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by 트래거

나는 달린다

어렸을 때부터 그래왔다

숨이 차오르면 생각이 멈추고

땀이 흐르면 마음의 먼지가 씻겨나간다


공부에 치이고,

사랑이 부서지고,

아버지의 말이 가슴에 못처럼 박힐 때마다

나는 달린다


찬 공기가 폐에 들어와 들락날락할 때

기분 좋게 미소 지어 보인다

하늘을 보며 구름을 세며

바닥을 느낀다


오늘도 새벽,

도시의 불빛이 아직 잠들지 못한 길 위에서

누군가를 지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억하기 위해 달린다


머리가 하얗게 비워지는 그 순간에도

그녀의 얼굴이 번져 들길 바라며

같은 하늘 아래,

어딘가에서 나처럼 뛰는 그녀를

잠시라도 마주칠 수 있길 바라며 달린다


달리면 잊히지 않는다

오히려 선명해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숨이 끊어질 듯 달리며

그녀를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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