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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케니 Aug 02. 2021

우리 수의사 선생님은 참 궁금한 게 많으셔.

털북숭이 가족과 함께 살아가며 생기는 흔한 오해-12

바야흐로 반려 인구 1,500만 시대!


반려동물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자연스레 동물 병원을 찾는 분들도 늘어나고 있어요.(물론 그 수 못지않게 동물병원의 수도 늘어나고 있죠.) 그러다 보니 물 병원과 관련된 기사들도 많이 늘어나고 있는데요, 안타깝게도 부정적인 내용들이 많은 거 같아요.

부르는 게 값이다, 병원마다 몇십 배 차이가 난다, 과잉 진료한다  수의사들의 도덕적 해이에 관련된 기사들이 많이 올라와요. 이런 기사들을 접할 때 참 속상하다가도 부끄럽고 답답하기도 해요. 물론 비난받아 마땅한 수의사도 있겠지만, 동물과 사람 치료의 차이 병원마다의 차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기사들도 많은 거 같거든요.


이런 '돈'과 관련된 많은 문제들을 가장 정직하고 올바르게 해결하는 방법은 결국 '효율성'인 거 같아요. 효율적으로 진단을 내리고 그에 맞는 정확한 치료를 하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소통'이 아닐까 싶어요. 실제로 있을 법한 이야기를 예로 들어볼게요.


한 보호자분이 털북숭이 가족을 동물 병원에 데리고 가선 이렇게 얘기해요.

"제가 결혼하면서 저희 부모님이랑 같이 살게 된 홍길멍(가명)이 계속 구토를 했대요. 진료 좀 봐주세요"

그럼 수의사는 보통 이런 것들을 묻죠.

"언제부터 구토했나요? 뭐 특별한 거 먹은 거 있을까요? 평소에도 구토가 잦았나요? 설사는 없고요? 활동성이 떨어지진 않았나요?"

하지만 이 보호자분은 전혀 모르세요. 그저 구토한다고 병원 데리고 가보라는 부모님의 말씀만 듣고 걱정돼서 데리고 오셨거든요.

"지금 저희 부모님이 연락이 안 되시는 상황이라... 그냥 알아서 검사해주세요."

자.... 그럼 과연 무슨 검사를 해야 할까요?

강아지가 구토를 한다고 하면 의심되는 질환 목록이 못해도 50개는 넘을 거예요. 이걸 확인하기 위해선 염증 수치, 간수치, 신장 수치, 췌장 수치, 호르몬 농도 검사, 복부 초음파, 복부 방사선, 흉부 방사선, 조영 검사 등등 수많은 검사들을 해야 하죠.(어이구... 이걸 다 검사하면 비용이.... 물론 처음부터 다 하진 않고 가장 자주 발생하는 질병을 찾을 수 있는 검사를 우선적으로 해보겠죠?)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정보만 더 주어졌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 삼겹살 드시면서 조금 주셨대요. 그 이후로 구토한다고 하던데요?"

그럼 가장 우선되는 검사를 먼저 할 거예요. 바로 췌장염 검사죠.(강아지들은 고지방식이를 먹으면 췌장염이 발생할 확률이 매우 높거든요!)

혹은

"어젯밤에 개껌 큰 거를 먹다가 컥컥거리면서 불편해하더니 그 이후로 계속 토해요"

그럼 식도에 이물이 걸렸는지 조영 검사나 흉부 방사선 촬영을 해보겠죠.


이렇듯 주어지는 정보많을수록 수의사들이 확인해보아야 할 것들이 줄어들게 돼요. 배운 티를 내서 말하자면 감별 진단 목록을 줄이는 거죠. (감별 진 목록이란 증상과 검사를 통해 의심되는 질병들을 나열한 것을 의미해요.) 즉 많은 정보가 주어질수록 감별 진단 목록을 조금 더 정확하게 그리고 줄여서 만들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많은 정보들을 수의사에게 제공해 주셔야 해요. 그래서 진료실에서 이런저런 많은 것들을 묻고 답하며 수의사들은 질병의 실마리를 찾게 돼요.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해요. 바로 전달 상의 오류인데요.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볼게.


