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

개죽음

by 트래거

시골에서는 발바리라고 하는 믹스견을 많이 키운다. 어렸을 때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다가.. 줄에 묶여서 사는 덩치가 큰 강아지들과는 다른 종류의 작은 강아지이다. 작다고 해도 푸들정도는 되어 보이는 발바리 강아지는 각 집들 마다 색깔도 생김새도 다르게 생겼다. 지금 보면 이 아이들을 보면서 저게 진짜

개팔자가 상팔자

임을 알 수 있었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자유롭게 동네를 돌아다니고 밥도 먹고 싶을 때 먹는 시골의 발바리들 행복해 보였다. 어릴 때는 나의 친구로 지내는 녀석들이었다.


우리 집 발바리는 이름이 예쁜 '미미'로 하얀색에 백발의 미녀를 연상시켰다. 그 당시 내 나이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기억한다. 동물들을 좋아했던 나는 집에 고양이도 예뻐하고 묶여 있는 진돌이 목을 껴안고 놀 정도였다.

특히나 일반 발바리보다 한 뼘은 더 크고 털도 윤기가 나서 예쁜 미미는 가장 소중하게 대해줬다. 집에서 고기를 먹으면 몰래 가지고 나와 손바닥에 주곤 했었다. 미미는 고맙다는 듯이 기름진 내 손을 기름기가 다 날라 갈 때까지 혀로 핥아 주었다.


손바닥이 간질간질한 그 느낌이 좋았다.


농번기가 끝나고 동네 아저씨들이 집에 와서 고스톱을 치고 노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시기였다. 이때는 형하고 같이 나가서 노는 게 일이었고, 산에서 가짜 나무총을 만들어 놀곤 했다. 그날도 비가 올 듯, 하늘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어서 집에 들어왔다.


형과 함께 방으로 들어와서 조용히 TV를 켜고, 조금 뒤면 할 쥐라기 월드컵이라는 애니메이션 방송을 기다렸다. 이때 아버지가 들어오면 리모컨이 자신의 권력이라도 되는 양 우리에게 그 권력의 상징을 가져다 바치기를 원했고,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는 다큐멘터리, 6시 내 고향과 비슷한 종류의 프로그램을 주구장창 저녁식사 할 때까지 틀어 놓았다. 이날은 운이 좋았다. 밖에 아버지가 있는데도 들어 올 생각을 하지 않고 동네아저씨들과 이야기와 고스톱에 빠져있으니 말이다.


'트래거야 ~~'라고 갑자기 다정스러운 목소리 들렸다. 생각지도 못한 아버지였다. 나는 문을 열고 나가보니 웃음을 띠며 미미를 좀 잡아 오라고 하였다. 도저히 자기한테는 안 잡힌다면서...

'당연히, 그러겠지 맨날 자기 말 안 들으면 때리는데.' '그래도 무서워서라도 잡혔는데.. 왜 도망가는 거지.'

라고 생각했다. 생각은 길었지만 행동은 빨랐다. 나는 빨리 쥐라기월드컵을 보기 위해

혓바닥을 아랫입술에 붙였다 뗏다하면서 '어여 ~ 어여 ~ 여여' 소리를 내고 '미미야 ~ 미미야 ~ ' 외치며 찾아다녔다.


마루 밑에서 웅크리고 있던 미미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나에게 왔다. 나는 미미를 번쩍 안아 들어서 아버지에게 안기게 했는데 무서웠는지 오줌을 질질 싸고, 꼬리가 말렸다. 나는 왜 미미를 데려오라고 했는지 물어볼 용기도, 시간도 없었다. 내 손에서 미미가 떠나자마자 얼른 TV를 보러 갔다.


아빠가 뒤에서 아저씨들에게 미미를 자랑하는 소리가 귓등으로 들렸다. 어린 마음에 괜스레 뿌듯함을 느끼며 쥐라기 월드컵을 보는데, 옆에서 형이


"야, 미미 왜 잡아다 줬냐. 아빠가 뭐 할 줄 알고~~."

"하긴 뭘 해, 아저씨들한테 자랑하던데 발바리 치고 크고, 윤기 난다고."

"병신~" 형은 이 말을 남기고 TV에 열중했다.

그 말에 기분이 나빴지만, 그런 말에 나의 집중력을 깨뜨릴 수 없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쥐라기 월드컵이 끝나고 밖에 나가보니, 미미는 없었다. 미미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아...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란 생각에 정신을 반쯤 놓고 있었다.

악마들은 그렇게 저들끼리 '낄낄', '깔깔' 대며 피 같은 술을 마시고 있었다. 눈을 마주치기도 역겨웠다. 나 자신이 역겨웠다. 밖에 나가서 아무도 보지 않는 집 뒤에 외양간으로 이동하였다. 이제 한 마리밖에 남지 않은 소가 눈을 꿈뻑꿈뻑하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울기 위한 장소로 택한 곳.

나는 입을 틀어막고 울었다. 또 울었다. 그러면서


'트래거 새끼야, 너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잖아, 근데 그게 무서워서 확인할 용기가 없어서 대들 용기가 없어서, 설마 하면서 한 거자나.'


'악마의 칭찬이 듣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


소는 큰 눈망울로 나를 주시해주고 있다. 울다가 지친 나는 다시 소를 쳐다보고, 미미를 생각하며 계속 짖어댔다.


"미안해.. 미안해..."

Pixabay

옆을 쳐다보는데 하얀색 털이 바람에 날려서 흩어지고 있었다. 민들레 씨앗 같은 털을 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작은 나의 손을 보면서


이제는 이렇게 살지 않을 거야.

용기가 없어도 낼 거야. '병신' 같이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거야. 모르는 건 죄야.

그리고 나는 죄를 진거야. 미미에게.. 갚을 거야라고 다짐했다. 그때부터 집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그에게 조금씩 반항하면서 살게 된 것 같다.


어린 소년은 시골의 90년대 시골의 문화를 현재까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 아직도 어린 소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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