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엄마란,
언제부턴가 모녀간 대화를 듣거나 볼 기회가 있을 때, 자연스럽게 엄마의 입장에 감정이입이 되는 나를 보면서 나이가 들었구나 혹은 이제 진짜 엄마가 되어가는구나 느낀다.
비행기에서 20대 초반의 딸과 50대 즈음되어 보이는 엄마가 있다.
내 바로 앞자리이기도 했지만, 그들이 하는 대화에 뭔가 관심이 갔는지 귀를 기울였다.
딸이 계획한 이번 제주여행에 엄마가 걱정을 표했나 보다. 그런 엄마의 반응에 속상한 딸이 속사포 랩을 뱉어내고 있다. 이런 광경, 이런 대사 낯설지가 않다...
시간여행을 온 건가. 나와 엄마 모습이 겹쳐 보인다.
딸의 속사포 랩에 난감해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졌다. 왜일까 나는 나이로 보나 역할로 보나 딸에 좀 더 가까울 텐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과거의 내 모습이 딸이긴 했지만, 이제 다가올 미래에는 50대의 엄마가 내 모습처럼 보이기도 해서겠지. 어쨌든 이 광경이 시간여행이라면 딸에게 얼른 다가가서 입꼬리를 조금 올려주고, 미간에 진 주름도 조금 펴주고 돌아오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딸을 키울수록 '엄마'라는 이름이 주는 위대함을 점점 더 느끼고 있어서인지 엄마는 점점 더 소중해져 간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기도 한 데, 난 보통 해결하기 어렵거나 곤란란 상황에 맞닥뜨릴 때면 그 분야 혹은 내가 기댈만한 누군가를 떠올리고는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어떻게 말했을까?’ 고민한다.
모든 것에 답을 찾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멀리서 새어 나오는 불빛정도는 찾을 수 있으니까.
그 마저도 도움이 안 될 때면 나만의 119에게 전화해선 묻곤 한다. “엄마 어떻게 해야 돼?”
위대한 내 엄마, 나만의 긴급전화다.
나도 머지않아 우리 딸의 긴급전화가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