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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하게 자책하고 있다면

by 강지윤


복잡하고 많은 심리적 문제를 가진 사람들과 서른몇 해를 만나 오면서 알게 된 사실은, 상처 받은 사람들은 대체로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고, 정작 가해자들은 죄책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문제는 두 양상 모두 심각하지만, 그중에 잘못된 죄책감을 평생 가진 사람들은 우울 불안에서 못 벗어나고 스스로를 깊고 어두운 동굴에 가두며 찬란한 빛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상처를 받아서 마음이 아프고 심리적 정신적 병의 증세를 앓게 된 사람들은 대부분 고질적인 죄책감과 자책에 시달린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데 자기 자신을 한없이 비하하며 자책하게 되는 것이다.



한여름의 무더위가 막 시작될 무렵 어느 날, 아주 마르고 창백한 얼굴을 한 30대 초반의 여성이 상담실을 방문했다.


이 여성은 오랫동안 우울증과 불안증 그리고 대인기피 증세를 가지고 있었다. 정신과에서 약물치료를 오래 받았으며 여러 곳에서 심리치료를 받아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예전보다 조금은 나아졌으며 극심한 자살충동은 어느 정도 사라졌다고도 했다.


무엇이 가장 힘든지 물어보았을 때, 계속해서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은 자책감이라고 말했다.


“계속 제가 잘못된 것 같아 괴로워요. 저는 문제가 많은 사람 같아요. 남들은 좀 어려운 일이 생겨도 잘만 견뎌내는데 저 혼자 이런 것 같고, 저만 문제 있는 사람 같아요. 나이도 많은데 아무것도 못하고, 이 나이에 부모님 원망하는 마음만 있고....”


그녀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술을 많이 마시고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집안 살림살이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고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폭력과 폭언을 일삼았다. 그런 환경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작되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떠나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런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는 너무 힘들어했고, 때때로 자신의 딸에게 분노를 풀어냈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어린 딸에게 혹독했으며, 사랑을 주지 못했으며, 보호자의 역할도 하지 못했다. 이 여성은 외롭고 슬프고 힘들었으며, 마음속에 큰 분노와 증오심을 키우며 살았다. 분노와 증오심은 생산적인 에너지를 고갈시켰고 마음 깊숙이 우울증으로 자라났고, 그 우울증은 시간이 지나면서 불안증 강박증 편집증 등의 증상을 동반하며 더욱 커져갔다.


그리고 어느새 서른이 넘도록 나이를 먹어버렸고 오래 전의 기억은 무의식으로 내려가 현재의 보잘것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 자신이 왜 부모님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지, 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지, 왜 일상적인 사소한 일들도 이렇게 힘들어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자 그런 생각은 곧바로 자기 비하적인 자책감으로 이어졌다.


‘나는 진짜 이상한 사람이야. 평범한 다른 사람들처럼 살 수 없는 특이한 인간이야. 나는 문제가 많아. 늙고 힘없는 엄마 아빠를 왜 이렇게 싫어하고 미워하지? 이 나이에 어른스럽게 이해도 못하고.... 난 어린애같이 어리석고 미숙해. 정말 나는 살 이유가 없는 형편없는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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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책과 죄책감을 느끼는 건 우울증의 전형적인 증상 중의 하나이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 치고 이런 자책감이 없는 사람이 없다. 눈에 두드러지는 몸의 병도 아니고, 마음의 병은 눈에도 보이지 않고 아무도 이해해줄 수 없는 혼자만이 앓는 병이다. 그래서 이해받지 못하는 아픔을 혼자 견디는 동안 사람들의 시선을 더욱 의식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게 되어 스스로를 비하하게 된다.


몸이 병들 수 있듯이 마음도 병들 수 있다. 상처가 반복되면 죄책감을 가진 우울증 환자가 될 수도 있고, 죄책감을 전혀 가지지 않는 사이코패스가 될 수도 있다. 몸을 잘 돌보지 않고 몸을 해롭게 하는 음식을 많이 먹거나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게 되면 몸도 병에 걸려 쇠약해진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마음도 잘 돌보지 않고 계속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에 있거나 사랑을 받지 못하거나 상처를 지속적으로 받으면 누구라도 마음의 병에 걸린다. 그 누구도 예외는 없다.


흔히 사람들은 마음의 병을 앓게 된 사람들에게 자신의 엉터리 선입견을 여과 없이 함부로 말하다 보니, 마음의 상처는 낫지 않고 더 심해지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에게 또 다른 상처 주는 말을 하는 것은 명백하게 ‘죄’라고 말하고 싶다.




“네 잘못이 아니야.”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지금 아픈 마음은 애초에 당신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것은 당신을 아프게 하고 사랑 결핍증을 앓게 만든 부모로부터 시작되었다. 혹은 다른 누군가가 그렇게 상처를 주었다. 그렇다고 한 없이, 평생, 부모를 원망만 해서도 안 된다. 치유를 이루고 건강한 분화를 이루고 나면 원망하거나 힘든 마음이 옅어질 수 있다.


그런데 아직 심한 통증이 있는데 계속해서 내가 잘못해서 이렇다는 식으로 자신을 자책하면 치유는 일어나지 않고 자존감은 더욱 낮아지고 마음은 더욱 아프고 외로워지게 되며, 평생 부모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고 그것 때문에 평생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것이다.



다 나을 때까지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미우면 밉다고 표현해야 한다. 상처를 줄 정도로 분노를 폭발하지는 말고 마음속 아픔을 조심스럽게 꺼내야 한다. 마음속에서 샘솟듯 솟구치는 통증이 다 치유될 때까지 자책을 멈추고 치유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지금의 아픔과 병증을 인정하고 “나는 치유가 필요한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인정하고 치유받기로 결심하면 된다. 병이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이야말로 겸손한 사람이다.


지금 자책이 심하게 일어나는가? 자기 자신이 너무 못나고 형편없다고 느끼는가? 지나온 삶이 모두 후회로 점철되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치유가 꼭 필요한 사람인 것이다. 가족을 포함해 다른 사람에게 잘못된 짓을 하고도 죄책감이 없는가? 그렇다면 당신에게도 치유가 필요하다.


치유가 되고 ‘진짜 나’ ‘진정한 나 자신’을 찾게 되면 더 이상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그때서야 비로소 행복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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