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의 여인
어두컴컴한 실내 창가에 예쁜 꽃이 놓여있다. 창 밖에서 한 여인이 안을 들여다본다. 어두운 실내에서 창밖에 얼굴 하얀 여인네가 저리 서 있으면 좀 무서울 것 같다. 만약 내가 안에 있었다면 깜짝 놀랐을 것이다. 자세히 보니 검지손가락을 치켜든 모습이 무언가를 가리키는 듯 하다. 그리고 창 밖 저 멀리에는 바다가 보인다.
모텔
바다. 바다에 가 본지가 얼마나 되었나? 생각해본다. 가까운 매향리 바다에 갔다 온 지도 벌써 1년 이상 된 것 같다. 아이들 어릴 때는 고성이며 여수며 강화며 안면도, 강릉, 남해, 부산, 속초로 바다 보러 다니고 해외로는 동남아 필리핀, 태국을 다녀왔다. 그런데 코로나로 3년을 묶여서 여행을 못 다니는 동안 아이들도 훌쩍 컸고, 코로나로 남편 수입도 여의치 않아 이래저래 여행을 못 가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남편이 자영업을 하고 있어 따로 휴가가 없다. 일이 나오면 바로 해야 해서 항상 대기 중인 상태다. 그나마 명절 때는 연휴 전에 일이 나오지 않으면 연휴를 쉴 수 있어 우린 주로 명절 때 여행을 다녔다. 하지만 연휴 전에 가부를 알 수 있으므로 미리 예약하는 건 불가능하다. 우선 여행지로 가서 숙박을 찾아볼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엔 숙박업소‘모텔’이 어느 지역에나 잘 마련되어 있다. 그래서 우린 모텔에 숙박을 잡고 여행지를 둘러보며 바다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기념품(주로 애들 장난감이지만)도 사고 놀러 다녔다. 딸애가 유치원 때였다. 수원역에 놀러갔는데 역시나 그곳에도 잘 마련돼 있던 모텔의 간판이 아이의 눈에 들어왔다. 아이가 하는 말 “아!모텔가고 싶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모텔이란 숙박업소를 그렇게 건전하지만은 않게 보는 걸 알기에 딸애의 발언에, 여행가고 싶다는 의미는 이해하지만 당황했었던 기억이다.
이제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은 명절에 여행 다니는 것보다 세뱃돈과 용돈 받는 걸 더 좋아해서 친정과 시댁으로 인사를 다닌다.
딸아이가 놀이동산도 캐리비안베이도 여행도 가고 싶다고 했는데 벌써 방학이 다 지나가고 있다. 일단 어디 한 군데라도 놀러갈 계획을 세워봐야 겠다.
신혼여행
여행이야기를 하니 신혼여행이 떠오른다. 남편이 회사를 다닐 때였다. 남편이 영업한 거래처와 계약한 지 얼마 안 되어 남편이 휴가기간 동안 자리를 비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결혼식을 하고 반년이 지난 후에야 신혼여행을 갈 수 있었다. 그나마 그것도 여행 떠나기 일주일 전에, 여름휴가까지 합쳐서 겨우 일주일을 받았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일주일 뒤 출발할 수 있는 여행상품을 뒤지기 시작했다. 어렵사리 한 여행사에서 표를 구할 수 있었다. 나는 손예진이 선전한 포카리스웨트의 촬영지 산토리니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 그리스에 아테네산불이 나서 난리였다. 나라가 어지러운데 여행자인들 반갑겠냐며 여행사에서 피하는게 좋지 않겠냐고 해서 포기했다. 동유럽으로 마음을 바꾸고 체코의 프라하와 체스키크롬로프, 오스트리아의 빈과 할슈타트 등을 돌아보는 일정을 짰다. 일주일동안 들뜬 마음으로 교통편과 숙박일정을 팩스로 주고받으며 여행사와 열심히 조율했다.
드디어 출발 전날! 여행사에서 연락이 왔다. 가는 비행기 표는 구했으나 일요일에 들어오는 표를 못 구했다는 것이다. 하루 동안 숙박등 부대비용을 부담해 줄 테니 하루 늦게 들어오면 안 되겠냐며 양해를 구하는 것이었다. 남편에게 물었더니 본인은 월요일에 반드시 출근을 해야겠으니 그렇게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는 수없이 체코와 오스트리아를 포기하고 출발 하루 전날, 또 다시 여행상품을 뒤졌다. 신문에서 4일 뒤 출발하는 세부 초특가여행 199,000원에 준특급리조트에 호핑투어 등등이 포함된 여행상품을 찾아서 예약했다. 숙소를 업그레이드 하려고 문의하니 현지에 가서 숙소를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 상품을 변경하는 것보다 비용이 덜 든다고 해서 그리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일본으로 출발해서 4일 뒤에 돌아오는 왕복비행기표를 예매했다. 일본에는 남편의 여동생이 있어 그리로 갔다. 시누이가 료칸을 예약해주겠다는데 평소 열 많은 남편은 뜨거운 게 싫다며 거절했다. 나와 남편은 신주쿠나 하라주쿠를 가고 싶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시누이가 홍대랑 똑같다며 갈 필요 없다고 요코하마에 있는 놀이공원을 가자고 했다. 하루는 도쿄타워에 가고 하루는 아사쿠사, 하루는 요코하마의 놀이공원에 갔다. 그곳의 롤러코스터는 너무 길어서 어지러움 끝에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인천공항에 돌아와 한참을 기다려서 다시 필리핀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세부에 도착해서 숙소 업그레이드를 물어보았더니 호텔을 바꿔야 하고 가이드도 바뀐다고 자기가 잘 해 줄테니 숙소를 바꾸지 말고 그냥 있어달라고 권유해서 남편이 그러자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준특급 리조트라는 곳이 생각보다 참으로 소박한 곳이어서 도마뱀들이 출몰하는 것이었다. 벌레 싫어하는 도시남자인 남편이 짜증을 내는 것이었다. 이번엔 나도 짜증이 나는 거다. 반년 뒤 신혼여행도, 일주일 전 휴가고지도, 하루 출근 못 미뤄 동유럽 포기한 것도, 료칸도 신주쿠도 다 양보했건만, 그런 나에게 도마뱀 땜에 짜증을 내다니! 이건 너무 한 거 아닌가! 겨우 반나절 간 삐짐이었지만 아직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나의 신혼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