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의 시대

목적주의는 틀렸다


목적주의자는 삶을 수단으로 삼고, 충만주의자는 삶 자체를 목적으로 여깁니다.




산업혁명 이전까지 어느 종교에서든 이기심은 지탄의 대상이었고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돈을 세었다. 하지만 이들을 밝은 빛으로 끌어낸 것이 있었으니 바로 자본주의의 출연이다. 개인의 이기심과 기업의 이윤추구라는 정당화가 만나 당당하게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자본주의가 인간의 본능적 욕구와 일치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경제학자들은 인간의 '욕망'을 이용했고 생물학적 진화마저도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맞춤형 해석까지 등장했다. 이후 자본주의를 견제하던 소련이 붕괴되고 완전한 자유시장경제가 승리함에 따라 자본주의는 그렇게 인간 내면 깊숙이 의식화되었고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능력주의를 탄생시켰다. 우리가 지금까지 달성해야 할 '목적'에 집착한 근본적인 태동이 바로 자본주의에서 비롯된 셈이다. 그런데 그 역사가 불과 300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소수층이 지배하고 다수가 억압받는 사회구조를 띠고 있기 때문에 자본의 크기가 큰 쪽이 당연히 이길 수밖에 없다. 개인은 진입장벽이 높은 몇 안 되는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공부하고 일한다. 하지만 승산이 적은 전투이기에 대다수는 열패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운 좋게 진입한 사람들은 언제나 해피한가. 그렇지 않다. 거대한 시장 속 자동인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진입한 사람이나 진입하지 못한 사람이나 모두 '공허'라는 바닥에 앉아 허무감을 느낀다. 그 표현은 다양하다. '재미없다, 의미가 없다, 내 삶은 가치가 없다.. 등등'



저자 '조남호'씨는 이러한 능력주의를 신봉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요구하는 '목적주의'에 정점을 찍은 사람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허상을 증명하고자 이 책을 썼다. 그는 치열한 입시 경쟁을 뚫고 서울대를 안착했고 네이버라는 꿈의 기업에 입사했다. 이후 직장인들이 바라는 기업의 CEO로 20년 넘게 잘 나갔다. 하지만 최전선의 끝에서 그는 성취감보다 큰 공허와 또 다른 집착 그리고 불행감을 경험하면서 자신이 만족하는 인생이 아니었다는 강력한 직감을 느끼게 된다.



현대인에게 '공허감'은 다양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나는 30여 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기계처럼 일했다. 몸이 망가졌고 대형 사고를 당하기도 하면서 '번아웃' 직전까지 갔던 것 같다. 그때의 솔직한 감정은 '공허감'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원인을 발견하고 좀 놀랐다.



외적 동기로 끝까지 밀어붙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간 본성을 거슬러 인내하고 견디는 것이죠. 아마도 지금까지는 외적 동기가 인간을 움직이는 당연한 방식이라 믿었기에 참고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인간 본성을 거스를 정도로 참아내는 것이 훌륭한 사람이라는 무의식적 압박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심각한 부작용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를 '병든 치열'이라고 부릅니다.




저자는 우리가 굳게 믿어온 외적 동기의 '목적주의'는 틀렸음을 이 책을 통해 증명하며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 기준, 잣대를 전면적으로 교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진짜 인생 프레임을 세우자는 것이다. 우리를 지속적으로 움직이게 종용하는 외적동기(보상, 처벌, 인정)는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주문이다. 인간은 흥미, 몰입, 지금 당장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어야만 지속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목표와 계획에 지치지 않고 끝까지 완수할 수 있는 것은 기계뿐이다.



당신이 나약해서 그런 게 아니라 인간은 원래 그렇게 설계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에리히 프롬'은 현대 자본주의를 인간 본성을 난폭하게 유린함으로써 사람을 정신적으로 병들게 만들어 가는 병든 사회라고 질타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아무리 완벽한 계획과 완벽한 노력을 기울여도 세상은 모두에게 성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수많은 변수와 시대적 환경적, 구조적 조건이 말끔히 맞아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최고조로 완성되기까지의 고성장 착시의 결과물들에 빠져 노력의 성공 공식이 작동하는 것처럼 보고 있다. 지만 성공 경험을 절대화하면 안 되는 것이 성공한 사람의 노력은 전체의 30퍼센트 미만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대다수가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나답게 제대로 살 수 있을까. 이왕이면 경제적 성공도 이루고 인생에 대한 만족감까지 갖출 수는 없는 것일까? 저자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른바 '충만주의'다.



어떤 경험이든 성취, 결과를 생각하지 말고 과정에 몰입, 몰두하라는 주문이다. 성취와 결과는 일단 분리하고 과정에 따라오는 알파 개념으로 생각해야 한다. 경험의 몰두로써 예컨대 식사를 할 때는 오롯이 입 안에서 씹히는 음식에만 집중하고 산책을 할 때는 오롯이 발걸음과 내 곁을 스치는 바람에 집중하는 것이다. 공부를 할 때는 오롯이 그 문제를 풀려는 마음으로 집중하고 손님을 대할 때는 정성을 다하겠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한 가지에 몰입, 몰두하는 태도는 열심히 하는 것과 분명히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은 분명하고 결과는 경쟁력면에서도 우세할 것은 당연하다. 무엇보다 내부의 결정으로 모든 것을 쏟아냈기에 결과에 후회도 없다. 올림픽 선수들이 원하는 메달을 따지 못해도 최선을 다했으므로 후회는 없다는 말을 할 때 표정이 떠오른다. 결과에 상관없이 과정 내내 최선을 다했다는 후련함이었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그러한 경험을 수없이 했었다. 외부의 개입이 있기 전까지 말이다. 우리는 외부의 개입이 맞다고 믿었고 본능을 어기고 수정하고 털어버렸다. 나의 충만함이 바람직한 인생이라는 노선에서 이탈하였다.



우리 어른들은 오랜 시간 자신이 믿어온 관념, 신념, 소신들이 있기 때문에 한두 번의 각성으로 변화하기란 쉽지 않을 거라 본다. 하지만 저자가 그토록 열렬히 시도를 요구하는 한 가지의 경험에 몰두하고 몰입하려는 시도는 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사람은 경험해야 변한다. 그것부터가 시작이다.



그러니 어른들은 우리 아이들의 재능만은 재미로 출발하게 도와줘야 한다. 아이들은 본능이 날 것으로 살아있는 상태다. 아이들의 재능에 전심, 전력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자. 깨끗한 도화지에 니체가 말하는 '어린아이' 정신이 활발이 움직이도록 돕는 것이다. 본능이 퇴색되기 전에 부모가 허무주의라는 절망의 시대를 살지 않도록 자신의 내면의 권력을 키우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물론 쉽지 않다. 하지만 어른보다는 흡수가 빠를 것이다.



스피노자가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말한 이유를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내 삶의 의미와 가치에 오롯이 집중하며 외부동기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내적의지다.



'내 삶에 없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대신, 지금 내 삶부터 제대로 충만하자. 삶은 삶으로 채운다.' 이것이 삶에 대한 관점을 바꾸었을 때 대전환되는 공허함에 대한 새로운 정의이자 대응 방식입니다.




< 공허의 시대 / 조남호 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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