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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만든 공간

인문학적으로 건축물을 바라보자

동. 서양의 건축물의 이해를 잘 보여주는 사례



건축은 언제나 주변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한다. 그러면서 만들어진 '문화 유전자'는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주변으로 퍼져 나가고 그 지역 고유의 문화 유전자와 섞이게 된다.

15세기에 삼각돛을 단 범선의 등장으로 공간이 더 압축되면서 유라시아 대륙의 양 극단에 위치했던 서양과 동양의 문화가 유전적으로 섞이기 시작했다.  16세기 중국산 도자기가 유럽에 대량으로 수입되었고, 17세기에는 동양 철학 책들이 유럽에서 번역되어 출판되었고, 18세기에는 조경 디자인이 바뀌었고, 19세기에는 이 변화가 미술로 전파되었고, 20세기에 들어서는 건축에서 문화적 이종 교배의 증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자 유현준교수는 건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인문건축가라는 생각이 든다.  


일전에 읽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어디서 살 것인가'는 일상과 함께하는 건축물과 인간의 존재감 사이에서 호기심을 풀어주는 가벼운 터치였다면, 이번 '공간이 만든 공간'은 인류의 문명이 건축물과 함께 어떻게 변화되고 바뀌었는가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탐구로 진화했다.  그는 진지했.


읽다 보면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총, 균, 쇠'에서의 결론이 떠오른다.  그가 나라마다 국력의 차이, 즉 과학기술의 차이는 생태학적인 환경, 지리적 주요 특징이 주요 원인이라고 결론지었던 것처럼 저자 유현준교수는 동서양의 건축물 차이는 '강수량'이 다르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물론 지금은 세계 어디를 가나 빌딩들이 비슷하게 지어져 있다.  이는 철근 콘크리트, 엘리베이터, 유리 같은 기술이 공통되게 사용되기 때문이다.  세계 어디를 가나 똑같은 양식으로 지어지는 고층건축물들은 '국제주의 양식'인 셈이다.


이 책은 동서양의 건축의 특징과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동서양의 문화유전자와 비유(알파벳 vs 한자 / 체스 vs 바둑)로 혹여 흥미를 잃을 독자를 위해 재미있게 썰을 풀어간다.  결론은, 서양은 절대성과 수학을 통하여 세상은 절대자가 만든 수학적 규칙의 조합으로 해석했고, 동양은 협동하지 않으면 무너지는 관계의 집합으로 본다고 풀이했다.


그것을 서양의 '밀농사'와 동양의 '벼농사'로 재미있게 비유한다.  문화유전자가 같은 민족이라도 농사품종에 따라 가치관의 차이가 발견된다는 것을 예시할 때 확실히 이해가 갔다.  땅덩이가 넓은 중국의 사례다.



여러분은 '원숭이, 사자, 바나나'라는 단어를 두 그룹으로 묶으라면 어떤 것끼리 묶겠는가?  탈헬름 교수는 농사 품목이 가치관을 결정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재미난 실험을 진행했다.


그는 중국 한족 학생 1,162명을 상대로 '기차, 버스, 철길' 세 가지 중에서 같은 종류끼리 묶으라는 문제를 냈다.  중국은 대륙이 크기 때문에 중부와 남부 지역에서는 비가 많이 내려서 벼농사를 짓고, 북쪽으로 가면 비가 적게 내려서 밀 농사를 짓는다.

이 실험에서 중국 내 밀 농사를 짓는 지역의 학생은 '기차와 버스'를 하나로 묶은 반면, 벼농사를 짓는 지역의 학생은 '기차와 철길'을 하나로 묶는 비율이 높게 나왔다.  


벼농사를 짓는 지역의 사람들은 '철길 위를 달리는 기차'를 생각하면서 개체 간의 '관계'에 집중해 기차와 철길을 하나로 묶었고, 밀농사를 짓는 지역에서는 관계가 아닌 각 객체가 가진 성질의 공통점을 찾아서 교통수단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버스와 기차'를 하나로 묶은 것이다.   


같은 역사적 배경과 같은 유전자적 특징을 가진 같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농사 품종에 따라서 가치관의 차이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동양과 서양의 오래전 건축물들의 사유가 제대로 풀린 기분이 든다.  서양의 건축물의 특징은 기하학적인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의 반복을 통해 공간을 만들어 가는 형식이다.  그러기 때문에 건축물 자체가 목적이 되는 건축이 된 것이다.  


하지만 동양의 건축물은 강수량의 원인으로 지붕의 중요도가 강조되었고 처마를 길게 뽑는 디자인을 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벽 중심의 공간을 만드는 서양의 건축물은 창문을 크게 뚫으면 집이 무너질 염려가 있으니 창문 크기가 작을 수밖에 없었고, 안에서 밖을 볼 일이 없어 실내 디자인은 그림이나 조각으로 꾸몄다.


반면 동양의 건축물은 건물 입면 대부분이 지붕이었고 특히 우리나라는 온돌을 사용했기 때문에 2층짜리 건물이 필요 없었다.  종이가 있었으므로 창문을 크게 만들 수 있었다.  동양의 건축은 내외부의 경계가 모호하고 주변 경관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건물을 만든 다.  안에서 밖이 어떻게 보이느냐고 중요해진 것이다.


이러한 차이도 15세기에 삼각돛을 단 범선의 등장으로 시작해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문화 간 건축물 이종교배가 활발해지면서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동서양의 건축물이 유사해지고 자유로워진 것이다.


저자는 동양 건축 요소 및 철학을 받아들인 서양화가의 건축물들을 소개하고 또한 서양의 기하학적인 요소를 받아들인 동양 건축가들을 소개한다.  공간이 공간을 만드는 과정이 이렇게도 다양하고 확장성이 큰 것인지 읽으면서도 신세계에 입문하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 저자는 일본의 '안도 다다오' 건축가의 건축물인 '물의 교회'와 '바람의 교회'를 소개해주었는데, 설계도와 사진으로 설명을 덧붙이며 생생한 의미를 전달해 주었다.  사진이었지만 좁은 공간(벽)을 따라가다가 갑자기 확장되듯 다가오는 공간의 디자인은 서양의 기하학과 동양의 상대적 관계성을 융합시킨 좋은 사례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나도 몇 년 전 강원도에 있는 '젊은 달 와이파크'에 다녀온 기억이 떠오르면서 공간을 따라가며 확장되어 펼쳐졌던 공간의 기억이 떠올라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우리가 오랜 시간 머물고 싶은 건축물이 가장 유의미한 공간이 아닐까.


안도 다다오의 '바람의 교회' 입구


우리는 동서양의 분리 자체가 의미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지식의 평준화까지 덧붙여 삶의 질이 한층 높아진 것이다.  게다가 3D 프린터로 마음만 먹으하루라도 건축물이 탄생하기까지 가능하다.


책을 읽고 나면 욕심이 생긴다.  우리 미래의 후손들은 기존의 재미없는 건축물들이 아닌 보다 자유롭고 보다 관계적인 동서양의 건축물의 장점을 살린 멋진 공간에서 지내기를.  저자와 같은 건축가들이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이 팍팍되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지금 정부 수준으론 기대하기 힘들겠지만..



<공간이 만든 공간_유현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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