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통증, 죄책감의 굴레
미국 인디언들의 옛 이야기에 따르면,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쇳조각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쁜 짓을 할 때마다 그 쇳조각이 마음속에서 돌면서 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데, 이때 느끼는 아픔이 죄책감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맨 처음 나쁜 일을 할 때에는 그 죄책감이 상당히 크지만, 가면 갈수록 그 쇳조각의 날이 무뎌져서 죄책감을 덜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죄악을 계속 저질러 온 범죄자가 조금씩 조금씩 죄책감을 덜 느끼게 되고 양심이 무디어져서 나중에는 전혀 가책 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인디언들의 우화같은 이 이야기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무서운 함정이 있습니다. 어린시절부터 부모로부터 늘 비난과 질책을 받아온 사람들은 이미 깊고 깊은 죄책감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마음의 병을 앓게 됩니다.
죄책감의 문제는 심리적 병증을 더욱 악화시키고 사람을 강박적으로 만들거나 피폐하게 만듭니다.
어린시절 받았던 비난은 자아상을 병들게 만들고 매사에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게 만드는데, 그런 자신이 혐오스러워 끝없이 자책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죄책감이 많아요. 어떤 땐 미칠 것 같이 자책하고 나 자신이 형편없게 보이고… 죽어버리면 이 감정에서 자유로울텐데요. 누구도 이해 못해요. 죄책감이 있으니까 사람들 보는 것도 불편해요..…”
“교회 가서 설교 듣는 게 너무 힘들어요. 목사님 설교 들으면 죄책감이 더 심해지거든요. 난 저렇게 못 살고 있는데 어떡하나, 하나님이 나를 벌하시면 어떡하나, 그런 생각이 정말 심하게 들어요. 그래서 예배 중에도 안절부절 못하고 식은땀이 나고요.”
“어렸을 때 야단을 많이 맞았어요. 칠칠치 못 하다고, 니가 잘 하는 게 뭐있냐는 말, 매일 듣고 살았어요.... 맞아요.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잘 하는 게 없었어요. 항상 실수만 하고... 그런데 부모님이 밉더라고요. 저를 계속 야단만 치니까… 미워하기 싫은 데 자꾸 미워지니까 죄책감이 일어나요.”
“항상 모든 일에 자책해요. 심하게 자책해요. 다 제가 잘못한 것 같고… 내가 잘못해서 사람들이 모두 나를 싫어하는 것 같고, 내가 잘못해서 친구가 떠나고 애인도 떠나고… 죄책감을 벗어버릴 수가 없네요.”
많은 사람들이 죄책감의 문제에 지독하게 시달립니다. 어느 정도의 죄책감은 사람에게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나친 죄책감은 사람의 생기를 앗아갑니다. 생명력을 파괴시키고 사랑을 상실하게 합니다.
죄책감을 마음에서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오히려 마음속 깊이 껴안게 되는 것을 봅니다. 이런 죄책감으로 인해 생명과 사랑이 고갈되고, 인생의 꿈 전체에 독이 퍼져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도 많습니다.
죄책감을 부추기는 수많은 언어와 태도와 눈빛을 기억해야 합니다.
누군가 말하는 하나의 질책하는 단어에도 심리적 기반이 연약한 사람은 심하게 흔들립니다.
늘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라면 차가운 눈빛 한 번에도 여지없이 무너지고 맙니다.
그리고 모든 잘못을 자신에게 전가하고 필요이상으로 괴로워하고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됩니다.
모든 죄책감은 수치심을 동반합니다. 수치심은 모든 정신병증의 원인이 될 만큼 무서운 요소입니다. 당신의 차가운 눈초리가 쓰윽, 지나가는 동안에 누군가는 죄책감과 수치심의 병을 앓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눈빛이 차가워지지 않도록 늘 따스한 사랑의 열기로 데워 둬야 할 것입니다.
죄책감이 심하면 늘 불안하고 초조하고 긴장된 삶을 살게 됩니다.
이 죄책감을 가슴에 부여잡고 덜덜 떨며 매여 있지 말고 손을 펼치고 놓아 버려야 합니다.
죄책감을 부추기는 누군가의 절망적인 귓속말을 과감히 차단해야 합니다. 나를 향한 비난의 메시지에 더 이상 귀 기울이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희망 가득한 밝은 이미지로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죄책감의 쇳조각을 우리 마음 속에서 완전히 빼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