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육하원칙을 완성해야 한다
한 사람의 생애의 마지막은 죽음이다. 우리가 누구와 누구의 혼인으로 출생되었다는 사실을 기록하듯이,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앎으로써 인생을 이루어나가듯이, 죽음에도 앎의 완성이 필요하다.
죽음이 자연스러운 삶의 질서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우리는 애써 죽음에 대한 생각을 당장 일어날 일이 아닌 양 살아간다. 삶의 여정은 인정하지만 종착지가 있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도 더 젊어지지 않듯이,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 있으며 불의의 사고는 나만을 예외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책의 저자인 법의학자인 이호 교수는 자연사가 아닌 사법부검을 의뢰받아 죽은 이를 보는 마지막 의사로 사인을 밝히는 직업을 수행하고 있다. 망자를 대신하여 사고의 원인을 밝혀줄 증언자인 셈이다. 유성호 박사가 쓴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를 통해 우리는 우리나라 법의학자 수가 인구대비 너무나 적은 인원(50여 명)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만큼 처우가 열악해 지원이 적고 개인의 소신과 사명감만으로 지탱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법의학자로서 저자는 지난 30여 년간 4천여 건의 시신을 부검하며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수많은 주검을 마주하며 '죽음'에 대한 감정의 통찰을 느꼈고 사회적 동의를 구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망자는 물론이고 남은 유족들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진정한 명의(名醫)란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점은 인문학적 소양(素養)까지 담겨있다는 점이었다. 이호교수는 몽테뉴의 '수상록'의 글처럼 죽음을 가르치는 사람은 동시에 삶도 가르쳐야 한다고 보았다.
저자는 현재 우리가 죽음을 다루는 방식을 이대로 유지한 채 시스템의 불합리함을 묵인하고 간다면 분명 유사한 죽음이 발생할 것은 물론 반복될 것으로 보았다. 요지는 살아있는 우리가 망자가 어떻게 살다가 어떤 사고로 어떻게 죽었는지 진단하고 살피는 것은 망자를 위한 일이기도 하며, 그 뒤를 살아갈 우리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며 강조하고 있다. 즉 죽음의 육하원칙을 지키는 일이야 말로 완전한 삶의 질서라고 본 것이다.
유족들이 생때같은 가족을 잃고도 정확한 사인을 모른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진 수많은 사건들 앞에서 얼마나 무너졌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유족들이 하나같이 외치는 요청은 늘 '정확한 사인'이었다. 정확한 사인이 있어야만 정확한 애도의 출발도 이루어질 수 있다.
그는 '왜 죽어야 했는가?'라는 질문을 디테일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사회적 시스템 일수도 개인의 실수일 수도 있겠지만 책임유무의 처벌뿐만 아니라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하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에 반드시 실수한다는 전제를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책을 읽으며 너무나 관행적으로 이루어져 느끼지 못했던 부분을 지적해서 놀랐던 부분이 있다. 우리가 마주하는 죽음의 풍경을 그려보자. 사망 -> 장례 -> 사망 등록 순이다.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대다수의 선진국(미국, 영국, 일본 등)은 그렇지 않다. 사망 -> 사망신고 -> 범죄 협의(무혐의) 인증 -> 장례 순이다. 매우 합리적이다.
장례 후 혐의가 의심되어 파묘까지 이르는 사건들이 있는 것을 보더라도 얼마나 우리의 죽음의 관례가 비합리적인지 알 수 있다. 이러한 죽음의 관행은 어떠한 현실을 낳고 있는가. 우리나라의 사망 원인(2012년 기준) 중 1위는 부동의 '암'이지만 2등이 '사인불명'이라는 사실이다. 사인불명인 사람들은 예상되다시피 경제적으로 궁핍하거나 학력 수준이 낮은 사람, 독거인 등 사회안전망에서 제외되어 죽음의 원인조차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들로 취급되는 사람들이다. 죽음의 이유조차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이호교수는 임상법의학을 더 연구하기 위해 의료사고가 체계적으로 갖추어진 호주로 벤치마킹을 떠나 공부하며 희망을 찾았다. 그곳에서 발견한 그의 희망은 사고가 예방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어처구니없게 발생하는 의료사고들은 대부분 개인의 습관적인 행동이나 실수에서 발생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처벌강화로 실수를 막겠다는 제도는 은폐로 이어진 것을 보더라도 그것은 결코 예방이 아니다. 이른바 시스템화를 제안한다.
중요한 것은 실수의 연쇄를 끊는 것이다. 하나의 작은 실수가 발생했을 때, 이를 감추지 않고 드러낼 수 있는 관대한 사회적 분위기와 이미 벌어진 실수를 통해 오류를 분석하고 예방책을 빠르게 세울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들의 집단이 아니며,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엘리베이터 탈 때 탑승자들끼리 서로 몸무게를 계산하고 적정 중량에 맞는지 따져가며 탈 수는 없다. 일정 중량이 되면 자동으로 작동하지 않는 엘리베이터처럼, 우리의 시스템도 그렇게 설계되어야 한다.
인간의 실수를 시스템으로 막을 수 있다는 희망은 큰 제도의 힘이 아니었다는 점. 약병 라벨을 선명하게 하거나 색상을 넣거나 하는 분명한 지침이나 훈련이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다. 우리가 사회적 대형사고들을 보면 책임과 처벌을 묻는 것에 서슴지 않지만 똑같은 사고를 막기 위한 예방 즉 집요한 추적관찰 기사는 보기 드물다. 호주의 검시 법정 시스템은 죽음을 통해 사회안전망을 보강할 방법을 찾을 때까지 열띤 토론(몇 년에 걸치더라도)을 하여 방안을 찾고 있었다.
그는 고민했던 것 같다. 전북대 의대교수로 임용되면서 소속된 병원 내 의료분쟁 발생 시 병원에 불신이 큰 유가족과 소통할 임상법의학(법의료실)을 개설한 것이다. 다른 병원에서는 법무팀이 사건 조기 수습을 목적으로 취급하던 일을 법을 알고 의료행위를 정확히 알고 있는 법의학자로서 의사와 환자의 유가족 모두를 아우르는 조정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인지의 변화를 위한 시도로 책이라는 매개로 독서인을 만나고 있다.
사회적 사고에 대한 문제점을 직시하고 제도화하려는 이러한 마음은 살아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살아있는 사람들 틈에서 죽음을 빠르게 삭제하려는 한국 특유의 비합리성을 꼬집은 부분에 나는 큰 감동을 받았고 진보적인 제안들이 참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심으로 지쳐있는 유가족에 대한 마음의 치료까지 담아내려는 진심이 느껴져 감사했다.
우리가 어떠한 사고가 났을 때 빠르게 잊고 빠르게 회복하여 삶에 집중하는 것만이 중요하지 않다. 두 번 다시 같은 사고가 나지 않도록 누수된 시스템을 정비하고 개선해야 한다. 역사가 반복된다고 믿는 사람의 마음 저변(低邊)에는 관련자 책임과 처벌로 사건을 해결했다는 안도감이 원인일 수 있다.
사람은 두 번 죽는다. 첫 번째는 생물학적으로 숨이 멎었을 때, 그리고 두 번째는 그의 죽음을 기억하는 마지막 사람이 죽었을 때다. 즉, 누군가가 세상을 떠난 후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때, 그 사람의 존재는 완전히 잊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