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과 음악의 나라, 러시아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1877년 2월 20일 밤, 《백조의 호수》가 초연되었다. 37세의 차이콥스키는 객석 어딘가에서 무대를 지켜보았다. 그가 2년간 혼신의 힘을 기울여 완성한 작품이었다. 백조로 변한 공주와 왕자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에 아름다운 선율과 드라마틱한 오케스트레이션이 있었다. 그는 발레 음악의 역사를 바꿀 무언가를 만들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박수는 미지근했다. 다음 날 신문들은 냉혹했다. “음악이 너무 복잡하다.” “발레 음악치고는 지나치게 교향곡적이다.” “무용수들이 춤추기 어렵다고 불평한다.” 어느 비평가는 이렇게 썼다. “차이콥스키는 발레를 이해하지 못한다. 발레 음악은 춤을 방해하지 않는 배경음악이어야 한다.” 차이콥스키는 깊은 좌절에 빠졌다. 그가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너무 앞서갔을 뿐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발레 음악이란 무엇인가
19세기 중반까지 발레 음악은 천대받았다. 발레에서 주인공은 무용수였다. 음악은 그저 무용수들이 발을 맞추기 위한 박자 제공기에 불과했다. 작곡가들은 단순한 리듬, 예측 가능한 멜로디, 춤 동작을 방해하지 않는 가벼운 선율을 만들었다. 깊은 감정이나 드라마틱한 전개는 필요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작곡가들은 발레 음악을 ‘하급 장르’로 여겼다. 진지한 예술가라면 교향곡이나 오페라를 써야지, 왜 발레 음악을 쓰겠는가?
하지만 차이콥스키는 달랐다. 그는 물었다. “왜 발레 음악은 위대할 수 없는가? 왜 음악이 춤을 따라가야 하는가? 음악이 춤을 이끌면 안 되는가?” 그의 《백조의 호수》는 혁명적이었다. 각 캐릭터마다 고유한 음악적 주제(라이트모티프)가 있었다. 백조들의 순수함, 로트바르트의 사악함, 왕자의 고뇌, 흑조 오딜의 유혹, 이 모두 음악으로 표현되었다. 오케스트라는 교향곡 수준의 복잡한 화성과 정교한 관현악법으로 무대 위의 드라마를 증폭시켰다. 그러나 당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백조의 호수》는 고작 몇 번 공연되고 사라졌다.
포기하지 않은 작곡가
차이콥스키는 좌절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1889년, 그는 두 번째 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완성했다. 이번에는 더욱 야심 찼다. 프롤로그와 3막, 방대한 규모로 페로의 동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에서 차이콥스키는 《백조의 호수》에서 배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달랐다. 당대 최고의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가 함께 작업했다. 프티파는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이해했다. 그는 음악에 맞춰 춤을 만들었고, 때로는 차이콥스키에게 구체적으로 요청했다. “이 장면에서는 2분 30초의 왈츠가 필요합니다. 처음 8소절은 부드럽게, 그다음은 점점 빨라지게.”
차이콥스키는 놀라운 음악을 만들어냈다. <장미의 아다지오>, <릴라의 요정>, <왈츠>, 각 곡마다 빛나는 보석 같은 선율이 쏟아졌다. 이번에는 음울함 대신 우아함과 화려함이 지배했다. 동화의 마법 같은 분위기가 음악에서 흘러나왔다. 초연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성공은 몇 년 후에 왔다.
크리스마스의 기적
1892년, 차이콥스키는 세 번째이자 마지막 발레를 완성했다. 《호두까기 인형》이었다. 호프만의 동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크리스마스 이브 밤, 한 소녀의 환상적인 모험을 그린다. 차이콥스키는 이번에 특별한 악기를 사용했다. 파리에서 들여온 '첼레스타'였다. 맑은 종소리 같은 이 악기의 신비로운 음색은 <사탕요정의 춤>에서 마법처럼 울려 퍼졌다. 오늘날까지 이 선율을 들으면 누구나 크리스마스의 설렘을 떠올린다.
<꽃의 왈츠>를 들어보라. 차이콥스키 특유의 애수는 사라지고, 순수한 기쁨과 환희만이 춤춘다. 이 곡을 들으면 마치 눈송이들이 공중에서 춤추는 것 같다. 그런데 놀라운 것이 있다. 《호두까기 인형》에는 중국 춤, 아라비아 춤, 러시아 춤, 스페인 춤이 모두 등장한다. 차이콥스키는 각 나라의 음악적 특색을 완벽하게 포착했다. 러시아의 트레파크(러시아 전통 민족춤)는 발랄하고 에너지 넘치며, 아라비아 춤은 이국적이고 관능적이다. 그가 얼마나 넓은 음악적 팔레트(다양한 음악적 표현 수단과 기법)를 가졌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초연 반응은 또 미지근했다. 그러나 차이콥스키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라고 이미 알고 있었다.
