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길
오랜만에 보는 고등학교 친구들 16명이 보였어. 대학생 이후로는 모이자 모이자 하면서 모두 모이지 못했던 친구들이 너의 죽음으로 인해 모인다는 게 아이러니하더라. 네가 죽으면서까지 우리들의 우정을 지켜주려고 했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
사실 그 당시 기억은 명확히 떠오르지 않아. 어머님의 울음소리와 친구들의 '꺼억, ', '흑흑' 하는 소리가 겹쳐져서 귀가 멍해졌어. 내 몸에서 그렇게 많은 수분기가 있는지는 나도 몰랐어. 눈이 퉁퉁 부어서 다리가 무너지면서 무릎에 얼굴을 박고 울었어. 다른 친구들의 손길이 느껴지는데 그게 너의 손길처럼 느껴져서 어린아이의 모로반사처럼 고개를 들어서 '그' 친구를 보고 우린 한참을 안고 울고 또 울었어.
그렇게 하늘로 너를 보내고 매년 시린 겨울이 가고 따스한 봄이 오면 너에게 가고 있어. 지금은 근무하는 곳이 다른 곳이지만 너에게 가는 길은 항상 같은 길에서 같은 노래를 들으면서 운전대를 잡아. 이제는 다리가 떨리지 않지만 차가운 대리석 바닥을 느끼며 하얀색과 유리로 이루어진 도서관 같은 그곳을 걸으면 저릿한 기운이 나를 맴돌아.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도서관의 책꽂이들에 꽃이 책들처럼 다양한 고인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 같았어. 2층 계단에 올라와 34걸음을 걸으면 너에게 도달하지. 그리고 키가 작았던 제이 너라서 그런지 맨 밑에 자리 잡고 있는 책꽂이에서 책을 꺼내듯 너에게 말을 걸어.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고 드뷔시의 '달빛'을 들으며 너에게 말을 걸어. 인사를 하고 1년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사실 나의 비밀을 이야기할 사람이 아무도 없거든. 가족들에게도 그들이 걱정을 할까 봐, 나의 악한 모습을 보이는 게 두려워서, 겁쟁이인 나의 방어기제일 수도 있어. 그렇게 나의 10%의 비밀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너에게 가져와서 이야기해. 네가 살아있을 때 그랬으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은 내가 너를 만나러 오는 이유를, 잊지 않으려고 하는 방법 같아.
너무 일찍 세상에서 사라진 너를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기고 싶어. 간직하고 싶어. 근데 제이야 시간이 흐르면서 너와 있던 일들을 기억하는 뇌세포들이 하나씩 죽어가는 게 느껴져. 그래서 친구들과 너를 기린다는 명목으로 네가 잠든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1박 2일로 펜션을 잡고 네 사진으로 포스터를 만들어서 같이 풋살도 하고, 고기도 먹고, 술도 마시고 마지막으로 그걸 태우면서 다시 뇌세포에 너와의 추억을 각인시켰어.
보고 싶다. 너를 잊지 않기 위한 방법을 또 찾아볼게. 오늘은 이렇게 너에게 보내지 못할 편지를 쓰면서 너를 기억해.
지금까지 너를 기억하는 6가지 방법.
1. 네가 좋아하던 노래 듣기
2. 죽음을 처음 들었던 그 도로에서 운전하기
3. 고등학교 모임에서 기억하기
4. 매년 나래원에 너 만나러 가기
5.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비밀 너에게만 이야기하기
6. 보내지 못하는 편지 쓰기
이렇게 6가지 방법이지만 내 뇌세포가 하나둘씩 또 죽어가면 다른 방법으로 너를 추억할게.
제이야,
내가 거기에 가게 되면 그때도 친구가 되어주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