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고개' 놀이를 아시나요? 출제자가 제시한 단어를 해답자가 스무 번의 질문을 통해 맞히는 놀이이죠.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가 놀던 곳(?)에서는 ‘예/아니오'로만 답할 수 있는 질문을 해야 됐어요. 얼마나 창의적인 문제를 내느냐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얼마나 예리한 질문을 하느냐였죠. 20번의 질문이 끝나기 전에 정답을 맞혀야 하기 때문에 엉뚱한 질문으로는 도저히 정답을 유추해낼 수 없기 때문이에요.
수의사는 매일매일 털북숭이와 스무고개를 해요. 환자가 가지고 있는 질병이 스무고개의 문제라고 한다면, 병력 청취나 다양한 검사는 해답자가 던지는 질문과도 같죠. 질문의 답을 통해 우리는 스무고개의 문제, 즉 환자가 가지고 있는 질병을 맞출 수 있어요.
그런데 여기 작은 차이점이 있어요. 스무고개 놀이와 달리 진료에서는 질문의 개수가 제한되어 있지 않아요. 하지만 질문의 개수, 즉 검사의 종류가 늘어날수록 보호자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과 환자가 받는 스트레스가 늘어나요. 그래서 수의사는 최소한의 질문을 통해 정답을 유추해 내기 위해 노력하죠.
최소한의 검사를 하려면 우선 어느 부위에 이상이 있을지 예상을 할 수 있어야 해요. 스무고개를 할 때도 인물인지, 동물인지 식물인지 정도의 분류는 해줘야 맞출 수 있는 것처럼요. 아무런 힌트도 주지 않고 ‘이 털북숭이의 어딘가가 아픕니다. 진단을 내려보세요.’라는 문제를 받는 경우 우리가 해야 할 검사의 개수는 어마어마하겠죠. 하지만 ‘소변에 피가 섞여있습니다. 진단을 내려보세요.’라는 문제를 받는다면 비뇨기계에 국한된 검사를 하여 불필요한 검사를 줄일 수 있어요. 그래서 진료 초반에 보호자와 상담을 통해 어디가 아플 것으로 예상되는지 판단하고 그에 맞춰 어떤 검사를 선택적으로 진행할지 결정하게 돼요.
그런데 유독 강아지가 이 부위에 이상이 있을 때 보호자분들은 아이가 어디를 아파하는지 도통 감을 못 잡으세요. 아이를 안기 위해 평소처럼 들어 올리는데 갑자기 ‘깨갱'하며 난생처음 들어보는 비명 소리를 질러요. 그 이후 평소와 달리 구석에 들어가 잘 나오지 않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돌아다니죠. 혹은 집안 어딘가에서 갑자기 들려온 ‘깽’하는 비명 소리에 놀라 아이를 찾아보면 아이가 잔뜩 겁에 질려있어요. 하지만 떨어지는 소리도 안 났고 어디 부딪힐 만한 곳도 없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예전처럼 돌아다녀요. 마치 ‘소년탐정 김전일'에 나오는 완벽한 밀실과도 같죠. (소년탐정 김전일 : 고전 추리만화)
이러한 상황에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오신 분들은 다양한 증상을 호소하세요. 털북숭이의 어깨가 아픈 것 같다 혹은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다고 하시는 분도 계세요. 다리 어딘가가 아픈 것 같은데 어느 다리인지 잘 모르겠다는 분도 계셨죠. 도대체 이 털북숭이는 어디가 아픈 걸까요?
저는 이럴 때 꼭 빼먹지 않고 체크하는 부위가 있어요. 바로 허리예요. 일명 ‘디스크’라 불리는 질병이 있을 때 털북숭이들은 위와 같은 증상을 보여요.(디스크 : 추간판 탈출증을 의미하는 약어) 증상의 경중에 따라 심하면 두 뒷다리에 마비가 오기도 하지만 가벼운 디스크일 경우 운동 기능에 이상은 없이 통증만 유발하기도 하거든요.
위와 같은 증상을 보인적이 있다면 여러분의 털북숭이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MRI나 CT와 같은 정밀 영상 검사예요. 촉진이나 간단한 기구를 사용하여 진행하는 신경계 검사나 방사선 검사로도 디스크 질환의 가능성을 알아볼 순 있지만 정밀 영상 검사에 비해 정확도가 떨어지죠. 하지만 MRI와 CT 검사는 전신 마취가 된 상태로 진행되고 적어도 수십만 원의 비용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손쉽게 찍어보기 어려워요.
