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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케니 May 09. 2022

아까 피검사했는데 초음파 검사도 굳이 해야 하나요?

털북숭이 가족과 함께 살아가며 생기는 흔한 오해-36

“선생님, 처음에 십 몇만 원짜리 혈액 검사했으니 이미 진단 다 나왔을 텐데, 왜 계속 다른 검사를 더 하자는 거예요? 검사비만 몇십만 원이 나오면 치료하는 데는 돈이 더 들 거잖아요? 이럴 거면 처음부터 얘기를 하시지 그러셨어요.”

털북숭이가 어딘가 아파서 병원에 오게 되면 ‘어디'가 아픈 것인지 찾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입에서 피가 나거나 귀를 긁을 경우 우리는 구강을 체크해보고 귀 안을 살펴보게 되죠. 이외에도 기침, 파행, 마비와 같이 특정 장기의 이상을 의심해 볼 수 있는 증상들이 있어요. 하지만 다른 증상 없이 오로지 밥을 안 먹고 기력만 떨어져 있는 경우도 있어요. 이를 우리는 비특이적인 증상이라고 하는데요, 딱히 어디가 아픈지 의심하기 어려운 증상을 의미해요. 그래서 환자가 비특이적인 증상만 보일 땐 질병을 찾기가 더욱 어려워져요.


최근 수의학이 발전하고 병원이 대형화되면서 지역 동물 병원에서 진행 가능한 검사의 개수가 굉장히 많아졌어요. 수의 학문 자체가 발전하기도 했지만 이전에 비해 고가의 장비에 많이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렇게 수많은 검사 종류 중 한 가지 검사로 털북숭이의 문제점을 단번에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이런 다양한 검사들은 각각 장점과 단점, 그리고 명확한 한계를 가지고 있어요.

초음파 검사를 예로 들어 볼게요. 초음파 검사에서 정상 콩팥은 탱글탱글한 강낭콩 모양에 안쪽은 하얗고 바깥쪽은 까만색을 뗘요. 하지만 노령성 변화가 진행되면 쭈굴쭈굴한 형태로 바뀌면서 크기가 줄어들고 바깥쪽 색깔이 점차 하얗게 변해가죠. 그렇다면 초음파 검사에서 신장에 위와 같은 노령성 변화가 관찰되었다면 이 콩팥은 현재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초음파 검사만으로는 이 콩팥이 정상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지 여부를 알 수 없어요. 혈액 검사와 소변 검사, 혈압 측정 등의 추가 검사를 해야지 신장의 기능을 정확히 알 수 있죠. 형태와 기능은 절대적인 상관관계가 성립되지 않거든요. 형태가 많이 망가졌어도 기능은 여전히 정상적일 수 있고, 형태는 정상이어도 기능은 많이 떨어져 있을 수 있어요.


이번엔 혈액 검사를 예로 들어 볼게요. 소변에서 피가 나오는 털북숭이에게서 혈액 검사 만으로 혈뇨의 원인을 찾을 수 있을까요? 99%의 확률로 찾을 수 없어요. 방사선 촬영이나 초음파 검사, 소변 검사 등을 진행해야 소변에서 피가 보이는 이유를 찾아낼 수 있어요. 방광 결석, 세균성 방광염, 방광 종양 등과 같은 혈뇨의 주된 원인은 혈액 검사만으로는 절대 찾을 수 없기 때문이에요.

예전에 저희 병원에서 슬개골 탈구 수술을 받은 비숑이 있었어요. 마취 전 검사항목으로 혈액 검사와 흉부 방사선 검사를 진행하였었고 그 당시 아무런 이상이 없어서 슬개골 탈구 교정 수술을 진행하였죠. 수술을 잘 마치고 짧은 입원 기간 후 퇴원을 하였는데, 집에 가자마자 갑자기 혈뇨를 보기 시작했어요.

“선생님! 수술하기 전에 검사했을 때 아무런 이상 없다고 하셨잖아요? 근데 왜 집에 오자마자 혈뇨를 볼까요? 입원하면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은 걸까요?”