위의 보호자분이 며칠 뒤 다시 오셨어요.

"선생님. 얘가 지난번에 처방받은 약 먹인 뒤로 구토는 바로 멈췄대요. 그런데 이제는 목에 피부병이 생긴 거 같다고 데리고 가보라고 하셔서요.

자, 그럼 이런 상황에 여러분이 수의사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당연히 목 피부를 인해 보겠죠.

어라? 그런데 목에 별 다른 이상이 없어요.

"목 어디에 피부병이 있다는 말씀이실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목 어디를 계속 긁었다던데..."


자,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사실 홍길멍이는 목 디스크가 있어서 목에 통증을 느낀 거였어요. 그런데 이걸 부모님께 '멍멍'거리며 말씀드려봤자 못 알아들으시죠. 그래서 어떻게 하면 통증을 해결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나온 결론이 바로 뒷다리로 아픈 곳을 열심히 긁는 거였어요. 목 뒤는 핥을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 동작을 보고선 길멍이의 가족분들은 '어라? 얘가 목이 가렵나? 피부병이 있나 보네.'라고 잘못 해석을 하신 거죠. 그래서 이걸 따님에게 전달한 거고 따님은 앞뒤 상황 모르고 수의사에게 피부병이 있다고 얘길 하셨고요.(실제로 일어난 일을 약간 각색해 보았어요.)


이처럼 털북숭이들의 '언어'보호자분들이 잘못 해석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 수밖에요. 쓰는 언어가 다른걸요. 그러다 보니 수의사에게 잘못 전달되는 경우가 많고 그로 인해 필요 없는 검사들이 진행될 수 있어요. 이런 게 결국 과도한 비용 청구로 이어지게 되죠.


두 가지 사례를 들어봤는데요, 이러한 이유로 수의사와 반려 가족 사이엔 많은 통이 필요해요. 물론 예상되는 비용에 대한 소통도 빠질 순 없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필요한 검사만 진행해서 진료비의 거품을 줄일 수 있게 해주는 소통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제가 진료실에서 보호자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거예요.(우리 병원 간호 선생님들께 하는 말이에요. 하하하. 너무 오래 걸린다고 하도 뭐라고들 해서요. 쳇.) 그러니 수의사들이 계속 꼬치꼬치 캐물어도, 여러분이 하신 말씀을 의심하듯 보여도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마세요.


질병의 실마리를 찾고 잘못된 해석을 밝혀내어 좀 더 효율적인 치료를 하기 위해서니까요!


p.s.-1


얼마 전 한 동화책에서 본 내용인데요, 아래 문장을 읽고 코끼리와 쥐 중 어떤 동물에 대한 설명일지 생각해 보세요.


몸은 회색이며 귀가 크고 꼬리가 몸에 비해 얇다.


무슨 동물일 거 같나요?

코끼리? 쥐? 너무나 다른 두 동물이 저 조건에 모두 부합하죠.

그렇다면 여기에 체중은 대개 1kg보다 가볍다는 내용이 들어가면 어떨까요? 혹은 코가 매우 길다라던가요.

이렇듯 정보는 많을수록 더 정확한 진단이 가능해요. 러니 주치의 선생님이 코끼리를 보고 쥐라고 진단 내리지 않게끔 도와주세요. 



p.s.-2


제목에 쓴 '우리 수의사 선생님은 참 궁금한 게 많으셔'는 한 보호자분께 들었던 말이에요. 노령인 아이가 설사한다고 하여 이런저런 것들을 여쭤보았더니 저렇게 말씀하시더군요. 그러면서 그냥 설사약이나 지어주면 되지 뭘 그렇게 꼬치꼬치 캐묻냐고 하셨죠. 나이 많은 아이라 혹여나 만성 신장 질환이나 종양 등의 다른 큰 문제 때문이진 않을까 걱정해서 여쭤본 거였으나, 과잉 진료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사람으로 보였었나 싶네요. 그럴 땐 빨리 퇴근해서 시원한 맥주나 한 잔 하고 싶어 지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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