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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케니 Jan 12. 2024

잠든 사자의 발바닥을 콕콕 찔러보았다. (2)

수의사의 추억 - 1

동물원 소속 동물 병원을 처음 방문한 날, 내부 시설 이곳저곳 둘러보던 나에게 한 수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황 선생님, 스컹크 방귀 냄새 맡아보실래요?"


...


과연 이 제안을 거절할 사람이 있을까?


어릴 적 보았던 만화에서 스컹크는 상대방의 얼굴에 방귀를 뀌어댔고 그 냄새를 맡은 악역 캐릭터는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기절하거나 도망치기 바빴다. 도대체 어떤 냄새길래 저럴까 궁금했었는데 그 냄새를 실제로 맡아볼 기회가 오다니, 역시 동물원에 오길 잘했다 생각했다.


"네! 좋아요!"


대답과 동시에 스컹크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나갈 채비를 하는 나에게 수의사 선생님은 동물 병원 구석에 놓인 냉동실에서 새끼손가락 만한 작은 통을 꺼내 나에게 건넸다.


"한 번 맡아보세요."


"이게 뭐예요?"


"스컹크 취선 제거할 때 들어있던 항문낭액 담아놓은 거예요."

(*취선 : 동물의 체내에서 악취가 나는 분비물을 분비하는 분비샘.)


뚜껑을 열고 코를 가까이 가져간 순간,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강력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시큼하면서도 구역질 나는 냄새였다. 냉동된 상태에서도 이렇게 심한 악취를 풍기는데, 갓 만들어진 따끈한 액체일 때의 후각적 파괴력은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나는 이제야 악역 캐릭터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며칠 뒤 어느 오후, 블로우 건(입으로 불어서 쏘는 마취총)을 챙기며 수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 사자 마취해야 되거든요? 같이 가실까요?"


사자를 마취한다고? 그럼 혹시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려 볼 수 있는 기회인가? 가슴속 깊은 곳이 간질거리며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인생에 다시없을, 평생 남들에게 자랑할 있는 경험이 것임을 직감할 있었다. 하지만 이땐 전혀 알지 못했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은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수의사 선생님 뒤를 쫓아 맹수 우리 뒤편으로 갔다. 그곳은 손님을 위한 공간이 아니어서인지 테마파크보다 훨씬 어두운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내 기억엔 영화에서 표현되는 흉악범들이 갇혀있는 감옥 깊은 곳의 이미지와 같다.) 그곳엔 손님들이 평소 보던 것보다 훨씬 많은 수의 맹수들이 저마다의 쇠창살 속에 갇혀 있었고 그곳을 담당하는 사육사님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엔 오늘의 주인공이 엎드려 있었다. 거대한 수사자였다.


갑자기 여러 사람들이 나타나 분주하게 무언가를 준비하는 모습에 경계심이 생겼는지, 사자는 10평 정도 되는 자신의 우리를 천천히 돌며 으르렁 거리기 시작했다. 쇠창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으르렁 거리는 사자를 두 눈으로 직접 보니 공포심이 엄습해 왔다.


어느새 준비를 마친 수의사 선생님이 사자를 향해 블로우건을 겨냥했다.


'훅!'


블로우 건이 발사되는 소리와 동시에 사자는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허벅지를 향해 빠르게 돌렸다. 바닥엔 어느새 산산조각 나버린 주사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주사에 맞은 건지, 아니면 날아오는 주사기를 입으로 잡아 부숴버린 건지 도저히 판단이 안 될 정도였다.


"맞았나요?"


수의사 선생님은 대답이 없이 사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더욱 화가 난 사자는 갑자기 벽을 밟고 뛰어오르며 더욱 큰 소리로 포효했다. 분을 삭이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우리를 위협하는 사자를 보니 창살을 뭉개버리고 나에게 뛰어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만큼 숨 막히는 순간이었다.


몇 분이 지나도 사자는 전혀 졸려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고 결국 두 번, 세 번의 추가 마취총을 발사하였다. 그로부터 얼마 뒤 드디어 사자가 잠들었다. 사육사님은 자물쇠를 풀고 문을 밀어젖혀 사자의 우리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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