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에 숨은 ‘이해할 수 없는 나'
우리는 기억이 과거의 경험을 단순하게 촬영한 비디오 같다고 오해한다. 하지만 아니다. 비디오 촬영에는 그 장면의 모든 부분이 똑같이 중요하게 담긴다. 어떤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강조해야 할지 따로 고르거나 선택하지 않는다. 비디오 촬영은 있는 그대로를 정확히 기록한다. 이에 반해 기억은 실수를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변한다.
무의식에 대한 신경논리를 재미있게 다루는 책이다. 우리의 뇌는 의식계와 무의식계라는 두 개의 평행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인간의 정체성은 뇌의 어느 특정 영역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이 같은 논리는 신경과학에서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의식의 문턱 아래에서 뇌의 프로세스가 작동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과학계의 현실에서 의미 있게 읽힌다.
개인적으로 '뇌과학계의 칼 세이건'이라 불리는 '데이비드 이글먼'이 쓴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를 읽고 이 책을 접하니 더욱 저자의 논리에 동의하는 마음이 컸다. 우리는 인간의 행동이 그 사람의 인격을 대변한다고 믿지만 뇌의 물리적 상태가 온전하지 못하다면(사고로 인한) 자유의지는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의지는 판단, 선택, 행동을 좌우하는 머릿속의 독재자인 뇌의 영향을 받는다. 철학, 심리학, 인문학의 방향은 이 독재자의 정체를 밝히는데 온 힘을 쏟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만큼 우리의 뇌의 정체는 인류를 움직이는 암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에서 무의식에 대한 조명은 인간의 잠재의식을 조용히 움직이는 시스템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고 무의식은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믿고 있다.
신경과학의 발전은 뇌의 무의식이 지각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찾아냈다. 인간의식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 fMRI라는 신호, 즉 볼드(BOLD, 혈중 산소치 의존) 신호를 실시간 측정하여 신경세포 활동을 발견한 것이다.
책에서는 각종 뇌질환자들이 보여주는 증상을 통해 뇌의 무의식계가 인식한 오류들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뇌질환자들에게서 보이는 증상들은 '정체성' 손상을 입었을 때 보이는 확실한 증거이기도 하다. 뇌손상 환자들의 증상들을 비추어 봤을 때 뇌는 심리적 트라우마의 파괴적 잠재력에 맞서는 방어 장비(감정 격리부)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뇌는 불완전한 사고와 인식의 빈틈을 메우려는 습성이 있다. 뇌는 그 빈틈을 메울 때마다 자아의식 유지라는 목적에 충실한다. 무의식계는 개인의 이야기를, 인간으로서 갖는 안정된 정체성을 보호하는데 철저히 중점을 둔다. 그리고 그런 무의식계의 노력은 감정적 트라우마를 입었을 때 가장 여실히 발휘된다.
나의 기억은 완벽하고 투명하고 거짓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뇌의 무의식계가 거짓기억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뇌는 기억의 구멍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정체성 확립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뇌는 기억을 편집한다
우리의 뇌는 경험한 기억들을 하나하나 서로 다른 순간들로 모아 두는 것이 아니고 과거 반응했던 경험들이 반복되거나 회상하게 되면 시냅스의 연결 강도에 따라 수신했다는 것을 기억해 내어 장기 강화 작용을 일으킨다. 뇌의 기억은 상호연결되어 있는 탓에 시간이 지날수록 변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연구팀이 기억에 문제가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은 흥미롭다. 과거에 실제로 있었던 경험 세 가지와 거짓 사건 한 가지(길을 잃은 이야기)를 섞어 두어 이야기해 주었을 때 그들은 가짜 사건에 대해 오히려 더 생생히 기억해내기도 했다. 흔히 겪을 수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또한 일상을 이틀 동안 카메라에 담고 이후 몇 년 동안 시간차를 두고 이틀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 해마(기억)의 활성화가 감소되었고 대신 무의식(그 상황에 알맞았을 법한 습관적 행동)에 집중하며 대답을 했다.
뇌 깊은 곳에 위치한 해마와 인근 영역에는 그물망처럼 서로 연결된 신경세포 속에서 기억 기계가 매우 빠르게 돌아가는데, 과거 반응했던 경험들이 반복되거나 회상을 하면 시냅스 연결 강도는 세진다고 한다. 즉 우리의 기억이란 하나하나 서로 다른 순간들이 모여 있는 것이 아니고 뇌가 이런 순간들을 묶어 연속된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것을 믿는 것일 뿐이다.
우리의 무의식은 비디오카메라처럼 경험을 있는 그대로 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그 순간 일어난 '감정'에 대해 집중할 뿐이며 당시의 '의미'에 대한 맥락을 기억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의 뇌는 그 맥락을 바탕으로 초고를 쓰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뇌는 왜 기억을 편집하고 자기 억제기능을 발휘하면서까지 정체성을 유지하려 노력할까. 저자의 판단은 진화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자기숙고하는 유기체일수록 생존확률이 높기 때문이라 해석한다. 뇌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온전히 유지해야만 스스로 결정하고 목표와 욕구에 딱 들어맞는 행동을 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나를 지탱해 온 자아와 의식에 대한 확신이 뇌가 만들어낸 정교한 착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무의식은 뇌의 모든 인식 시스템을 완성하는 해석기라는 사실이 혁명적 관점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무의식은 기억의 빈틈을 메우고 자아를 보호하며 연속된 '나'로써 이야기를 완성하는 뇌의 필수 시스템이었다.
거짓말을 진짜처럼 말하는 사람은 만들어낸 거짓 기억을 자신의 기억으로 믿는 정체성을 갖는다. 그런 사람은 단편 기억을 유리하게 연결한다. 무의식계가 단편으로 끊어진 경험 조각들을 끌어와 기억의 빈틈을 메우고 다듬어진 자신의 인생사를 배열해 준 것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믿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어떤 사람이 떠올라 많은 생각이 교차되기도 했다.
무의식의 지나친 오류는 뇌손상이 원인이 된다. 우리는 살면서 크고 작은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을 수밖에 없다. 자아의식에 위협을 받는 것이다. 그럴 때 상처받고 손상된 뇌의 위협을 방치하면 안 된다. 적극적인 치료를 받고 일어서도록 주변 또는 스스로 치유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야말로 상처받은 나를 사랑하는 첫걸음이다.
정신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지만, 대개는 다른 논리가 끼어드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 버나드 데보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