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란 그 순간의 필요가 이룬 서툴고 무질서한 산물이다
언어는 유전자나 뇌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독창성이 수천 년간 축적되며 만들어진 산물이다.
인간만이 자유롭게 구사하고 있는 '언어의 기원'에 대하여 인문학적이고 사회학적인 시선으로 설명한 책이다. 언어는 어떻게 창조되었고 진화되었는지에 대한 과학적 이론이 아직까지 확실하게 규명되어 있지 않은 현실에서 나온 이 책은 문화와 유전적 진화의 상호작용을 설명한 '호모 사피엔스 / 조지프 헨릭 저'를 떠올리게 한다.
인간 문명의 핵심으로 주장하고 있는 '문화- 유전자 공진화 개념'을 간단히 말하자면 생존을 위해 자연이 선택하고,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하기 위해 성선택이 이루어졌다면 문화 역시 선택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다만 그 책에서 대략적 설명으로 넘어간 언어 부분(전달되는 몸짓과 발성)이 포괄적 이해로 끝냈다는 점이다. 인간의 언어는 문화적 선택압이 유전적 결과물로 이어져 목구멍 해부 구조와 소리 그리고 전담 뇌영역이 변화되었을 거라는 추정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진화하는 언어'란 이 책을 읽으면서 '호모 사피엔스'의 속편을 읽는 듯한 기분으로 흥분되었다. 인간 문명의 촉매가 '언어'란 사실은 분명한데, 언어의 출발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작되었고 오늘날 복잡한 문법의 탄생까지 분명한 해답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언어의 기원을 다루는 새로운 이론인 만큼 두 저자(닉 채터, 모텐 H 크리스티안센)는 이론적 반박에 대한 방어기제로 과하다 할 만큼 상당 부분의 지면을 할애한다. 대중서로 접한 일반 독자들에겐 살짝 당황스러울 수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반적으로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먼저 인류가 가장 강력하게 믿고 싶어 하는 인간의 '언어유전자'에 의해 언어가 발현되었을 거라는 생물학적 진화론은 다윈의 '종'에 대한 관찰처럼 유전자 A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비교 시 언어를 배우는 것에 대한 차이가 미미했다는 결과가 나옴으로써 영향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인류가 문화적인 종이라는 점은 자연의 다른 곳에서 관찰되지 않은 생소한 진화경로를 거치며 매우 남다른 종(새로운 종)이 되어 왔다는 점은 분명하다. 인간의 자연선택(진화)의 결과물은 갓 태어난 아기의 뇌(미숙아뇌)를 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아기의 뇌는 첫해동안 확장을 계속해 세 배로 커진다. 인간의 일생을 통틀어 일 년 동안 폭풍성장한다. 출생 후 아이는 문화적으로 전달되는 누적적 선택압을 학습하고 문화적 진화에 길들여진다.
우리는 말하는 동물이 아니다.
우리는 언어를 만들고,
다시 그 언어에 의해 만들어지는 존재다.
인류의 최초 의사소통은 '바디랭귀지'였을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저자는 이를 '제스처 게임'으로 표현했다. 언어가 아닌 몸짓으로 의사소통을 시작하다가 그와 함께 목구멍에서 나오는 어떠한 소리의 변화에 반응했을 것이란 추정이다. 저자는 언어의 시작을 문법의 규칙이 아니라 지금이 아니면 사라질 기억의 좁은 병목 지점을 통과하는 과정이라고 재미있게 표현한다.
제스처 게임과 언어의 진실과는 무슨 연관이 있을까. 저자는 1970년대 말 니카라과 수도에 있는 마나과(Managua)에 소재한 청각 장애인 대상 특수학교에서 실마리를 찾는다. 이때 공인된 수어가 존재하지 않았고 더불어 음성 언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음은 물론이었다. 그들은 제스처로만 의사소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말'이라는 동물을 상대에게 의사소통하도록 요구하였는데, 1세대 학생들은 다양한 손짓을 시도하였지만 점차 3세대가 지나는 사이 말을 의미하는 수어는 '다리를 벌리고 말에 걸터앉은 사람을 표현한 손짓'인 하나의 '관례화'로 통일되었다. 즉 처음에는 그저 도상적 모방에 불과했던 제스처들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더 추상적인 상징들로 관례화 되면서 수어로 발전했고 '니카라과 수어'는 그렇게 태어나게 된다.
저자들은 이 '제스처 게임'의 결과로 미루어 초기인류 또한 제스처를 활용한 의사소통을 시도했을 것이고 가장 경제적이고 쓰기 좋은 것이 선택적으로 살아남아 관례화되었을 것으로 결론을 낸다.
우리가 가장 궁금해하는 '언어의 진실' 또한 이들은 제스처 게임에서 발견한다. 언어 역시 제스처 게임과 유사한 반복적인 상호작용에서 나왔을 것이란 통찰이었다. 즉 둘 이상의 상호작용이 필요한 소통에서 우리의 언어는 즉흥적이고 독창적 방식으로 플레이되었을 것이고 유용한 제스처와 같은 언어는 재활용되고 다른 표현에도 적용되었을 것이라 주장이다.
