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세계 멸망 뒤, 328일째
어둠이 깊게 내려앉은 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순간 속 이곳이 어디인지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스스로의 감정뿐. 우울감이 온몸을 지배했다. 쳇바퀴 돌듯 매일 똑같은 삶을 반복하고 있었다. 가난하지도 않은 집은, 굳이 따지자면 부유한 축에 속했지만, 어딘가 심히 어긋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집? 나에게 집이란 게 있었던가?
머리에 큰 의문이 생김과 동시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다가온다. 불빛은 매섭도록 빠르게 접근했다. 그리고 점점 커졌다. 작았던 불빛은 어느새 집채만 하게 커져 그를 위협했다. 그는 제 앞으로 다가온 불빛을 보자마자 삼켜지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괴물 같은 빛이 정말로 그를 삼키려는 순간.
“헉! 허억…. 헉!”
숨을 몰아쉬며 현석은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하아… 아침부터 또 그 꿈이야? 진짜 지겹다….”
현석은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고 머리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아침부터 꿈자리가 사납다니 어딘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집채만 한 불빛이 자신을 삼키는 꿈은 지겹도록 꿈에 나타났다. 괜찮다가도 잊을만하면 나타났다. 마치 잊으면 안 된다는 듯.
“그날 전에는 꾼 적 없는 꿈인데… 진짜 요즘에는 왜 자꾸 나타나지….”
현석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루의 기분을 망치는 거지 같은 꿈은 그날 전에는 꿔본 적 없는 꿈이었다. 마치 세계가 절대 그날을 잊지 말라는 듯 괴롭히기라도 하는 것만 같았다. 혼자 살아남은 자신을 저주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땅 밑으로 꺼지려는 기분을 애써 머리를 흔들어 털어낸 현석은 기지개를 켜며 밖으로 나갔다.
연기가 자욱한 세계. 그가 집이라고 부르는 것은 고작 비를 피할 수 있을 정도로 허름한 나무집이었다. 그 나무집도 현석이 혼자 고생, 고생하며 만든 것이었다. 잠시, 나무집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주우러 다녔던 나쁜 추억이 떠오른 현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무집은 추위도, 먼지도 무엇하나 제대로 막아줄 수 없었지만, 그에게는 세상 전부였다. 겨우 허름한 나무집 한 채가 세상 전부인 세계. 지금, 이 세계는 그런 곳이었다.
“하…. 세계가 끝나도 하늘은 아름답네.”
아침 일찍 눈이 떠진 현석은 집 밖에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며 낮게 혼잣말을 뱉었다. 328일째 혼자 살다 보니 혼잣말이 늘었다. 혼잣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말할 사람이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세종대왕님이 힘들게 만들어주신 한글을 전부 잊어버릴 것만 같아 혼자라도 말해보도록 하니 습관이 되어버렸다.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하늘은 푸르렀다. 안개가 낀 것처럼 먼지가 자욱했지만, 미세먼지가 매일 껴있던 328일 전 한국보다 깨끗했다. 건물은 부서지고 무너진 지 오래였지만 그사이 자라난 나무들과 간간이 보이는 동물들이 세상을 나름대로 운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운치가 있다. 딱 그뿐이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에게 예쁜 것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현석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먹고 살고, 다시 하루를 버틸 수 있을까. 그 고민뿐이었다.
“그냥 확 죽어버릴까….”
현석은 오늘도 늘 하던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죽고 싶다는 말. 어제도, 그제도. 지금도, 하다못해 내일도 할 것이다. 계속 생각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알았다. 아무리 입 밖으로 죽고 싶다고 내뱉어도 절대로 죽지 못할 것이라는 걸. 죽는 것도 용기가 필요했다. 세상에 홀로 남았지만 죽을 수 있는 용기 따위 그에게는 없었다. 328일 전 그랬던 것처럼 미친 듯이 살고 싶었다.
“벌써… 328일이나 됐네.”
현석은 집 앞마당에 그려놓은 표식을 바라보았다. 그날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매일 매일 기록하는 표식이었다. 오늘도 현석은 그 표식을 바라보며 씁쓸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는 자신이 새긴 표식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니, 생각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정확히는 그날, 세계가 멸망한 순간을 떠올리려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 보려고 해도 그 순간이 생각나지 않았다. 어떻게 세상이 멸망했으며, 대체 어떻게 자신이 이렇게 혼자 살아남았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냥 마치, 자고 일어났다니 혼자 뚝 이 세계에 떨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충격을 많이 받았나 봐. 여전히 생각이 안 나네.”
