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by 트래거

어렸을 적 나는

목욕탕이 싫었다.

수증기가 숨을 막는 것도,

아버지의 거친 때밀이가

내 살을 벗겨내는 것 같아 싫었다.


아버지는 무엇이 그리 더러웠던 걸까.

아니면 본전을 뽑겠다는 마음이었을까.

일찍 여읜 할아버지에게서

배우지 못한 아버지 역할을

나에게서 배웠던 걸까.

내 살이 빨갛게 달아오를 때까지

아버지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아팠지만,

“사내자식이 뭘 그리 아프냐”는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바나나우유 하나 사달라는 말도

우리 집 사정을 아는 내 눈치가

먼저 막았다.


성인이 된 뒤,

과제를 하다 지치거나

술을 마시다 막차를 놓치면

누구에게 연락하기도 겸연쩍은 나는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수증기 가득한 목욕탕을 찾았다.


혹시 몰라 한 시간마다 깨었지만

그곳은 따스했고,

그 값싼 잠자리는

세상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운

휴식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는 목욕탕과 멀어졌다.


어제 아내와 다투고

마땅히 갈 곳이 없던 나는

조용히 근처 목욕탕으로 갔다.

뜨거움과 차가움을 오가며

내 안을 데우고 식히고를 반복했다.

스마트폰도, 말소리도 없는 고요 속에서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날을 그려보았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서늘한 현실 속의

나를 다시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