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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케니 Aug 04. 2021

이젠, 보내줘야 할 때가 된 건가요...?

털북숭이 가족과 함께 살아가며 생기는 흔한 오해-13

'나의 털북숭이 가족이 늙어서 질병으로 너무 힘들어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혹시 이런 생각해 보셨나요?


아마 이 글을 읽고 계신 대다수의 분들에게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물음일 거예요. 그리고 제발 나에게는 이런 순간이 오지 않기를, 나이 들더라도 편안하게 잠다 혹은 내 품에서 편안히 숨을 거두기를 바라실 거예요.(진심을 담아 여러분들의 털북숭이가 최대한 늦게 그러한 순간을 맞이하기를 바래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비극은 한순간에 찾아와요.

사실 우린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아이들의 수명은 길어봤자 20년, 그러니 언젠가 털북숭이가 먼저 떠나는 순간이 오겠다는 것을 알고 있었죠. 하지만 머리로 알고 있다고 해 미리 준비할 수가 없어요. 머리는 준비가 될지 몰라도 가슴은 그렇지 않거든요. 사랑은 가슴으로 하니까요.


질병에 힘들어하는 작은 털북숭이를 바라보며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우린 고민하게 돼요. 생각하기도 싫은 그런 결정을 내려야 할지 말이에요.


물론 어떤 상황에서 그러한 결정을 내려야 할 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있어요. 진통제로도 잡히지 않는 통증이 있거나, 사지가 마비되거나 보행이 불가능한 경우, 더 이상 치료 효과를 볼 수 없을 거라 판단되는 경우 등 이죠.(세세한 기준은 국가, 병원 그리고 수의사마다 달라요.)


하지만 위의 상황이 되었다 하더라도  결정 내릴 수 없어요.

털북숭이가 너무 힘들진 않을지, 그저 며칠만 더 얼굴 보고 등 쓰다듬으며 너의 냄새를 맡고 싶을 뿐인데... 이 모든 게 다 내 욕심인가 싶다가도,

혹시 내가 너무 빨리 포기하는 건 아닌지, 떠나기 싫은 너의 등을 내가 억지로 떠미는 건 아닌지, 너도 조금만 더 나를 보며 내 온기를 느끼고 싶은 건 아닌지...

끝없는 고민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게 요.

 

이럴 때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주치의 수의사 선생님이에요. 나보다 내 털북숭이를 더 잘 아는 존재가 있다면 아마도 주치의 선생님뿐일 테니까요. 그리고 정말 안락사를 고려해야만 하는 상황인지 판단해 줄 유일한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수의사도 마찬가지예요. 오랫동안 돌봐온 환자라면 더욱 그럴 거예요.

털북숭이도 보호자도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데 내가 너무 욕심내서 붙잡고 있는 건 아닌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이들에게 내가 너무 섣불리 그런 결정을 권유하는 건 아닌지,

역시나 계속되는 고민에 빠져버리게 돼요.


결국은 수 차례에 걸 상담과 고민을 통해 우린 결론을 내리게 돼요. (그렇다고 고민이 끝나는 건 아니에요. 고민은 계속돼요.)

그렇게 내린 결론이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러니 그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절대 자책하거나 눈치 보지 마세요. 

털북숭이가 가장 사랑하며 믿는 존재인, 바로 '당신'이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을, 언제나 그래 왔듯 꼬리 치며 받아줄 테니까요.



혹시라도 이런 일을 겪으신 분이 계시다면 부디 힘내시기 바래요. 그리고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너무나 큰 빈자리에 분명 생각보다 크게 그리고 오래 힘드실 거예요. 하지만 너무 오래 힘들어하시면, 분명 무지개다리 건너편에서 당신만 바라보고 있 털북숭이도 힘들어할 거예요. 나 때문에 내 인생의 전부인 존재가 힘들어한다면 기분이 어떻겠어요. 그러니 털북숭이를 위해서라도 부디 힘내시기 바래요.)



p.s.


당연히 가족분들에 비할 바 못 되겠지만 주치의 선생님에게도 작은 위로 한 마디 부탁드려요.


오랫동안 보살펴온 아이를 제 손으로 떠나보내는 건 정말 너무 힘든 일이에요.


...


그렇게 너무나 아꼈던 아이를 제 손으로 보낸 뒤, 저흰 다시 또 웃으며 다른 아이를 맞이해 하거든요.


작가의 이전글 우리 수의사 선생님은 참 궁금한 게 많으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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