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원

처음 사랑에 배신당하다.

by 트래거

난 어릴 적 또래에 비해서 겁이 많을 뿐 아니라 나의 의견을 입 밖으로 내는 것도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물론 기억에 없지만 가족들이 이야기하기론 집 앞에 자동차가 지나갈 정도의 다리도 겁이 많아서 혼자서 못 건너가고 꼭 어른들의 손을 잡고 다녔다고 한다.

(어릴 적 이러한 겁쟁이의 모습이 마음속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다가 중요한 순간에 불쑥불쑥 얼굴을 내민다.)


아직 뇌리에 남아 있는 말도 잘 못하고, 겁쟁이인 트래거의 모습을 말해보려 한다.


어머니는 나에게는 무한대로 사랑을 주는 존재였다. 매일매일 조울증처럼 사람이 바뀌는 아버지보다는 한결같이 사랑을 주는 어머니를 좋아하는 막내아들이었다.

학교를 막 다니기 시작해서 숫자에 대한 개념을 알고 있었을 때였던 것 같다. 마루에 앉아서 혼자 강아지와 놀고 있는데 '왈왈' 하면서 놀고 있던 강아지 미미가 짖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 보니 검은색 멋진 세단에서 중년의 남성이 내렸다. 아빠 친한 형이라고 소개하면서

"아빠 집안에 있니? 네가 트래거 구나."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담배 냄새가 짙게 베인 손이 아버지와 친하다는 걸 알게 해 줬다.

"형님, 오셨어요."

하면서 그가 방에서 나와 신사를 데리고 들어갔다. 웃음소리와 진지한 이야기가 흐르면서 방 창문에서는 새하얀 연기가 흘러나왔다.


1시간 정도가 지나면서 그분은 나에게 그 당시 거금이었던 오천원을 주면서 이걸로 맛있는 거 사 먹어라고 하셨다. 검은색 세단이 내뿜는 매연 같은 냄새를 남기면서 두 명은 같이 나갔다. 그런 냄새와 얽혀서 그 거액의 돈을 어떻게 사용할까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마루에 누워서 양손으로 햇빛에 오천원을 머리 위로 들어서 보고 있었다.


어머니가 밭에서 일을 하고 들어오면서 소리를 치면서

"야 !! 너 그 돈 어디서 났어?"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기에는 너무나 큰 액수를 들고 있는 나에게 화를 내며 다그치셨다.

당황한 나는

"어. . 어 . . 돈 이거 내 거야."

라고 이야기를 했고

어디서 훔친 거라고 생각한 어머니는

처음으로 나에게 손을 대셨다.

찰싹이 아닌 퍽 소리가 날 정도로 내 귀싸대기를 때리셨다.


머리가 멍해지면서 울음이 터져 나왔고

"아니.. 아니.."

라는 소리만 반복했다.


어머니는 "내가 땅에 떨어진 돈도 똥이라고 생각하면서 지내라고 했지."

(돌은 만질 수 있으니 더러운 똥이면 만지지 않을 거니 어머니 나름대로 이걸 생각해 낸걸 뿌듯해하시면서 우리에게 예전부터 주입시켜 주셨다.)

없이 자라도 바르게 크기를 바랐던 그녀의 마음이 지금은 충분히 이해했다.


무서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자식만은 바르게 자라서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자라기를 바라고

어쩌면 지긋지긋한 생활에서 자식만은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7살 어린 소년에게는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충격은 상상도 못 할 만큼 컸다.

나를 믿지 못하는 그녀의 서슬 퍼런 눈빛과 행동, 분위기는 아직도 가슴에 새겨져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온 형은 그런 나를 데리고 달래주며 솔직히 이야기해봐


"아니, 아빠 친구가 돈 주고 가면서 내 거라고 하셨어."라고

알아듣지 못할 발음으로 이렇게 이야기했고, 형은 답답해하면서 듣는 걸 포기했다.


때마침 아버지가 오면서 심각해진 집안 분위기에 이유를 물었고,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권위를 지키고 싶었던 것인지

"내가 그래서 똑바로 이야기하라고 했잖아"라고 말씀하시며 나를 피하셨다. 자기 전에 눈물과 함께 내 볼을 어루만져주는 그녀의 손길을 느끼며 내 안의 겁쟁이를 조금씩 지워갔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마음 한구석에서


오천으로 처음으로 사랑에 배신당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어렸지만 어렸기에 느낄 수 있는 아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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