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의 절규
2022년 여름, 최정주의 아트앤뮤직, 뭉크편에서 깊이 뭉크를 만나고 왔다. 피아니스트 출신인 최정주 교수님은 직접 서양미술을 공부하고 해외 미술관을 다니며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아트와 음악이 접목된 강의를 진행하셨다. 명화에 클래식이 더해지자 강의는 매우 품격 있고 흥미로운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뭉크의 「절규」를 다룬 강의는 시작부터 끝까지 가슴을 조여오는 듯한 아픔과 불안감이 듣는 내내 함께 따라온 여정 같았다. 그의 고통스러운 삶을 대변하며, 최정주 교수님은 그에 걸맞은 피아노곡을 함께 들려주셨다.
“질병과 광기는 내 요람을 지키는 검은 천사들이었다.”
뭉크는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늘 이렇게 말했다. 가족들이 줄줄이 병에 걸렸고, 끊임없는 불행이 그에게 들이닥쳤다. 엄마와 아버지, 누나까지 잃은 그는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시달리며 살아갔다.
어느 날, 친구와 함께 길을 걷던 중 해가 지고 있었고, 우울감이 밀려왔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검푸른 피오르(뭉크는 노르웨이 사람이다)에 불 같은 구름이 걸려 있었고, 그는 불안에 떨며 서 있었다. 자연의 절규가 너무 괴로워서 귀를 막았다는 이야기다. 마음이 너무 힘들고 괴로우면, 붉은 노을에 뒤덮인 구름도 뒤틀려 보일 것이다. 그의 불안과 괴로움이 아름다운 자연과 뒤엉켜, 감수성이 극에 달한 「절규」의 표정과 배경을 만들어낸 건 아닐까.
에드바르 뭉크의 1896년 <절규>
절규하다: 있는 힘을 다하여 절절하게 부르짖거나 큰소리로 외치는 행위.
극심한 고통, 두려움, 분노, 슬픔의 강렬한 감정은 그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악소리가 날 만한 긴박하고 절박한 감정이 붓질을 타고 함께 흘러간다. 처해진 상황과 감정이 가장 밑바닥에 와 있을 때 명작이 나오는 걸까. 세기의 작품이라는 뭉크의 「절규」는 보는 이에게 단 3초 만에 자기 손을 귀에 대고 괴로운 표정을 짓게 만든다. 그 안에 있는 자신의 숨겨진 분노를 억누른 채.
나의 절규
손을 귀에 대고 악소리가 날 만큼 절규했던 적이 있는가.
나에게는 그런 절규의 순간들이 여러 번 있었다. 스무 한살 초반의 일이다. 아버지가 바꿔준 집 명의를 어머니가 월세로 돌려, 가지고 있던 보증금을 모두 주식에 날려버린 일이 있었다. 우리 가족은 살고 있는 집이 월세인 줄 몰랐다. 이모가 우리 집에 와서 그 사실을 폭로했고, 자신이 빌려준 돈을 갚으라며 찾아왔을 때, 이미 모든 돈을 날린 엄마에게 따지다가 가족 모두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뭉크의 「절규」같은, 나의 절규의 순간이었다. 머리가 어지럽고 가슴이 짓눌리던 그때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고, 누가 나를 불러도 들리지 않았다. 핏빛 하늘 아래 귀를 막은 나였다.
에드바르 뭉크의 〈1916년 베르겐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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