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만하면 오는 그것
보기에는 건강해 보이는 것과 달리 어렸을 적부터 나는 감기를 달고 살았다. 몸의 일부분인 것처럼 계절마다 한 번씩 꼭 찾아오는 녀석이었다. 코로나 19 때 알았다. 마스크를 쓰고 손을 깨끗이 씻는 것만으로도 예방이 되는구나. 2021년과 2022년에는 감기에 걸리지도 코로나에 감염되지도 않았다. 처음 느껴보는 맑은 정신 상태로 1년을 보내니 봄의 향기가, 여름의 색감이, 가을의 여유가, 겨울의 따스함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과거의 사실 한 가지도 선명하게 다가왔다.
2002년 태풍 루사가 딸기 하우스를 모두 할퀴고 지나갔다. 할퀸다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루사는 거인이었다. 하우스를 짓밟고 갔다. 그날 밖에 나가기도 무서웠지만 그것보다 더 무서운 건 태풍이 불어서 이미 하우스가 망가질 걸 예감한 집 분위기였다. 우리 집은 다 무너져가는 집이 두 개가 있었는데 한 개는 실제로 아궁이에 불을 때서 자는 두 칸 자리 초가집, 그리고 시멘트로 발라서 만든 두 칸 자리 집이었다. 그리고 하우스는 9동을 대출받아서 크게 늘려갈 때였다.
초가집에서 잘 수는 없었고, 모두 모여서 시멘트로 발라진 집에서 모여있었다. 이불을 펴면 바닥이불 세 개로 다 덮이는 그런 곳에서 4명(누나는 고등학교 기숙사에 갔었고, 한편으로는 다행이었지만 누나가 있었으면 달랐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이 모여서 잠이 들지 못하고 멍하니 밖에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감기에 걸렸었다. 여름이 다 지나가는 시점에 걸린 감기에 아팠지만, 그 집안의 분위기가 더 아팠다. 태풍 소리와 함께 아버지의 큰 소리가 들렸다.
"휴... 야 그냥 다 자! 안 잔다고 뭐가 바뀌냐."
그 소리를 마치 기다린 듯이 우리는 이불을 덮고 누웠지만, 나의 기침 소리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짜증 섞인 목소리
"저 새끼는 분위기도 모르고 기침하고 자빠져있네."
나도 알고 있는 분위기, 숨 막히는 분위기에 그 소리가 어린 나를 태풍보다 더 강하게 닥쳐왔다.
벽 쪽으로 돌아서서 입을 손으로 막고 최대한 기침을 안 하려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눈물-콧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들키면 안 돼.. 더 이상 분위기가 이렇게 되는 건 싫어' 하면서 형이 물려준 큰 티셔츠를 얼굴까지 올려서 눈물과 콧물을 닦고, 기침이 나오려고 하면 코를 막으면서 지나갔다.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지만...
그 작은 방에서 나의 이런 소리를... 아버지, 어머니, 형은 모두 듣지 않았을까?
그런데 왜 아무도 나에게 괜찮냐고.. 아프냐고.. 기침해도 된다고.. 울어도 된다고 이야기해 주지 않았을까..
'모두 힘들고 무서워서 그런 거겠지.. 그래서 나를 봐줄 여유가 없어서 그런 거겠지'
그다음 날 학교는 휴교지만 나는 아픈 몸을 이끌고 하우스 비닐을 걷고, 넋 나간 아버지의 표정을 보며, 대민 지원 나온 군인들이 나눠준 빵을 먹으며 감기를 잊어 갔지만 기침은 3주가 넘게 이어졌다. 평생 남을 그날 밤의 기억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