언어란 그 순간의 필요가 이룬 서툴고 무질서한 산물이다.
언어를 제스처 게임에 비유한 이유는 언어의 유연함을 확실하게 표현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이는 우리가 표현하는 언어의 찰나적 속성 때문인데, 인간은 주의력과 기억력이 놀랄 만큼 제한적이란 사실이다. 우리가 상대의 언어를 접하자마자 바로 이해한다는 느끼는 것은 뇌의 속성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개별 데이터를 하나하나 저장하기보다 연결고리가 있는 덩어리로 묶어 처리할 때 훨씬 편안함을 느낀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기억력이 좋아 보이는 이유는 뇌의 하드웨어가 좋아서라기보다 청킹(Chunk Size)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의 단기 기억 저장소는 매우 작기 때문에 우리의 뇌는 개별을 넣는 것보다 단어 '한 장'을 넣는 것이 효율적이라 판단한다. 예를 들어 섞인 숫자가 012451890 나열되어 있을 때, 우리는 개별적으로 외우지 않고 본능적으로 덩어리(012-451-890)로 묶어 외우는 방법을 취한다. 그 방법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언어 역시 제스처 게임의 상호작용처럼 필요할 때마다 순간적이고 독창적으로 만들어졌으며 그렇게 나타난 것들이 무질서한 상태에서 점차 질서를 갖춘 상태로 이행해 왔을 것이란 결론은 그래서 놀랍지 않다. 미래 시제를 비롯한 여러 추상적이고 문법적인 단계들 역시 인간의 독창성과 결합하여 수천 년간 축적되어 만들어진 산물인 것이다.
우리의 일상 언어는 불완전하고 무질서할 수밖에 없다는 저자들의 입장에 대해 언어적 혼돈을 걱정하는 소리가 나올 수 있다. 실제로 언어의 무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라이프니치, 프레게, 러셀 등 많은 철학자들이 인간의 무질서한 언어를 바로잡겠다는 시도를 했다. 이들은 일상언어가 가진 결함들을 질서 있고 완벽하게 잡을 인공언어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 책의 두 저자는 바로 이러한 언어의 결함이 바로 강점이라는 주장으로 완전히 바꾸어 해석해 놓은 것이다. 언어는 무질서하다는 것이 핵심이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다양하게 변화할 것이고 혼돈 속에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언어들은 자유 어순 패턴에서 점차 경직적인 어순으로 변했을 것이다.
우리가 외국어를 배울 때 느끼는 두려움, 아이들이 언어를 익히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예외는 언어가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단순한 규칙들의 반복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문화적으로 학습하지 않았기 때문에 낯설 뿐이다.
언어는 매끄럽게 작동하는 도구다. 처음은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익숙해지면 몸이 스스로 반응하는 것처럼 말이다. 언어는 선천적이 아니라, 사용을 통해 길들여지는 것이라는 개념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언어야 말로 '문화적으로 발명되어' 뇌에 적응해 온 체계라고 결론짓는다. 우리는 자신의 모국어를 문법으로 외워 배우지 않는다. 문법은 언어 사용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학습 규칙에 가깝다고 말하며 촘스키가 말한 '보편문법'의 견해를 반박하고 있다. 우리가 지도를 보고 외워서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길을 걷다 보니 지도가 그려진 것이란 의미다.
언어는 규칙을 따르지 않아도 통하는 시스템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함께 만들고 유지하고 있는 살아있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언어는 진화하고 반복되고 있다. 언어는 끊임없이 시도와 반복을 통해 사용되고 변형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새롭게 조합된 표현을 시도하고,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지 확인한 뒤에 효과적인 표현은 어김없이 즐겁게 사용하고 있다. 언어는 이처럼 한 사람이 발명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반복적으로 '실험하고 살아남긴 표현'을 모은 집단적 산물이다. 이렇게 언어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규정하는 본질적 요소가 되었다.
'의미는 사용에 있다'라고 비트겐슈타인은 말했다. 언어는 정의보다 사용법이 중요하며 반복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쓰이느냐에 따라 단어의 의미는 생성되고 바뀌기 때문이다. 우리는 ChatGPT와 Gemini 등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로 뜨거운 시대에 살고 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손으로 만든 새로운 종류의 언어 사용자다. 우리들은 인공지능의 편리함에 취해 있지만 한 편으로는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을까 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두 저자는 제스처 게임을 즉흥적으로 할 수 있는 인간의 적수가 될 수 없다고 단언했지만 나는 다른 생각이다. 지각 있는 AI는 자신의 생각과 동기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이론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문명의 속도가 한 해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진화되고 있다. 따라서 AI에 대한 강력한 자정 장치가 없다면 이를 이용한 권력 남용이 발생 시 제어할 수 없는 힘든 상황에 도달할 수도 있다. 개인적인 걱정이었으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