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을 때

나만의 방법

by 트래거

울고 싶을 때가 있다. 하염없이 그러고 싶을 때가 있다.

눈물을 흘리면 무엇이 좋을까?


1.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나의 감정이 담긴 눈물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배출시키고 기분을 안정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엔도르핀 같은 화학물질들이 분비되어 마음을 진정시켜 줄 것이다.

2. 안구건조증이 있는 나의 눈을 촉촉하게 유지해 줄 것이다. 윤활 작용을 하여 눈의 표면을 보호하며 건조함예방 뿐 아니라 각막을 건강하게 유지해 줄 것이다.

3. 눈물에는 라이소자임이라는 항균 단백질이 포함되어 있어, 눈의 표면에 있는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를 '킬'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가끔 눈물을 흘리고 싶을 때가 있다. 위의 이유라면, 이유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내 몸에서 이상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야, 트래거 눈물 흘려!!! 눈이 건강해지고 싶다잖아."

이러면서 내게 눈물을 종용하는 것이다.


가끔 울고 싶을 때, 당신들은 어떤 상상을 하는가? 어떻게 하면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여 걷잡을 수 없게 되는가?


나는 죽음을 생각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인 엄마를 생각한다. 어머니라 쓰지만 엄마라고 부르는.. 그 존재가 세상에 없다는 생각의 문고리만 잡았을 뿐인데 눈물이 난다. 아직 문을 다 열지 안아도 흐른다. 그 눈물이 흘러서 문고리 위에 있는 구멍의 열쇠가 되어서 문을 열어준다. 그리고 5분이건 10분이건... 어쩔 때는 1시간 내내 허리를 끅끅대며 울어댄다.


눈물을 흘리기 좋은 때와 장소는 비가 차량의 지붕을 뚫을 듯이 오는 날 자동차 안이 좋다. 내 소리를 묻어줄, 내 모습을 가려줄 비가 있으니 마음껏 울어도 좋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저릿한데, 그녀의 죽음을 생각하면 찢어질 듯 아프다. 아낌없이 사랑을 나누어준 그녀에게 나는 해준 게 없는 것 같아서 그런가? 아니, 그것보다 근원적인 무엇인가가 나를 자극한다.


올해는 장마 기간이 이르게 시작이 되었다. 나는 조퇴를 단 후 차를 몰고, 나만의 장소로 이동한다. 그때는 엄마의 장례식장이 나의 눈물을 시작점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형은 고등학교 기숙사로, 누나는 대학교 시험기간이라서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집에는 어머니, 아버지, 나까지 세명이었다. 저녁을 먹기 전 아버지가 장례식장에 가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나가면 어머니와 단둘이 즐겁게 저녁 식사로 무엇을 먹을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힘겹게 시골 일을 한 건 두 분 다 마찬가지였지만, 옷을 다리고 찾아주는 것까지.. 모두 어머니의 몫이었다. 아버지는 그저 옷을 걸치기만 하면 될 뿐..


일이 터졌다. 자신이 입고 싶었던 옷을 어머니가 빨래를 안 하시고 빨래더미에 그냥 놓으신 거다. 그리고 아버지의 입은 점점 거칠어지고 욕설들이 터져 나왔다.(정말 별게 아니었고, 그냥 다른 옷을 입으면 되는 건데)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욕들을 어머니는 받고 있었고, 조금의 항변하는 대답은 그를 점점 악마로 변모시켰다. 그 당시 사춘기 었는지, 그 악마로 물들어가는 그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던 건지, 비 맞은 강아지처럼 작아진 어머니가 싫었던지 그에게 대들었다.


"욕 좀 그만해, 자기 옷 자기가 알아서 해야지, 왜 똑같이 고생한 엄마한테 뭐라 해!."

"뭐라고 이 ㅁㅊ 새끼가, ㄷㅈ려고 야 너 이리 와봐."

눈이 돌아간 그는 다행히 어머니에게 신체적 폭력은 가하지 않았지만, 자식들에게는 아니었다. 어머니는

"트래거야, 왜 그래 가만히 있어."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당시 나도 머리와 가슴이 빙빙 돌아 버린 건지

"ㅅㅂ, 누구는 욕 못해서 안 하는지 알아? 그만하라고 ㅅㅂ, 지겨워, 엄마가 불쌍해!!ㅅㅂ."

마지막 욕에서는 거의 목이 터질 것 같았다. 두 분 다 놀라셨는지, 2초간 멍해있다가 아버지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면서 옆에 있는 차를 먹는 작은 상다리를 잡았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껴안으며 나에게 나가라고 했고, 정신이 든 나는 신발도 신지 못하고 밖으로 도망쳐 나와서 맨발로 뛰고 또 뛰어 나갔다. 아무것도 없이 맨 몸으로 나와서 도착한 곳은 집에서 10분 거리의 야산이었다. 거기에는 산소들이 늘어져 있어서 지나다가 항상 무서워하던 곳이었다.


이상하게 그 상황에서는 무섭지 않았고, 산소 뒤에 몸을 가리고 하염없이 울면서 저주했다. 그를, 그리고 내 상황을 저주하며 울었다. 30분 정도 지난 후(아무것도 없어서 시간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그냥 해가 넘어가는 것을 보고 그 정도는 지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정신이 돌아온 나는 무서웠다. 내 상황이 무서웠고, 그에게 그 당시에는 정말 죽을 것 같아서 무서웠다. 그때는 그만큼 나에게는 커다란 존재였다.


해가 넘어가고 어둠이 내 마음을 잠식해가고 있을 때쯤, 집에 있을 어머니 걱정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가 장례식장에 가서 집에 없겠지라는 안일한 마음도 들었다. 생각이 꼬리를 물을 때쯤 맨발이 눈에 들어왔다. 발이 까져서 피가 흐르고, 그 피가 초록색 산소 위의 잔디에 맺힌 게 보였다. 검은색의 어둠이 나를 가려줄 때 집에 들어갔는데, 대문을 조용히 소리 안 나게 열고 들어가니 그가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악마가 아닌 도깨비 같았다. 그리고 겁에 질린 나는 무릎을 꿇고 살기 위해서... 비겁하고 구차하게 마음에도 없는

"죄송해요. " 하면서 울었다. 그 모습을 본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무엇인가를 던져버리면서 장례식장으로 갔고, 새벽까지 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저녁을 차려주셨다. 저녁을 먹고 누워있는 나의 머리맡에 오셔서

"하지마, 너네들 몸에 이상이 생기면 엄마는 못살아. 지금 너희 때문에 살고 있어."

하면서 조용히 흐느끼셨다. 그 모습이 싫어서 "미안해, 엄마, 미안해, "

하면서 무릎을 꿇을 채 꼬옥 안아드렸다. 조용히 흐느끼시는 작은 어깨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나는 울고 싶을 때 그녀를 상상한다. 장마가 시작되면 어머니에게 가장 많이 전화를 한다.

안 운 척하면서 "엄마, 뭐 해?" 끊기 전에는 부끄러운 듯 "사랑해"하고는 먼저 끊는다.


오늘은 다시 전화드려야겠다. 그리고 이번에는 전화하자마자 "사랑해"라고 먼저 말씀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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