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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랑이

by 김경애
에드바르트 뭉크 <절규>

참 이상한 그림이다. 입 벌린 해골바가지 얼굴에 뒤로 보이는 행인들의 머리는 배경에 녹아들어 있는 건지 없는 건지도 불분명하다. 마치 어렸을 때 '아침 먹고 땡! 점심 먹고 땡! 창문을 열었더니 비가 오더래~ 지렁이 세 마리가 기어가더래~ 아이고 무서워 해골바가지~'노래를 부르며 그렸던 해골바가지 같다. 인물도 배경도 아지랑이에 흔들리는 피사체처럼 흔들린다.

사진의 발명 이후 미술가들에게 더 이상 실물과 똑같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의미가 없어졌다. 눈에 보이는 빛과 색의 인상을 그대로 표현하는 모네, 드가, 피사로 등의 인상주의가 출현하였고 후기 인상주의 고흐에 와서는 그 순간을 어떻게 느꼈는가를 그렸다. 뭉크는 그 계보를 이어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마음속 감정과 불안을 강하게 표현하는 표현주의로 발전시켰다. 인상주의가 '눈으로 본 세상의 인상'이라면 표현주의는 '마음으로 느낀 세상의 진짜 얼굴'인 셈이다.

맞다. 뭉크의 그림 속 대상들이 흔들리는 것처럼 나 역시도 매일의 반복 같은 일상 속에서 흔들리고 있는 내 감정을 마주한다. 남편이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에서, 아이들의 냉담한 반응 속에서, 타인의 차가운 눈빛 속에서 감정은 계속 흔들린다. 따뜻한 커피 한 잔에서, 따뜻하게 건넨 말 한마디에서, 건강하게 자라준 아이들에 대한 고마움에서, 타인의 작은 배려에서도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는 감정을 발견한다. 입동이 지나고 날씨가 추워지고 있는 요즘, 남편과 아이들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와 미소로 그들의 마음에도 아지랑이를 피워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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