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 우리의 철문을 열어젖히고 가장 먼저 들어간 사람은 사육사님이었다. 그 뒤를 이어 수의사 선생님도 곧장 우리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저들처럼 아무렇지 않게 뒤따라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무서웠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벽을 밟고 뛰어오르며 포효하던 사자가 죽은 듯이 잠들어 있는 지금의 상황이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생님, 들어오셔도 돼요."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수의사 선생님은 머뭇거리는 나를 향해 인자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이 전의 실습생들도 나와 같았던 모양이다.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짧은 호흡 정리를 한 뒤 철문을 통과하였다.
평소 동물원에서 관람객의 입장에서 마주했던 사자보다, 쇠창살 너머로 본 사자는 더욱 거대하고 무서웠다. 하지만 쇠창살도 없이 바로 눈 앞에 잠들어 있는 사자는 말로는 설명 불가능한 존재였다. 세상에 이런 존재가 있는데도 인간이 살아남았다는게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들 뿐이었고, 나는 깨달았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뽑는 건 정말 대담한 사람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리 대담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수의사 선생님 옆에 앉아 처치를 도우면서 내 머릿속은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첫 번째는, 혹시나 사자가 깨어날 경우 내가 과연 전속력으로 이 곳을 빠져나가려면 어디로 가야하지? 공포영화 클리셰처럼 조연이 온 힘을 다해 도망쳤지만 막다른 길에 막혀 절망에 빠지는 모습을 연출하면 안 될텐데... 두 번째는, 내 인생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이 기회에 나는 과연 무엇을 해야할까? 이빨을 들춰볼까? 수염을 뽑아볼까?아니면 백허그라도 해볼까?
그렇다. 그 어떤 것도 하지 못했다.
다행히 영화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았고 나는 그저 소심하게 사자의 발바닥을 콕콕 찔러보았을 뿐이다. 다른 것들을 하기엔 난 너무 겁이 많았다. 하지만 그 때 만져본 사자의 발바닥 패드의 느낌을 아직도 잊지 못 한다.
사자의 발바닥 패드는
....
오래된 소보로 빵 누르는 느낌일 뿐이었다.
...
뭘 기대한 내가 바보였다.
만약 무언가 새로운 걸 기대했다면, 당신도...
(하지만 아기 사자의 발바닥은 다르지 않았을까? 실제로 그 때의 느낌은, 나이 많고 산책 많이 한 강아지의 발바닥을 만지는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