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서 점심시간에 공을 차고 있었다. 우리 팀이 3대 2로 이기고 있었고, 득점 중에 2골은 내가 넣어서 마음 것 친구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창가에는 그런 우리들을 보는 여학생들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고, 적극적인 학생들은 밖으로 나와 벤치에 앉아서 내 이름을 부르며 응원해주고 있었다.
당시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고 운동장 옆에 장미가 아름다워 보였다. 장미가 보인 걸로 보아 5월의 날씨 좋은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경기가 거의 끝날 무렵 정문에서 익숙한 흰색 트럭 한 대가 들어오고 있었다. 덜덜 거리는 소리는 매일 익숙하게 들었던 그 소리가 분명했다. 공격수이기에 상대방 골대 방향으로 들어오는 흰색 트럭을 정확히 볼 수 있었고, 집에서 왕처럼 구는 그 사람이 타 있었다.
오늘은 학교운영위원회의를 하는 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까부터 부쩍 좋은 자동차들이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지만, 농사 일로 바쁜 아버지는 당연히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밖에서 감투 쓰는 것을 좋아하는 그 사람은 내가 원치 않아도 학교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을 좋아했고, 집에서는 상스럽고 누구에도 들어보지도 못한 욕을 해대는 사람은 밖에서는 세상 모든 것을 아는 듯한 난 체를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학력이 중학교이며 공부를 깊게 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감을 믿는 사람이기에 말을 해보면 그 깊이가 드러나고, 밑천이 금방 나타난다. 하지만 자신의 고집을 끝까지 관철시키는 면만큼은 무서울 정도이기에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이 인정한다는 걸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그 당시 학생회장을 하고 있던 나는 그런 아버지가 창피했었다. 트럭을 타고 배 나온 아저씨가 당당하게 학교에 걸어 오지만 그 모습을 보고 귀가 빨개지는 건 다 반사였다.
축구 도중에 트럭을 보고 나서 아버지가 날 아는 체라도 할까 봐 사이드 라인에 붙어서 뛰다가 장미 덩굴의 가시에 팔뚝이 길게 베었다. 온통 정신이 다른데 있던 나는 뜨거운 물을 뿌린듯한 감각에도 그냥 뛰었다. 친구들이 붉게 젖은 하얀색 티셔츠를 가리키며 놀랐고, 나도 그걸 보고
' 어, 피나네' 하며 그에게 들킬세라 보건실로 뛰어갔다.
아픔보다는 창피함을 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웃음을 짓으며 보건실로 가서 치료를 받았고, 꿰매야 할 것 같다고 보건선생님의 말이 있었지만 이런 걸로 무슨 이라며 난 가볍게 넘겼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창가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는데 괜히 이런 나 자신이 속물인 것 같고, 우리 가족을 위협하는 개 같은 아버지지만 그래도 가끔 웃으면서 맛있는걸 먹이기도 하고 용돈을 주기도 하는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미안한 마음은 빠르게 번져갔고 이제는 빨간 내 심장이 미안함이라는 노란색으로 전부 물들어갔다. 집으로 가는 도중 그런 생각이 나를 잠식했다. 그래도 나의 부모인데.. 창피해하는 게 잘못된 것쯤은 알고 있다. 그는 모르겠지만 나 자신은 알고 있고 내 마음은 그걸 알고 있다.
저녁에 흰색트럭을 타고 계모임을 가는 그에게 처음으로
"조심히 다녀오세요. 아빠 사랑해요."라는 말을 하고
빠르게 방으로 들어왔다.
그의 얼굴을, 눈을 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이야기하고 왔다.
또 다른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했지만 나의 마음은 편안했고 다음날 아침 어머니가 아버지가 무척 좋아했다며 이야기했을 때는 뿌듯하기까지 했다.
나의 죄짓는 마음은 그걸로 사라졌고, 사랑한다는 말은 그 뒤로 그에게는 하지 못하는 말이 되었다.
지금 팔뚝을 보면 아직도 장미에 찢어진 상처가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