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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기

빨래

by 트래거

옷을 나누어서 세탁하는 나

모든 옷을 한 번에 세탁하는 너


섬유유연제의 향기를 느끼는 나

세제는 몸에 나쁘다며 손톱만큼 넣는 너


건조기 옷과 말리는 옷을 확실히 구분하는 나

건조기에 모든 걸 맞기는 너


나의 빨래가 마음에 들지 않아,

모든 빨래를 하는 너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생마늘을 입에 넣은 듯 아리다


아껴서 입는 몇 안 되는 메이커의 검은색 티가

건조기에 들어가서 쪼글쪼글 라면이 되었다.

배꼽이 입을 벌리며 나오게끔 쪼그라든 티에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입을 뗀다.


"빨래 이제는 내거는 내가 하면 안 될까?"

이 말이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렸는지

"고마운지도 모르고!"라면서 퉤 침을 뱉듯이

말을 내뱉고는 침묵이 감돈다.


옷이 줄어든 게 속상한 게 아니야

점점 내가 없어지는 게 싫어서 그런 거야


같이 산다는 건 서로를 공유한다고 하지만

어느 순간 나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이

왠지 모르게 눈치가 보인다.

삶은 감자를 두 개를 쉬지 않고 먹은 듯

목에서 내려가는 가슴이 꽉꽉 막힌다.


답답하여 죽을 거 같은 건 나이기에

물이 필요해서

조용히 다가가


"미안해,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당신이 한 걸 부정하는 게 아니었어.

지금까지 빨래해 준 거 너무 고마워."

"앞으로 건조기 돌리지 말아야 할 건, 내가 따로 빼놓을게."


이렇게 다시 건조기는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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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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