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 시절

by 김경애
천경자 < 비개인 뒤, 1962>

어릴 적 이 그림 속의 집과 비슷한 곳에 살았다. 서울 상도동 어귀 어디쯤에 산을 깍아서 층층이 집들을 만들어 놓은 동네였다. 아카시아가 만발했고 느릿느릿 기어가는 달팽이를 구경하고 돌로 풀들을 짓이겨 소꿉놀이를 했었다. 유치원에서 초등입학시기 쯤이었던 것 같다.

어려서 많은 것이 기억나진 않는데 이 뽑던 날은 잊혀지지 않는다. 나의 흔들리는 치아를 빼려고 엄마가 빗자루를 들고 나를 쫓아다니고 나는 공포에 질려서 넓지도 않는 집마당을 이리저리 도망다녔다. 엄마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셨고 나는 그런 엄마가 더 무서워 열심히 뛰어다녔지만 결국 잡혀서 빗자루로 실컷 두들겨 맞은 후에 이가 뽑혔다. 아마 이뽑는 것보다 빗자루로 맞은 게 더 아팠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었고 이를 뽑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 무서웠다. 나는 지금도 겁쟁이이지만 어릴 적에 겁이 더 많았다. 그 때는 치과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고 국민건강보험제도도 없던 시절이라 유치를 빼는 정도는 엄마표 야매로 시술했다. 유치를 실에 묶어서 갑자기 당기는 것이다. 영화 '집으로'에서 할머니가 유승호 이를 뽑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 아이는 울음을 터트리고 뺀 치아는 지붕에 던지며 '까치야 까치야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하고 노래를 부르면 까치가 새 이를 물어다 준다고 했다.

또 가끔 옆집언니랑 윗집 할머니집에 가서 할머니가 나무젓가락 포장 부업하시는 걸 재미삼아 도와드리기도 했다. 지금은 기계가 자동으로 해주는 일이지만 1980년대에는 하얗고 길다란 습자지같은 것으로 비스듬히 나무젓가락을 말아서 감싼 뒤 끝부분은 꼬아서 마무리했다. 과연 위생적일런지는 의문이지만 사람이 직접 핸드메이드로 나무젓가락을 포장했다. 유치를 집에서 뽑는 것도 나무젓가락을 손으로 포장하는 것도 지금은 잊힌 풍경들이지만 내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 그 때 그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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