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비 개인 뒤 1962 작품을 보며
비 오는 날의 초대
천경자의 ‘비 개인 뒤’를 마주한 순간, 기억의 창이 조용히 열렸다. 오래 묵은 향기처럼, 어린 시절의 빗소리가 마음 깊은 곳에서 스며 나왔다. 요즘 같으면 비가 온다는 소식에 제일 먼저 우산을 찾고, 젖은 신발이 걱정되는 그런 날들이지만, 그땐 달랐다. 어릴 적 우리 집은 아주 좁은 골목길 안, 두어 번째쯤에 있던 파란색 대문을 가진 디귿자 모양의 작은 집이었다. 유일한 소란은 우리집 백구의 짖는 소리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누가 지나가기라도 하면 골목 전체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비가 오는 날. 처마 끝에서 빗물이 주르륵 흘러내릴 때면, 고요한 마음 안에 파장이 일곤 했다. 그런 날이면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파란 대문을 열고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얘들아, 비 온다! 나와!”
우산은 아무도 들지 않았다. 그건 누군가의 말처럼 ‘어른들이 준비하는 물건’ 같았기 때문이다. 친구를 한 명, 또 한 명 불러 골목을 돌다 보면 금세 여럿이 됐다. 우리들의 최종 목적지는 골목 맨 꼭대기에 있는, 커다란 교회 앞. 잿빛 시멘트 마당엔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생겨 있었다. 웅덩이마다 하늘을 거울처럼 담고 있었고, 바람이 불면 수면 위로 작은 동심원이 번졌다. 우리는 그 위를 첨벙거리며 뛰었다. 물이 옷에 튀고, 신발 안이 축축해지고, 바지가 허벅지까지 젖어도 상관없었다. 누가 제일 멀리 튀기는지, 누가 제일 빠르게 달리는지, 깔깔 웃으며 그저 한없이 뛰었다.
같은 반이었던 한 친구는 늘 창문 너머에서 우리를 지켜보기만 했다. 몸이 약했던 것인지 좀처럼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물끄러미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아버지는 우리들의 젖은 시절을 좋아하지 않았다. 비를 맞으며 웃는 일, 옷이 젖는 일, 소란스럽게 떠드는 일이 불편했던 어른 중의 어른이었다. 그녀는 늘 안전한 어항 속의 작고 예쁜 지느러미를 가진 물고기 같았다.
교회를 지나 골목을 더 올라가면, 골목은 잠시 넓어졌다. 그곳은 마치 우리에게만 허락된 운동장 같았다. 우리는 비를 머금은 시멘트 위를 달렸고, 가끔은 주저앉아 웃느라 배가 아팠다. 그렇게 우리는 빗물로, 웃음으로, 친구들로 우리의 초등학교 시절을 다시없을 시절로 적시고 있었다.
우산을 든 어른
지금 나는, 비가 온다는 예보를 보면 서둘러 신발장 문을 연다. 가장 가볍고 접기 쉬운 2단 우산을 고를지, 아니면 넉넉하게 덮어줄 장우산을 챙길지 고민한다. 비에 젖는 건 불편함이고, 준비 없는 건 무책임처럼 느껴진다. 어른이 된다는 건, 예상 가능한 불편함을 감당하지 않고 미리 피하는 법을 배우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모험 없는 사람이 되어간다.
비에 젖으면 감기 걸릴 수 있다는 상식, 물기를 흘리면 민폐가 된다는 사회성. 적절한 거리를 지키고, 상황에 어울리는 준비를 갖춘 삶. 그게 어른으로서의 태도라 배웠다. 가끔은 문득, 묻고 싶어진다. 지금, 이 나이에 아무 예고 없이 우산도 없이 빗속을 걸어간다면,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유난스럽다고 여길까, 아니면 미쳤다고 생각할까? 사실 나는 그저 어린 시절처럼, 잠시라도 빗속에서 자유롭고 싶을 뿐이다. 그 투명한 빗방울이 내겐 여전히 생의 감각이고, 살아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마음에 남은 비
천경자의 1962년 작품, <비 개인 뒤>를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바로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그림 속 여인은 노란 우산을 쓴 채 천천히 길을 걷고 있다. 개어버린 하늘 아래, 그녀의 걸음엔 아직도 물기를 머금은 마음이 묻어 있다. 그녀는 앞으로 걷고 있지만, 마음은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였다. 희망의 노란 우산 속 그녀는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그녀의 그림 속 여인을 보며 문득 내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젖은 신발, 파란 대문, 물웅덩이, 친구들, 그리고 그 시절의 나. 천경자의 굴곡진 삶을 나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녀가 견뎌야 했던 고독과 상처는 오롯이 그녀의 몫일 테고, 나는 그것을 상상할 뿐이다. 그녀의 그림은 그녀의 생각과는 다른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아마도 그건, 비가 갠 뒤에도 쉽게 마르지 않는 마음의 물웅덩이 때문일 것이다.
나는 될 수 있으면 좋은 기억을 붙잡으려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따뜻한 쪽을 바라보려 애쓴다. 그래서 천경자의 그림이 때로는 낯설기만 하다. 슬픔과 환희가 강하게 베인 화면 앞에서 나는 한발 물러서곤 한다. 내 안의 소용돌이를 되도록 편안한 상태로 만들려는 나와 그 반대편에 있는 그녀의 그림들.
파란 대문, 빗물, 물웅덩이, 친구들. 그 모든 기억은 나에게 <비 개인 뒤>라는 그림처럼 남아 있다. 뭔가를 끝낸 것 같지만 끝나지 않은, 뭔가를 말한 것 같지만 말하지 않은, 조용한 이야기처럼. 그 그림 앞에서 나는 다시 어린 시절의 내가 된다. 마음속 깊은 곳, 아직 마르지 않은 빗물이 조용히 흐르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렇게 나는 다시, 그 시절의 골목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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