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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케니 Nov 28. 2022

슬개골 탈구 있는데... 산책시켜도 괜찮을까요?

털북숭이 가족과 함께 살아가며 생기는 흔한 오해 - 40

예전에는 매일 산책하는 강아지들이 그리 많지 않았어요. 강아지에게 '산책'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몰라서 그랬던 거 같아요. 뿐만 아니라 산책을 나간다 하더라도 도중에 강아지를 데리고 들어가 잠시 쉴 곳도 마땅치 않았고 강아지를 무서워하거나 혐오하는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도 한몫했겠죠. 


그런데 요즘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산책을 하는 아이들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어요. 이런 부지런한 보호자분들을 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더우나 추우나 안전하게 산책을 할 수 있도록 각종 아이템들이 개발되어있죠. 또한 개모차의 상용화로 이제는 보행이 불편한 아이들도 바깥나들이를 즐기게 되었어요.




간혹 우리 집 털북숭이가 '특정 이벤트' 후에 산책을 해도 되는지 궁금할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스케일링을 하고 퇴원하는 길에 조금 걸려서 가도 되는지, 중성화 수술을 하고 난 뒤 언제부터 본격적인 산책을 해도 되는지 등이죠.


수술을 한 직후에는 산책을 안 하는 게 좋아요. (아직 마취에서 덜 깨어나 비틀거리는 털북숭이를 산책시키실 분은 안 계시겠죠?) 전신 마취를 하면 심폐기능이 저하되어 전신의 장기 기능이 떨어져요. 그래서 정상적인 보행 능력이 돌아올 만큼 회복했다 하더라도 되도록이면 전신 마취를 한 당일은 푹 쉬게 해주는 게 좋아요.


특히나 '절개'를 동반한 수술을 했다면 5~7일은 집에서 안정을 취하게 해 주세요. 활발한 움직임으로 수술 부위에 붓기가 심해져 통증이 더욱 심해질 수 있어요. 특히나 대형견이나 고양이의 경우 수술 부위의 피부와 근육 사이 공간에 물이 차는 경우도 있고요. 또한 봉합 부위에 과도한 벌어지는 힘이 가해져 수술 부위가 잘 아물지 않는 유합 부전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 주의해주세요.


접종을 한 후에는 더욱 조심해야 돼요. 접종 후 무리하게 산책을 할 경우 접종 부위에 염증이 생기거나 심각한 과민반응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접종 후에는 2-3일 정도 안정을 취하는 것이 좋아요.




그렇다면 오늘의 주제인 슬개골 탈구가 있는 아이는 산책을 해도 될까요? 


사실 대다수의 보호자분들은 슬개골 탈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도 산책을 시켜도 되는지 묻지 않으세요. 그냥 다들 평소처럼 산책을 시키시죠. 대부분의 강아지들이 슬개골 탈구가 있다 하더라도 평소에 잘 걸어 다니니 딱히 산책을 제한할 생각을 안 하시는 거죠. 아니, 못 하시죠. 

그런데 사진 하나를 보시면 생각이 조금 달라질 수도 있어요.

슬개골 탈구로 닳은 관절면

이 사진은 4단계 슬개골 탈구로 수술을 받은 아이의 관절면 모습이에요. 하얀 원 안의 닳은 상처가 보이시나요? '슬개골 탈구'는 '슬개골'이라는 뼈가 비정상적인 경로로 이동을 하여 원래 위치에서 '탈구'되는 것을 의미해요. 그런데 탈구가 될 때 허벅지 뼈에 있는 작은 언덕(활차구 능선; Trochlear ridge)을 하나 넘어가게 되고 이로 인해 뼈에 비정상적인 마찰이 발생해요. 

슬개골 탈구 모식도

많이 걸으면 걸을수록, 슬개골 탈구가 심하면 심할수록 이곳의 마찰 역시 심해지게 되고 이로 인해 뼈가 긁히고 관절 내부에 염증이 생겨나요. 이렇게 시작된 관절의 염증은 퇴행성 관절염으로 발전하여 무릎 관절 내부의 모든 구조물에 퇴행성 변화를 일으켜요. 뿐만 아니라 십자인대가 끊어질 확률도 높아지게 돼요.


자, 그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죠. 슬개골 탈구가 있는 아이들을 산책시켜도 괜찮을까요?




슬개골 탈구는 무조건 수술을 해야 하는 질병이 아니기에 많은 아이들이 슬개골 탈구를 가진 상태로 지내요. ('내 아이 슬개골 탈구는 미끄러운 바닥 때문일까? 털북숭이 가족과 함께 살아가며 생기는 흔한 오해-02' 참조) 또한 보호자분의 의지로 수술이 추천되지만 수술 없이 지내는 아이들도 많죠. 이 모든 아이들에게 산책을 금지해야 한다면 많은 분들이 '삶의 질' '심리적 스트레스'에 대해서 말씀하실 거예요.


네, 저도 동의해요. 엄밀히 말해서 슬개골 탈구는 수명을 단축시키는 질환이 아니니까 너무 엄격하게 산책을 제한하는 것은 과한 처사일 수 있죠. 하지만 저렇게 관절면이 쓸리는 걸 알면서도 그저 아이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하루에도 몇 시간씩 무리한 산책을 시키는 건 잘못된 행동인 거 같아요. 그러니 어느 정도 선에서 절충안을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떨까 싶어요. 그건 바로...


'적정 체중으로 평지를 걷기'예요. 여기엔 3 가지 포인트가 있죠. 


첫 번째는 적정 체중. 정상 혹은 약간 마른 체형을 유지하면 관절에 부담이 훨씬 덜 가해져요. 그러니 산책 여부를 논하기 전에 우선 살부터 빼주는 게 맞겠죠!?


두 번째는 평지. 오르막을 걸을 때 평소보다 뒷다리에 더 많은 체중이 실리게 돼요. 그러니 이를 줄여주기 위해선 평지를 걷는 것이 도움이 돼요. 그러니 슬개골 탈구가 있는 아이와 함께 산을 오르지 마세요.


세 번째는 걷기. 대부분의 급성 관절 문제는 걷다가 생기지 않아요. 달리거나 미끄러지면서 혹은 뛰어내리다 발생하죠. 그러니 함께 속도를 맞춰 걷는 수준으로 산책을 시켜주시는 게 안전해요.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산책 시간. '적절한 산책 시간'이라는 건 아이들마다 달라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누군가는 15분을, 누군가는 30분을 이야기하죠. 중요한 건 증상의 유무예요. 15분 산책을 한 다음날 다리를 약간 불편해하거나 일어난 뒤 떠는 모습을 보이면 시간을 더 줄이는 게 좋아요. 


그렇다고 증상이 없으면 두세 시간씩 산책을 시켜도 된다는 건 아니에요. 티를 내지 않아서 그렇지 '탈구'가 일어나는 데 아프지 않을 리 없거든요. 아무런 증상이 없다 하더라도 슬개골 탈구가 진단되었다면 산책 시간을 30분 전후로 줄여주세요. 




염증으로 인해 변형된 뼈는 그 어떤 치료를 한다 해도 다시 원상태로 돌아갈 수 없어요. 그러니 심해지기 전에 미리미리 관리해서 예방해주어야 해요. 아이들의 '현재 삶의 질'도 고려해야 하지만 자칫 '미래 삶의 질'이 떨어질 수 있어요. 그러니 균형 있게 조절해주는 것이 털북숭이에게 더 좋을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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