혼자 남은 이상, 가족들도 친구들도 다 죽었을 텐데 그 순간도 기억나지 않았다. 마치 딱 그 부분만 깔끔하게 기억을 도려낸 것처럼. 어딘가 이상했지만, 현석은 오늘도 그냥 넘어갔다. 어차피 이미 혼자 남았으니까. 벌어진 일이니까.
그래. 세계는 멸망했다. 정확히 328일 전에. 지금까지도 그 이유는 몰랐다. 그냥 어느 날 눈을 떴더니 세상에 혼자 남아있었다. 폐허가 된 세상에 자신만 혼자 덩그러니 서 있었다. 세상은 온통 연기로 뒤덮였고 건물들은 불타 재가 되고 있었다. 그나마 멀쩡한 건물들은 부식되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길거리로 나가면 동물의 사체가 보였고 살아있는 식물도 찾기 힘들었다. 살아있는 사람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마치 사람들이 전부 한순간에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그날 이후 그는 단 한 명도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는 확신했다. 이 세상에 남겨진 사람이라고는 오직 자신뿐이라고.
“엄마, 아빠….”
아직도 현석의 마음속엔 가족들이 자리했다. 사실, 별로 부모님은 보고 싶지 않았다. 현석은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까. 자신은 부모님께 폐만 끼치는 존재였다. 자신이 태어났기에 부모님의 인생이 괴로워졌다. 그러나 부모님만 떠올리면 가슴 한편이 묵직하게 무거워졌다. 조금 마음이 울렁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부모님이 제게 해준 것도 자신이 부모님께 해준 것도 없지만 그저 하늘을 올려다보며 바랄 뿐이다. 부모님이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가셨기를.
“진짜, 오늘은… 죽고 싶다.”
현석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한숨 어린 목소리가 하늘을 갈라놓았지만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조금은 괜찮아진 세계가 그의 속도 모르고 푸를 뿐.
“하아….”
작게 한숨을 내쉰 현석은 천천히 발을 옮겼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엄마 심부름으로 샀던 토마토 씨앗을 땅에 심어보았지만, 당연히 자라나는 일은 없었다. 세계는 멸망했으니까. 토마토가 자라나는 희망 따위 그에게 줄 리가 없었다. 먹을 게 없는 지금, 그는 오늘도 먹을 것을 구하러 다녀야 했다.
지금은 자신에게 전부인 직접 만든 나무집을 슬쩍 훑어본 현석은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돌아올 집이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사소한 것에 감사해지다니…. 좋아해야 하는 거야, 말아야 하는 거야?”
자신이 처한 현실에 작게 비소를 날려준 현석은 서둘러 몸을 움직였다. 해지기 전에 돌아와야 했으니. 그가 주로 먹을 것을 둘러보는 건 무너져가는 마트나 편의점 그런 곳이었다. 근처에 산도 있었지만 혼자 가기는 무서웠다. 뭐가 나올지 몰랐으니까. 큰 동물이라도 나오면 맥도 못 추리고 죽을 것이다.
“맨날 죽고 싶다고 입에 달고 살면서.”
작게 혼잣말을 내뱉은 현석은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혼자 살아남은 게 비통스러워서 그만 죽고 싶다고 늘 말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자신은 계속 살고 싶었다. 죽는 게 두려웠다. 다치고 죽는 게 두려워 작은 산조차도 올라가지 못했다. 자신은 이렇게 이중적인 사람이었다.
“오늘은 조금 멀리 나가볼까.”
집 근처에 있는 웬만한 상점은 거의 다 둘러보았다. 어지간하면 구할 수 있는 식자재가 없을 것이다. 현석은 오늘은 조금 멀리 나가보기로 했다. 평소보다 멀리 나가기가 무섭게 처음 보는 슈퍼마켓이 눈에 띄었다.
“어! 슈퍼다!”
눈동자가 커진 현석은 재빨리 슈퍼마켓 쪽으로 뛰어갔다. 도대체 힘이 어디서 났는지 모를 정도의 빠르기였다. 며칠 제대로 먹지 못해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드디어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다는 희열감에 힘들지도 않았다.
“아…. 진짜….”
그러나 행복했던 기분과는 다르게 슈퍼는 꽝이었다. 절반이 불타 날아가 버렸고 그나마 남아있는 절반은 채소 판매대라 다 상하고 짓물러 터진 채소밖에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먹을 게 귀해도 이런 걸 먹을 수는 없었다.
“어휴…. 오늘도 허탕이네.”
작게 한숨을 내뱉은 현석은 슈퍼에서 나왔다. 꼬르륵- 그의 배에서 천둥이 요동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체력을 소모했더니 더욱 배가 고파지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