의적, 실재론적, 논리적 세계관)을 소개한다. 러셀의 지적 호기심의 여정은 한마디로 세상의 지식을 앎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논리적 근거 찾기'였다.
확실한 지식에 도달하고자 하는 그의 최초의 집념은 기존의 관념론에 부딪치게 된다. 그의 비판적이고 논리적인 수학철학은 유클리드 체계의 의문에서 시작된다. 유클리드 체계는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다섯 개의 공리를 전제함에서 시작해 그 공리들로부터 증명해 낼 수 있는 확실한 진리인 정리를 이끌어내는데, 러셀은 그러한 확실성에 대한 의심을 갖게 된 것이다. 기하학을 포함한 수학의 기초를 직접 찾으려는 욕구가 생긴다. 혼란과 실험의 시기라 일컫는 인생의 성장기에 러셀의 관심영역은 지적 호기심으로 충만해진다.
대학을 들어간 러셀은 당시 관념주의 철학이 지배적이었던 세계에서 시원한 답을 찾지 못하다가 철학자 무어(G. E. Moore)의 영향으로 벗어나게 된다. 마음에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실재하는 대상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실재론자가 된 것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리가 지닌 확실성에 대한 의심과 수학자 '페아노'의 수학적 논리학의 기법을 접하면서 자신만의 더 선명한 기초적 논리개념들을 정리해 보자는 생각으로 '수학의 원리'를 쓰게 된다. '페아노'의 기초개념을 집합 개념으로 정의하고, 공리들 역시 그의 기초해 증명하고자 했다.
러셀의 설명은 논리학과 수학이 같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수학의 기초에 대한 연구는 한껏 고무된 러셀의 마음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수학의 원리' 완성 단계에서 러셀은 '자신을 원소로 하지 않는 집합들의 집합'이라는 문제에서 자기 자신을 원소로 가지는가에 대한 문제에 봉착한다. '패러독스'를 발견한 것이다. 러셀은 수학을 논리학으로 환원하려는 자신의 기획에 앞서 선구자 '프레게(독일의 수학자)'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결과적으로 러셀은 '집합이 자신을 원소로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왔다고 보고, '어떠한 집합도 자신을 원소로 할 수 없어야 한다'는 생각을 기초로 하게 된다. 이른바 '유형론'이다. 논리학의 기초 개념을 가지고 수학의 전 체계를 설명하려는 그의 기획은 결과적으로 성공적이지 않았음을 뜻한다.
수학과 철학에 입문한 러셀이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열정을 다했던 '수학의 원리'와 '수학원리'에 이르기까지 이루어낸 성과라면 '논리적 접근'이라 말할 수 있겠다. 이후 철학의 전개 과정에 있어 러셀의 영향력은 컸기 때문이다. 러셀에게 철학이란 난관에 부딪쳤을 때 비판적으로 답하려는 상황에서 논리적으로 접근해야 풀 수 있는 학문이었다. 러셀은 '수학 원리' 이후 일반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논리적 작업'을 일상철학의 문제에 적용하기 시작한다.
그는 가장 확실한 경험인 감각재료들로부터 물리적 대상들을 논리적으로 구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러셀의 확실한 지식에 대한 추구는 독자적인 발견이 아닌 현존하는 확고한 지식이라 믿고 있는 실제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논리적 확증을 통해 얻어내려는 과학적 탐구였다. 막연하게 알고 있던 그의 이론들을 이 책의 저자 덕분에 친절히 알 수 있었다. 그의 이론들 중 두 가지만 정리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기술의 이론
결과적으로 러셀의 기술이론은 서양철학사의 오랜 고민인 '존재론'의 문제를 해결했다. 어떠한 대상을 기술, 설명하는 기술구에 의해 축약되어 고유명사가 사용된다는 이론이다. 고유명사는 기술구에 의해 의미를 가질 뿐이다.
실제로 이름만 들으면 누군지 모르지만, 그가 누구인지를 설명하는 기술구를 통해 그 대상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 것처럼, '주어(고유명사)'와 '술어(기술어)'를 구분하면 무조건 존재대상으로 간주하지 않게 된다. 존재론의 문제를 언어분석적 방법으로 접근한 기술적 이론이다. 세계를 명확히 분석 또는 설명하지 않는 철학자 '마이농'의 대상이론(팽창된 존재론)인 문제점도 이로써 해결되었다.
2. 논리적 원자론
경험주의자 관점에서 우리의 지식은 직접지와 기술지로 이루어진다는 주장을 토대로 나의 경험뿐만 아니라 물리적 대상과 다른 사람들의 존재까지 확실한 앎의 범주에 넣었다. 세계는 단순한 개별자들로 이루어지며 그 개별자들마다 단순한 속성들을 가지고 다른 개별자들과 단순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를 구성하는 원자처럼 쪼개지지 않는 원자적 사실들이 있다는 것으로 이는 경험할 수 있어야 하는 사실에서 나오는 것이란 의미다. 러셀은 과학이나 이론들 또한 복잡하다고 할지라도 원자명제들이 합쳐지면서 구성된 것으로 설명한다.
쏟아지는 가짜 뉴스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러셀의 기술이론과 논리적 원자론을 접목해 보는 것이 효과적이라 생각이 든다. 논리적 형태를 바꾸는 방식으로 재서술하게 되면 보이는 이론이다.
세계는 단순한 개별자들로 이루어지며 그 개별자들마다 단순한 속성들을 가지고 다른 개별자들과 단순한 관계를 맺고 있다.
논리적 방법을 철학의 문제에 적용한 러셀은 20세기 영미철학을 주도적 흐름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예외적으로 종교와 윤리에 대해서는 논리학을 적용시키지 않았는데, 종교는 비판적 사고에 앞서 무비판적인 믿음의 강요로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또한 윤리 역시 감정과 정서에 기초하므로 객관성을 부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는 이성적으로 확실성을 지니지 않은 것은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울하고 지루한 유년시절을 보내던 러셀은 수학에서 절대적 진리를 찾으려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반전, 반핵운동도 열심히 했지만 감옥에 갇히고 대학에서도 쫓겨나기도 했다. 그는 실천적 지성인으로 살았지만 종교철학이나 정치철학이나 이론에서 주목할만한 업적은 없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는 많은 사람들은 그를 기억하고 그의 삶을 사랑한다. 실천적 세계관을 가지고 살았고 후회 없는 삶의 여정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삶을 가치 있게 이어가는 것은 순수한 개별자의 몫이라는 것을 실천적으로 보여준 증인이다.
우리는 거대한 자본주의 힘에 억눌려 소속된 자동인형으로 사는 것에 만족한다. 대학입시라는 사각의 틀에 주입식 교육으로 아이들을 내몬다. 주도적이고 실천적 탐구라는 삶에 대한 성찰은 찾기 힘들다. 현대 사회의 신념이 자정장치 없이 힘차게만 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