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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찬 Sep 15. 2023

홍콩간다

홍콩 보내줄께

#Jam있는중국이야기-909 “홍콩 간다,보내 줄께중국,중국인중국,중국인


오늘 오빠가 “홍콩 보내 줄께”

“그것도 여권 없이”

젊은 시절 허세 떨며 한 번씩

던져 본 멘트이다.


“홍콩의 밤거리”

“홍콩 아가씨”

이 처럼 홍콩은 흥청거리는

유흥과 오락의 대명사 였다.


1960년~1970년.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

고향을 떠나 떠나

다른 지방에 여행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큰 자랑거리 였다.


서울 가 보았느냐가 큰 훈장 처럼

화자 되곤 했다.

그런데 심지어 다른 나라를

여행하고 돌아온다는 것은

너무나도 큰 자랑거리 였다.


​그 당시 홍콩이라 하면,

관광, 쇼핑, 음식, 술, 여자 등

놀기 좋은 도시로

꽤 유명했습니다.


그리고 홍콩은 주변에 있는

조금만 섬으로 상대적으로

굉장히 볼거리가 많다고

소문이 난 데다가


서구문물를 지니고 있는

영국령이기까지한 홍콩이

자연스레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됐습니다.


그러한 시대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곳에 여행을 하게 되면,

특히 그러한 환경은 우리나라

사람들을 뿅가게 만들었다.


바로 여기에서 사람들은 '

‘최고의 극치를 맛보는 기쁨'을

한마디로 "홍콩 간다" 또는

‘홍콩 갔다 왔다"는 말로

표현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설.


1960년대 중반 베트남에서는

전쟁이 계속 되었다.

우리도 미국 의 요청에 따라

병력을 파견했다.


우리와 협동작전을 수행했던

미군들은 전쟁중에도

휴가를 줬던 모양이다 .

이 때 미군들이 해외로

휴가를 나가기도 했는데

그 중 한곳이 홍콩 이었다.


홍콩은 영어가 통하는 데가

영국의 문화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베트남에서 그리 멀지도 않다.


그러다 보니 미군들이

홍콩 간다는 말은

참전 한국군에겐

선망의 대상 이었다.


홍콩가서 신나게 놀고 즐기고 오겠구나 하는

부러움이 퍼져 나가면서”홍콩간다”

말이 시작 되었다는 설이다.


이렇게 홍콩이라는 도시를

주로 오락과 유흥의

대상으로만 생각해 왔다.

그러나 여러 해 전부터 시작된

홍콩의 민주화 운동이

우리의 인식을 조금 씩

바꾸어 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문화는 아는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며

느끼는 만큼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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