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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케니 Sep 03. 2021

동물 병원은 사람 병원처럼 분과가 나눠져 있지 않나요?

털북숭이 가족과 함께 살아가며 생기는 흔한 오해-19

강아지에 물리면 어느 병원을 가야 하지? 피부과? 내과? 가정의학과?


주제가 달라질 순 있지만 살면서 한 번쯤은 이런 류의 고민을 해 보게 돼요. 아무래도 관련 내용을 배우지 않은 사람으로선 충분히 헷갈릴 수 있죠. 다가 질병 자체가 여러 장기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많아서 어딜 먼저 가야 할지 애매한 경우도 많죠.


그런데 동물병원은 대개 그런 고민이 필요 없어요. 한 군데 가면 접종이나 사상충 예방과 같은 예방의학부터 과, 외과, 치과, 안과 등 모든 진료가 가능하니까요. 그런데 이런 편리함의 이면엔 전문성 부족이라는 의문이 생기기 마련이에요.


10년의 시간을 안과에만 집중한 사람과 모든 과에 집중한 사람 간에는 분명 진의 심도에 차이가 있을 수 있어요. 그래서 사람 병원은 오래전부터 분과 제도 및 전문의 제도를 도입하여 적용하고 있어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대형 병원의 경우 정형외과라 할지라도 어깨 전문, 손발 전문 등으로 더욱 세분화하여 나누기도 하고요.


동물 병원 업계에서도 점차 털북숭이 가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면서 자연스레 좀 더 수준 높은 진료에 대한 요구가 생기고 있어요. 거기에 발맞춰 이젠 수의과 대학에서도 여러 교수님들과 선생님들이 이러한 시스템을 정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계세요. 전문의 제도를 도입하여 수의학에서의 전문성을 높이고 인정받고자 함이죠.

많은 분들의 이러한 노력 덕분에 아마 머지않아 전문의 제도가 정착하게 될 거예요.


그리고 최근에는 대형 병원들도 많아져 한 병원에서 분과별 전문 선생님이 협업을 하는 곳도 요. 그리고 안과, 치과, 정형외과 등과 같이 한 분야만 보는 병원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어요. 이러한 좋은 변화를 통해 털북숭이들의 삶의 질이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렇지만 저는 앞으로도 계속 모든 과목의 진료를 보는 수의사로서 남아 있을 거 같아요. 


그 첫 번째 이유는 '수의학'이 가지는 치명적인 한계점 때문이에요.

사람은 몇몇의 애매한 경우를 제외하곤 본인이 어디가 아픈지 잘 아니까 처음부터 해당 병원을 골라 갈 수 있어요. 그런데 털북숭이는 다르죠. 아이의 어디가 아픈 지 보호자분이 정확히 아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꽤 많거든요. 다리가 아픈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허리가 안 좋다거나, 감기인 줄 알았는데 심장병인 경우도 있죠. 혹은 요새 들어 어딘가 몸이 안 좋아 보이긴 하는데 정확히 어디가 아픈 건 지 모르겠는 그런 순간들도 있어요. 그래서 모든 과목을 보는 사람도 필요하다 생각해요.


두 번째 이유는 '주치의'로 남고 싶어서예요.

오랜 기간 한 털북숭이를 치료하다 보니 그 아이 고유의 특성을 알게 돼요. 평소엔 귀 만져도 괜찮은데 농성 귀지 나올 때는 무는 아이, 겁이 많아서 방사선 찍을 때 꼭 소변을 보는 아이, 고관절이 안 좋아서 뒷다리 잡을 때 조심해야 하는 아이, 오랜 기간 입원 치료 때문에 혈관이 많이 상해 양쪽 뒷다리 발등에 가장 확보하기 쉬운 혈관이 있는 아이, 입원장에만 들어가면 침을 뚝뚝 흘리는 아이 등등. 정말 그 아이만의 독특한 디테일을 알게 돼요.

뿐만 아니라 내 환자가 언제 어떤 수술을 했는지, 평소 어디에 자주 문제가 생기는지, 현재 가지고 있는 질환은 무엇인지 등도 이미 알고 있어요.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털북숭이와 보호자분에게 훨씬 더 효율적이고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며 믿을 수 있는 진료를 볼 수 있어요. 저는 이 부분이 참 좋더군요.


세 번째는 '속도'가 다른 거 같아요. 아이들은 위급한 상태가 되기 전까지 티를 안 낼 때가 있어요. 그러다 보니 속도가 매우 중요한 순간이 많은데 여러 명의 전문의보단 한 명의 주치의가 훨씬 더 신속하게 상담, 검사 및 치료를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건 좀 이견이 있을 수 있겠네요.)


이런 저의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요. 주치의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죠. 하지만 종종 다른 전문 병원 혹은 대형 병원 수의사 선생님들께 환자를 보내기도 해요. 그게 최선일 때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죠.


그러니 여러분들도 Specialist 수의사와 Generalist 수의사를 조화롭게 활용해 보세요.(Specialist ; 한 분과의 전문가, Generalist ; 모든 분과를 보는 사람) 당신과 털북숭이 가족에게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거예요.

(아, 참고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저는 외과 전공이에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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