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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케니 Sep 04. 2021

어머, 선생님이 그렇게 싫어? 안에서 맞았어?

털북숭이 가족과 함께 살아가며 생기는 흔한 오해-20

물 병원 진료실에서는 수많은 대화가 오가요. 아무래도 털북숭이 상태를 제삼자인 보호자분의 견해를 통해 듣다 보니 이런저런 물을 것도 들을 것도 많죠.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털북숭이와 수의사에게 전혀 필요 없는, 오히려 기분만 상하고 믿음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말을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물론 그런 말을 별 악의 없이 농담처럼 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하지만 안 그래도 인터넷 상의 부정적인 여론 때문에 더 신경 쓰고 조심하는 수의사에게, 그리고 무섭고 가기 싫고 보호자랑 떨어지기 싫은 털북숭이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인 거 같아요.


어머, 얘 왜 이렇게 떨어? 선생님이 그렇게 싫어?


아이고, 얘 싫어하는 거 봐. 도대체 안에 들어가서 뭘 하신 거예요? 혹시 때리셨어요?


수의사 동물 병원 간호 선생님 중 손과 팔이 성한 사람은 거의 없어요. 아무리 저희가 조심해도 아이들에게 물리고 퀴고 몸부림에 맞아요. 그런데 물렸다고 아이들을 책망하진 않아요. '조금 더 조심할 걸, 이 아이는 겁이 많은 아이구나. 앞으론 좀 더 주의해야지.'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죠. 게다가 털북숭이들이 왜 이러는지 충분히 이해하거든요.


털북숭이들은 수의사와 처치 공간으로 들어가는 걸 싫어할 수밖에 없어요. 병원에서 행해지는 모든 행동들이 아이들의 건강을 위한 것이지 기분 좋게 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주사, 채혈, 검사, 수술, 입원 등 정말 하나도 아이들을 기분 좋게 해주는 게 없어요.

털북숭이가 미래 혹은 현재에 많이 안 아프게 하기 위하여 지금 당장 조금 아프게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이들은 이걸 이해하지 못하죠. 다리가 부러져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안 그래도 많이 아픈데 엄마 아빠와 떨어져서 더 아픈 과정을 거쳐야 한대요. 아이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아마도 이렇게 얘기할 거예요.

엄마, 아빠. 나 그냥 부러진 채로 살래요.


수의사도 동물 병원 간호 선생님도 아이들 무서워하지 않게 어르고 달래 가며 때로는 간식도 줘가며 노력하고 있어요. 이런 노력 몰라주셔도 괜찮으니 매서운 의심의 눈초리로 상처 주는 말들을 던지진 말아 주세요.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 수의사는 맞아 죽을 수도 있어요.(이건 좀 과하네요. 하하)

그리고 저희들도 털북숭이가 저희를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거 잘 알아요.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내 환자이지만 나를 싫어할 수밖에 없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나올법한 그런 비극이죠. 그러니 이럴 땐 이런 식의 위로와 격려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괜찮아, 너무 무서워하지 마. 선생님이 안 아프게 잘해주실 거야.


아빠 엄마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씩씩하게 치료 잘 받고 와, 알았지?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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