만약 심각한 통증이나 마비 증상을 보인다면 그때는 정밀 영상 검사를 진행한 뒤 그 결과에 따라 치료 계획을 세워야 해요. 디스크 질환은 마비가 오고 난 뒤면 골든타임이 생기기 때문이죠.(골든 타임 : 사고 발생 후 치료가 이루어져야 하는 최소한의 시간) 만약 모든 감각이 사라진 상태라면 12시간 이내로 수술을 진행하는 것이 가장 예후가 좋고, 48시간이 지날 경우 기능이 회복될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져 수술이 무의미해지기도 해요. 그러니 만약 한 밤중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MRI나 CT 촬영이 가능한 24시간 병원으로 아이를 데리고 달리셔야 해요. 낮이라면 주치의 선생님과 상담 후 관련 내용을 설명 듣고 주변 병원을 추천받을 수 있겠죠.
‘디스크가 터져서 마비가 될 정도면 그전에 알 수 있지 않을까?’
예민한 분이시라면 아이의 변화를 미리 눈치챌 수 있어요. 하지만 대개는 아무런 기척도 없이 갑자기 발생해요. 만약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알 수 없는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 혹은 나이가 많아지며 허리가 굽어지기 시작하여 마치 단봉낙타처럼 등이 휘어진다면, 허리 디스크를 앓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아요.
하반신 혹은 전신 마비가 되거나 뒷다리의 기능에 장애가 있다면 주치의 선생님과 상담 후 적절한 치료와 함께 관리 방법을 안내받으실 거예요. 그런데 만약 가벼운 디스크 질환이 의심되거나 진단받아 치료 없이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첫 번째는 안정을 취하는 거예요. 디스크가 발생한 경우 증상의 경중에 상관없이 최소 1달에서 2달간의 안정이 필수적이에요. 되도록이면 산책을 금지하고 과격한 행동을 멈추어야 해요. 특히나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다 증세가 심각해지는 경우가 많으니 되도록이면 높은 곳에 올라가지 못하게 하고, 올라가더라도 계단이나 경사로를 이용해 내려오는 것이 추천돼요. 참고로 계단이나 경사로는 길게 내려올수록 허리나 무릎 관절에 부담을 덜 주니 설치 가능한 최대한 긴 경사로나 계단을 사용해 주세요.
두 번째는 적절한 체중을 유지하는 거예요. 강아지에서 디스크 질환은 외부 충격으로 인한 것보다 유전적인 이상으로 생기는 경우가 더 많아요. 그래서 유전적으로 고위험군에 속하는 아이들은 체중을 정상 혹은 약간 가볍게 유지해주는 것이 좋죠. 대표적인 종으로 웰시 코기, 닥스훈트와 같이 다리가 유독 짧은 종들이 있어요. 또한 프렌치 불도그, 치와와, 페키니즈, 시츄, 비숑 프리제, 미니어처 혹은 토이 푸들, 코카스파니엘 등에서는 연골의 퇴화가 빨리 진행되는 유전성 질환이 빈번하게 관찰되기에 역시나 주의가 필요하죠.
마지막으로는 아이를 들어 올리고 안는 방법을 바꾸는 거예요. 바닥에 있는 털북숭이를 들어 올릴 때 주로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서 올리는 경우가 많아요. 혹은 앞다리를 잡고 번쩍 들어 올리거나요. 하지만 둘 다 좋지 않은 방법이에요. 항상 골반과 가슴이 동시에 지지될 수 있도록 양손을 이용하여 들어 올리는 것이 좋아요. 들어 올릴 때나 안고 있을 때 아이의 척추가 땅과 수평이 되도록 유지해 주세요. 그래야 털북숭이의 허리에 가해지는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어요.
이 외에 허리 디스크용 보조기나 허리에 도움이 되는 운동법 등 디스크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방법이 있어요.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아이의 상태에 따라 적용 여부 및 방식이 달라지기에 이 이상의 것들은 여러분의 주치의 선생님과 상의 후 진행하시는 게 좋아요.
허리가 안 좋은 사람은 평소 무거운 물건을 들지 않고 격한 운동을 최대한 자제해요. 심해지면 약을 처방받아먹거나 침 치료 혹은 수술을 받기도 할 거예요. 털북숭이는 허리가 안 좋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을 순 있어요. 아픈 뒤로 잠시 동안은 행동을 조심하거든요. 하지만 이렇게 무리한 행동을 자제하는 순간이 길지 않아요. 허리가 조금 낫는 듯싶으면 다시 예전처럼 신나게 뛰어다니며 허리를 혹사시키죠. 그러니 어쩌겠어요. 우리가 자제해 주어야 하는 것을. 아이의 건강은 여러분의 손에 달려있으니, 부디 끝까지 지켜주시기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