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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로울 때 과학책을 읽는다

대중성 안에 과학이 숨 쉰다

바르샤바의 유태인 저항 기념비에 참배하며 '진정한 사과'를 보인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



과학적 사고는 결국 논쟁을 인정하는 것이다. 합리적 사회는 치열하게 싸우다가도 새로운 이론이 증명되면 그 주장을 받아들이는 곳이다. 문제는 논쟁과 싸움 자체가 아니라 증거로 증명된 주장이 나와도 '여전히 내가 옳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두려워하고 피해야 할 것은 싸움이 아니다. 조건 없는 맹신다. 과학의 대척점에 있는 그것을 우리는 종교라 부른다.

- '과학자들의 대결 / 조엘 레비' 中



이 책은 과학을 좋아하는 저자가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30권의 짧은 과학리뷰다. 목차를 보니 30권의 책들 중에 안 읽은 책이 더 많다. 하지만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게 저자는 영화평을 말하듯 쉽고 정확히 쏙쏙 박히게 설명하고 있다. 조금 오래전에 출간된 책이라 시대감이 떨어진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뭐랄까, 추억을 되새기는 기분이 들기도 해서 나름 괜찮았던 것 같다.


사실 흥미 있게 제목을 단 이 책은('나는 외로울 때 과학책을 읽는다') 이유가 있었다. 저자는 SF영화를 상당히 좋아하는데, 이 책을 시작할 당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인터스텔라(2014년)'가 개봉되었다고 한다. 그 영화를 보면서 과학책을 좀 더 열심히 읽지 않은 자신을 후회했다고 고백했다. 그리곤 영화를 조금 더 재미있게 보기 위해서라도 과학책을 열심히 보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한다. 솔직히 나도 아이들과 '인터스텔라'를 보고 나서 흥분되게 과학에 대한 애정이 솟았던 기억이 떠올라 저자의 동기에 웃음이 터졌다.


그는 과학도 즐거운 동기를 주지 않으면 대중화가 어렵다고 강조한다. 맞다. SF영화를 즐겁게 보기 위해 과학을 공부하는 단순한 조건도 충분한 이유가 된다. 예전엔 TV에서 과학호기심을 충족(증명)시켜주는 프로그램도 있었던 것 같은데 왜 사라진 걸까.


저자는 과학책을 읽고 일반인보다는 조금 더 의문을 갖는 리뷰를 30권 남겼는데, 대략 한 권당 3~4페이지를 할애한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공부논쟁/ 김대식, 김두식'에서 다룬 우리나라에선 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가에 대한 천재형제간의 대화를 다룬 리뷰였는데, 우리 집에 박사아들이 있어서 그런지 너무 실감 나는 내용이었다. (아래 인용문 참조)


대한민국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에 '15대 0' (지금은 이 스코어가 더 벌어졌다)이라는 참담한 패배를 안겨준 일본의 비결은 국내 박사를 우대하는 임용 시스템에 있다. 실제 일본에서 노벨상을 받은 15명 가운데 13명은 일본 내 박사다. 일본은 자기 연구실 출신 박사 가운데 제일 잘하는 사람을 교수로 뽑는다. 이른바 '동종교배(inbreeding)'다.



형제(김대식, 김두식)는 학문적으로 연결된 제대로 된 동종교배가 없는 시스템과 유학생 들에게 우선권을 주는 대학에 문제를 지적한다. 우리 아들만 해도 한국에서 인정받기 위해 해외유학을 떠났다.


사다 놓고 아직도 읽다 말 다를 하고 있는 '코스모스'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인용되어서 마음이 불편했다. 세상살이가 복잡하고 힘들 때 하늘의 별을 보고 우주에서 나는 한점 먼지와도 같은 존재인데 고민하지 말자고 생각할 때가 참 많았다. 저자는 '코스모스'는 인문교양 필독서라고 추천했다. 더 늦기 전에 저자의 생각을 검증할 겸 읽어야겠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책소개는 '쿨하게 사과하라/정재승'책이었다. 사실 이 책은 과학 서적보다는 경영이론, 커뮤니케이션 이론서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과학도서에 분류된 이유는 사과가 어떻게 갈등을 해결하고 상처를 치유하는지 과학적으로 분석한 책이기 때문이다. 신경과학과 커뮤니케이션학의 결합이다. 지난 대선시 유력한 두 후보자의 깔끔하고도 진정한 사과없이 이 책을 마주하니 참 느낌이 남달랐다. (아래 인용문 참조)


누구나 실수와 잘못을 저지른다. 그때부터가 중요하다. 여기에서 영원한 승자와 패자가 니뉜다. 저자들은 그것을 가르는 강력한 수단이 사과였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왜 어떤 사과는 사람들을 움직이고, 어떤 사과는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하는지 구체적인 사례로 보여준다. 그리고 단언한다. "사과는 결코 패자의 언어가 아니라 승자의 언어이며, 존경과 신뢰를 받기 위해서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인 리더의 언어다.



저자는 말한다. 사과는 실수와 용서를 이어주는 다리라고. 훌륭한 사과란 사과를 하는 사람이 피해자 혹은 대중들에게 진심으로 연결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최고의 자리에 오른 많은 사람들은 자아도취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서 그렇게 시작하지 못한다고 한다. 진정한 사과로 추대받는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의 사진은 그래서 더 깊게 다가온다.


저자가 가볍고 즐겁게 과학책을 외로움을 달래려 읽었듯이 나 역시 그 덕에 편하고 즐거운 독서를 마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나는 외로울 때 과학책을 읽는다 / 김형석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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