죽음 이후의 부활
1893년 11월, 차이콥스키는 5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러시아를 충격에 빠뜨렸다. 장례식에는 6만 여명이 모였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그의 죽음 이후, 세 편의 발레가 진정한 생명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1895년, 전설적인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와 레프 이바노프가 《백조의 호수》를 재창조했다.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완전히 이해한 그들은 음악과 춤이 하나가 되는 안무를 만들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에서 초연된 이 버전은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2막의 ‘백조들의 춤’에서 32명의 무용수들이 완벽한 동시성으로 움직일 때, 차이콥스키의 현악 선율은 마치 달빛이 호수에 부서지는 것 같은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3막에서는 더욱 극적인 순간이 기다린다. 백조를 흉내 낸 흑조 오딜이 왕자를 유혹하는 장면이다. 발레리나는 한 발로 서서 다른 발을 채찍처럼 휘두르며 32번 연속 회전하는 '푸에테'라는 고난도 기술을 선보인다. 이때 차이콥스키의 음악은 점점 빨라지며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발레리나가 돌고 또 돌 때, 관객들은 숨도 쉬지 못한 채 숫자를 센다. 스물여덟, 스물아홉, 서른... 서른둘! 마지막 회전이 끝나는 순간 객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마침내 사람들은 깨달았다. 차이콥스키는 발레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발레가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발레의 새로운 시대
20세기가 열렸다. 1909년, 세르게이 디아길레프가 이끄는 발레 뤼스(러시아 발레단)가 파리를 강타했다. 그들의 레퍼토리의 중심에는 차이콥스키의 발레가 있었다. 유럽의 예술가들은 경악했다. “이것이 발레 음악이라고? 이것은 교향곡이다!”
니진스키, 파블로바, 누레예프 등 20세기의 위대한 무용수들은 모두 차이콥스키의 음악 위에서 춤췄다. 볼쇼이 발레, 마린스키 발레, 파리 오페라 발레, 로열 발레, 세계의 모든 발레단은 차이콥스키의 세 작품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다. 어느 발레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차이콥스키의 발레가 없었다면, 세계 발레단들의 레퍼토리는 반으로 줄어들 것이고, 재정 위기에 처할 것이다.” 《호두까기 인형》만으로도 크리스마스 시즌에 전 세계 발레단들이 수익을 올린다. 《백조의 호수》는 발레리나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가 되었다.
춤에 영혼을 불어넣다
차이콥스키는 무엇을 바꾼 걸까? 이전까지 발레 음악은 춤의 시녀였다. 차이콥스키는 음악을 춤의 파트너로 만들었다. 아니, 때로는 음악이 주인공이 되게 했다. 그의 음악은 캐릭터에게 성격을 부여하고, 장면에 감정을 입히고, 이야기에 깊이를 더했다. 《백조의 호수》의 비극적 사랑,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동화적 우아함, 《호두까기 인형》의 크리스마스 마법, 이 모든 것이 음악으로 완성된다. 무용수가 아무리 뛰어나도, 차이콥스키의 음악 없이는 그 진정한 의미가 전달되지 않는다.
발레 음악가이자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차이콥스키는 내게 발레 음악이 진정한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페트루슈카》는 차이콥스키가 열어놓은 길 위에서 탄생했다.
오늘 밤, 백조를 만나보라
만약 당신이 한 번도 발레를 본 적이 없다면, 《백조의 호수》 2막 만이라도 찾아보라. 유튜브에는 수많은 명연이 있다. 율리아 마하리나, 나탈리아 오시포바, 스베틀라나 자하로바 같은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들이 백조가 되어 차이콥스키의 음악 위에서 춤춘다. 오데트가 처음 등장할 때 흐르는 하프와 오보에의 선율, 그 순간, 당신은 음악과 춤과의 사랑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차이콥스키가 만든 마법에 걸려들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호두까기 인형》을 틀어보라. <꽃의 왈츠>가 울려 퍼질 때, 당신은 아이로 돌아간 것 같은 순수한 기쁨을 느낄 것이다. 차이콥스키는 말했다. “음악은 잠시나마 우리를 고통으로부터 구원한다.” 그의 발레 음악은 우리를 현실에서 해방시켜 꿈의 세계로 데려간다. 1877년 모스크바에서 실패했던 그 작품이, 오늘날 전 세계에서 매일 밤 무대에 오르고 있다. 차이콥스키는 죽었지만, 그의 백조들은 영원히 춤추고 있다.
"내가 진정으로 감동이 깃든, 내 내면에서 우러나온 무언가를 악보에 옮겼다면,
그것은 현악 사중주 일 것이다. 하지만 발레에서 나는 자유로웠다."
-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