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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케니 Aug 24. 2022

내일 혈액 검사하기로 했는데, 금식해야 하나요?

털북숭이 가족과 함께 살아가며 생기는 흔한 오해-37


당신의 털북숭이는 동물 병원에서 혈액 검사를 한 적이 있나요? 아마 대다수의 털북숭이에게 이런 경험이 있을 거예요. 어릴 적 접종을 다 마친 뒤 그동안의 접종에 대한 성적표, 즉 백신에 대한 항체가 잘 형성되었는지 확인하는 ‘항체가 검사’를 할 때 대개 첫 혈액 검사를 하게 돼요. 혹은 중성화 수술 전 털북숭이의 신체가 마취를 잘 견딜 수 있을지 평가를 해야 하는데 이 때도 혈액을 이용한 검사를 하게 되죠.


그 뒤로는 정기적인 건강 검진이나 털북숭이가 아플 때 혈액 검사를 하게 돼요. 그리고 아마 당신은 주치의 선생님으로부터 혈액 검사를 하기 전에 일정 시간 금식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셨을 거예요. 그런데 왜 혈액 검사 전에 금식을 해야 하는지 아시나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도 진료 볼 때 이에 대한 설명을 자세하게 해 드린 적은 없는 거 같아요. 아마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기 때문일 거 같은데… 이번 기회에 없던 궁금증을 굳이 채워드릴게요. :)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저의 꼬꼬마 수의사 시절 생겼던 또 다른 궁금증 때문이에요. 당시 응급한 상황으로 오게 된 아이의 혈액 검사를 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라? 얜 금식이 안 되어 있을 텐데? 그런데 혈액 검사해도 되나? 혈액 검사 전에는 금식을 해야 된다고 배웠는데…’

사람도 1년 혹은 2년에 한 번 건강검진을 할 때, 전날 저녁 이후로 금식을 하잖아요? (이상하게 저녁 8시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말라고 하면 유독 야식을 먹고 싶어 져요… 저만 그런가요?) 털북숭이들도 마찬가지예요. 혈액 검사를 하기 전 적어도 12시간은 금식을 하는 게 좋아요. 그 이유는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어요.


첫 번째. 고지혈증에 대한 평가를 하기 위해서예요.


사람과 마찬가지로 털북숭이의 혈액에 지방(지질의 종류)이 많아지는 것을 고지혈증이라 불러요. 고지혈증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비만, 갑상선 기능 저하증, 쿠싱, 췌장염, 당뇨, 신장 기능 이상 등이 있죠. 그런데 이런 이상이 없어도 일시적으로 고지혈증이 나타날 수 있어요. 충분한 시간의 금식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이죠. 그렇기 때문에 금식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 다른 질환으로 인해 고지혈증이 생긴 것인지, 식사 후에 일시적으로 나타난 고지혈증인지 구분할 수가 없어요. 결국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다시 12시간 이상의 금식을 마친 뒤 재검사를 해야 하죠.


만약 고지혈증 환자에게서 위에서 언급한 다른 질환이 확인된다면 그 질환을 치료해서 고지혈증이 개선되는 것을 확인할 거예요. 하지만 금식을 충분히 했고 다른 질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지혈증이 있다면 우리는 이를 원발성 고지혈증이라 부르고 그 자체에 대한 치료를 해야 하죠. 털북숭이에게서 고지혈증은 췌장염, 간부전, 당뇨, 경련, 동맥 경화, 말초 신경 장애 등을 유발할 수 있거든요. 무시무시하죠?


두 번째. 고지혈증은 다른 혈액 검사 결과에도 영향을 미쳐요.


혈액의 지방 성분(지질) 중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가 있어요. 바로 콜레스테롤과 중성지질이에요. 그런데 이 중 중성지질이 높을 경우 다른 장기와 관련된 혈액 수치들에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혈액을 채취한 뒤 혈액 검사를 하기 전에 이를 원심분리기에 넣어 고속으로 회전시켜요. 그러면 빨간 액체였던 혈액 중 고체 성분(적혈구+백혈구)은 아래로 가라앉고 그 위로 투명하고 밝은 노란색의 액체가 분리되는데 이를 혈장이라고 불러요. 대부분의 혈액 검사는 이 혈장을 이용해서 진행해요.  


그런데 투명하고 밝은 노란색이어야 하는 혈장이 간혹 우윳빛깔로 보일 때가 있어요. 중성지질이 높을 때 이러한 특징이 나타나죠. 이렇게 하얗게 변한 혈장으로 혈액 검사를 진행할 경우 여러 수치들에 영향을 끼쳐요. 혈당과 신장 수치(BUN, 크레아티닌), 간수치(ALT, AST, ALKP, GGT), 췌장 수치(리파아제, 아밀라아제) 등 다양한 결괏값이 우윳빛깔 혈장으로 인해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이상을 보여요.  

다양한 색깔의 혈장(왼쪽부터 고중성지질, 정상, 황달, 용혈)

세 번째. 고지혈증은 적혈구를 쉽게 깨뜨려요. 전문 용어로 용혈이라고 하죠.


적혈구가 깨지는 질환이 몇 가지 있어요. 하나같이 다 심각한 질환들이죠. 혈관에서 유래하는 악성 종양이나 면역 매개성 질환, 바베시아 감염 등 치료가 까다로운 질환들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 역시 심각한 질환으로 인해 용혈이 생긴 것인지 고지혈증으로 인해 용혈이 발생한 것인지 감별하기 위해 추가적인 검사가 필요해져요.


이런 다양한 이유로 혈액 검사 전에는 12시간의 금식이 필요해요. 그러니 혹시 혈액 검사가 예정되어 있는데 주치의 선생님이 별 다른 얘기가 없으셨다 하더라도 금식을 해주세요! 조금 더 신뢰할 수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이제 혈액 검사를 하기 전에 금식을 왜 해야 하는지 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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