검사 결과 이 아이에겐 방광 결석이 있었어요.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해서 결석이 하루아침에 생기는 건 아니니 아마 이전부터 가지고 있었을 거예요. 큰 수술을 받고 보호자와 며칠 떨어져 지내며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증상이 시작된 것이죠. 방광 결석이 있는 경우 대개 스트레스를 받고 난 뒤 처음 증상을 보이거든요.


이렇듯 한 가지 검사로 모든 이상을 알아볼 순 없어요. 다양한 검사를 통해 각각의 검사가 갖는 단점과 한계를 보완해야 정확한 진단이 이루어질 수 있어요. 그래서 나이가 많은 털북숭이의 건강검진을 할 때 혹은 건강이 많이 안 좋은 아이의 진료볼 때 혈액 검사와 소변 검사, 방사선과 초음파 검사 등을 폭넓게 진행하는 거예요. 이를 우리는 다른 말로 ‘스크리닝 테스트(Screening test)’라고도 해요.

아이가 아픈 곳을 못 찾는다는 이유로 현존하는 모든 검사를 다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돈과 시간, 그리고 환자의 스트레스가 불필요하게 늘어나게 되죠. 그러니 우선 체에 걸러내듯 정상인 부분은 제외하고 이상 있는 부분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스크리닝 테스트이에요. 이러한 선별 검사를 통해 문제가 있는 곳을 찾아내면 그 부분에 대한 정밀 검사를 시행하여 검사의 효율을 높일 수 있어요.


그래서 동물 병원에서 추가적인 검사를 권유하고 또 권유하게 되는 거예요. 특히 비특이적인 증사만을 보일 경우엔 추가 검사가 늘어날 확률이 더욱 높죠. 그렇다면 정황상 매우 의심 가는 질환을 선택적인 검사를 통해 진단해냈다면 그 이후 추가 검사는 불필요할까요? 그렇지 않아요. 진단 내린 후에도 더욱 세부적인 내용을 알기 위해 추가 검사를 해야 하는 경우도 많아요.


족발을 조금 먹은 이후로 사료를 안 먹고 계속 구토만 하는 요크셔테리어에게서 가장 의심되는 질환은 바로 췌장염이에요. 췌장염은 개 췌장 리파아제(cPL)라는 혈액 검사 한 항목으로 진단이 가능하죠. 그렇다면 cPL 검사를 통해 췌장염이 진단되면 그 이후로 추가 검사는 필요가 없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췌장염에 걸리면 혈전이 생기기 쉽고 담관이 막히거나 복막염, 당뇨 등과 같은 합병증이 생기기 쉬워요.(혈전 : 혈관 내부에서 혈액이 응고되어 굳어진 덩어리를 뜻함. 이러한 혈전은 혈관을 막을 수 있고, 그 위치에 따라 뇌졸중이나 심근 경색 등이 발생 가능) 또한 췌장염의 원인이 단순 식이성인지, 혹은 종양이나 농포(고름 주머니)가 생긴 건 아닌 지 알아보아야 하죠. 그래서 ‘췌장염’이란 사실을 알았어도 혈전 수치나 전신 염증 수치, 혈당 등의 혈액 검사를 추가로 체크하고 초음파 검사를 통해 췌장의 형태와 복막염의 유무를 확인해야 돼요. 이처럼 진단이 나와도 그 질병의 특성 때문에 추가적인 정밀 검사가 필요한 경우도 있어요.


그러니 여러분의 주치의 선생님이 검사가 하나 끝날 때마다 또 다른 검사를 권유한다고 해서 과잉 진료를 받고 있다고 오해하지 마세요. 오히려 과잉 진료를 안 하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가 더 들더라도 한 종류씩 검사를 차근차근 진행하는 거예요. 대기 시간이 조금 더 길어질 순 있어도 검사의 효율성이 좋아질 테니까요. 그리고 혹여나 과잉 진료인가 싶은 작은 의혹이 마음속에 자라날 땐 주저 말고 주치의 선생님께 추가 상담을 요청해 보세요. 의혹의 씨앗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크게 자라나기 때문에, 빨리 싹을 자르는 게 좋아요. 검사의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 듣고 납득하신 후에 검사를 진행하는 게 모두에게 훨씬 도움이 될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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