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터케니 Jul 29. 2021

여름에 수술하면 상처가 덧나니까 겨울에 할게요!

털북숭이 가족과 함께 살아가며 생기는 흔한 오해-11

진료를 보다 보면 수술이 꼭 필요한 순간들이 있어요. 수술의 이유는 당연히 털북숭이의 고통을 덜어주고 삶의 질을 올리며 수명을 연장시키기 위해서죠. 이러한 목적을 200% 달성하기 위해서 우리 수의사들은 여러 가지 사항들을 신경 써요. 마취 전 검사는 무엇을 할지부터 시작하여 마취 전 후에 어떤 약물을 쓸 건지, 어떤 종류의 마취제를 쓰고 수술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건지 등 수많은 것들을. 품종, 나이, 기저 질환, 수술 부위, 수술 시간 등에 따라 모든 것들이 달라지거든요.


그리고 당연히 털북숭이의 가족분들도 여러 가지를 신경 써요.(간혹 자기가 너무 유난 떠는 거 아니냐고 묻는 분들이 계시는데 전혀 아닙니다! 내 가족이 수술을 받는데 유난 떨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수술 전에 준비할 건 없는지, 수술 후 예후는 어떨지부터 시작하여 입원 기간 중에 더 필요한 건 없는지, 수술은 잘 될지, 마취에선 무사히 깨어날지 등 저희만큼 많은 것들을 신경 쓰세요. 런데 간혹 이런 질문을 하세요.

여름에 수술하면 상처 덧나지 않나요? 기다렸다 겨울에 할까요?


혹여나 살면서 깁스를 해보신 분은 이런 경험 있으실 거예요. 깁스 한 곳이 너무 가려워서 젓가락이나 자를 넣어서 긁기(하지만 시원하진 않음), 한 두 달이 지나 풀었더니 아마존처럼 자라난 팔이나 다리의 털. 그중에서도 특히 심한 건 바로 한 여름에 깁스에서 나는 꼬릿 꼬릿 한 냄새!

아마도 한 여름의 무더위에 분수처럼 샘솟던 , 깁스에 의한 햇볕과 통풍의 완벽 차단, 그리고 이 환장할 조합에 번창하는 세균과 곰팡이로 인한 냄새가 아닐까 싶어요. 비슷한 이유로 일보호자분들께서 여름에 수술하면 덧나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거고요.


하지만! 털북숭이들에겐 그런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털북숭이와 사람 간의 차이 때문이에요.


그 차이란 바로 !!!! 땀이 나지 않는다는 것!

아마 이런 얘기 들어보신 분이 계실 거예요. 강아지 고양이는 땀샘이 발바닥에만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더워 몸에서 땀을 흘리지 않는다고요. 하지만 엄밀히 얘기해선 틀린 말이에요.


땀 샘은 두 종류가 있어요. 하나는 우리가 흔히 더울 때 몸에서 땀이 뿜뿜 하는 땀샘(에크린 한선)과 귀, 겨드랑이와 같은 곳에서 특유의 냄새가 나는 땀을 분비하는 땀샘(아포크린 한선)이에요. 사람과 달리 대부분의 털북숭이들은 뿜뿜 땀샘이 발바닥에만 있기 때문에 덥다고 몸에서 땀을 흘리지 않아요. 하지만 냄새나는 땀샘은 전신에 있기 때문에 '땀샘이 발바닥에만 있다'라는 말은 잘못된 거예요. 그러니 앞으론 '에크린 한선은 발바닥에만 있다, 하지만 아포크린 한선은 전신에 있지'라고 하면 '(당황하며)어? 이 사람 뭐지? 수의사인가?'라는 시선을 받으실 수 있어요. 


실제로 한여름에도 며칠 동안의 붕대 후 벗겨보아도 전혀 짓무르지 않고 멀쩡한 아이들이 대부분이에요. 하지만 산유국 수준의 기름진 피부를 가진 아이이거나 이미 피부병을 앓고 있는 경우,  발바닥이나 발가락 사이를 감는 경우, 그리고 붕대가 귀를 막거나 침이 흘러 들어가기 쉬운 곳에 붕대를 하는 경우에도 피부 트러블은 발생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이런 경우 최소한의 기간만 붕대를 유지하고 그동안 자주 갈아주는 것이 좋아요.

(저도 얼마 전 제 환자가 발톱 바로 위에 종양이 생겨 발가락 절단술을 했는데요, 폭염의 날씨에 2주간 붕대를 하고 있었더니 주변 발가락 사이와 발바닥에 습진이 심해졌어요.ㅠㅠ 하지만 수술 부위엔 이상이 없어 실밥 제거 후 피부 치료를 하여 이젠 아무 문제없답니다!)


그러니 여름이라고 수술을 미룰 필요는 없어요. 제 아무리 피부병이 심해진다 한들 수술을 결정할 이유와는 비교할 바가 안 될 테니까요.


p.s.

제 개인적으로는 털북숭이 가족을 위해 이것저것 신경 쓰시면서 공부도 질문도 자주 하시는 분들이 오히려 고마워요. 간혹 제가 신경 쓰지 못한 부분들을 챙겨주실 때도 있기에 그를 통해 털북숭이와 저희 모두가 가 더 행복할 수 있다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죠. 그러니 너무 부담 가지면서 마음에 담아두지 마시고 궁금하신 것들, 뭔가 미흡해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는 주치의 선생님과 상의해 주세요.

(수의학은 3명이서 함께 가는 3인 4각 장거리 달리기예요. 환자, 보호자, 수의사 셋이서 같은 곳을 보고 발 맞추어 나가야 더욱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저는 굳게 믿고 있답니다!)







작가의 이전글 가수 분해 단백질 사료 vs. 단일 단백질 사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