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과 음악의 나라, 러시아
러시아에는 두 개의 태양이 있다. 하나는 네바강이 흐르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이고, 다른 하나는 붉은 광장 근처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이다. 25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이 두 극장은 러시아 예술의 정수를 담아내며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왔다. 한 나라에 이토록 거대한 두 개의 발레 극장이 공존한다는 것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문화적 현상이다. 프랑스에 파리 오페라가 있고 영국에 로열 발레가 있다면, 러시아에는 마린스키와 볼쇼이가 있다.
제국의 우아함: 마린스키의 탄생
1860년 10월 2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극장 광장에 새로운 극장이 문을 열었다. 알렉산드르 2세는 자신의 황후 마리아 알렉산드로브나의 이름을 따서 이 극장을 '마린스키'라 명명했다. 건축가 알베르트 카보스가 단 1년 만에 완성한 이 건물은 1,774석 규모로, 청색과 은백색의 빛을 기조로 한 내부 장식이 마치 겨울 궁전의 무도회장을 옮겨놓은 듯 우아했다.
하지만 마린스키의 역사는 그보다 훨씬 깊은 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 . 1783년 예카테리나 여제의 명으로 세워진 볼쇼이 카멘니(큰 돌 극장) 극장이 그 전신이었다. 제국의 수도에 자리한 이 극장은 글린카의 오페라 《차르에게 바친 목숨》(1836)을 초연하며 러시아 음악사에 한 획을 그었다. 1886년, 볼쇼이 카멘니 극장이 안전 문제로 폐쇄되자 모든 발레 공연이 마린스키로 이전되었고, 이곳은 명실상부한 제국의 제1극장이 되었다.
마린스키는 곧 러시아 발레의 성지가 되었다.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1892)과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이곳에서 초연되었고, 무소르그스키와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오페라들이 무대에 올랐다. 전설적인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가 이끈 마린스키 발레단은 고전 발레의 어법을 완성했다. 제국의 품격을 담은 순수하고 세련된 춤, 섬세한 손끝의 움직임과 우아한 상체 표현, 이것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일'의 본질이었다.
대극장의 부활: 볼쇼이의 여정
‘볼쇼이’는 러시아어로 ‘큰’이라는 뜻이다. 이름부터가 야심으로 가득했다. 1776년 예카테리나 2세의 허가로 시작된 볼쇼이의 역사는 화재와 재건의 연속이었다. 1780년 문을 연 페트로프스키 극장은 1805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1825년 '유럽 최대의 극장'을 목표로 재건되면서 비로소 '볼쇼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1853년 다시 불길에 휩싸였고, 1856년에야 현재의 5층 석조 건물이 완성되었다. 신고전주의 양식의 장엄한 정면 그리고 아폴론이 이끄는 네 마리 말의 청동 조각상이 있는 이 건물 자체가 러시아의 문화적 자존심을 상징했다.
그러나 19세기 내내 볼쇼이는 마린스키의 그림자 속에 있었다. 제국의 수도는 상트페테르부르크였고, 중요한 초연은 모두 마린스키에서 이루어졌다. 1877년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볼쇼이에서 초연 되었지만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작품이 진정한 명작으로 인정받은 것은 20년 후 마린스키에서 재공연되고 나서였다.
전환점은 혁명과 함께 왔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모스크바가 수도가 되면서 볼쇼이는 소비에트 문화의 최전선에 섰다. 특히 1964년 37세의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예술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볼쇼이 발레단은 폭발적 도약과 화려한 기교로 1960-70년대 세계 발레계를 석권했다. 마린스키의 우아함이 궁정의 춤이었다면, 볼쇼이의 역동성은 대중을 사로잡는 스펙터클이었다.
두 왕관, 두 가지 아름다움
두 극장의 차이는 단순히 지리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러시아라는 나라가 품은 두 개의 정체성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 대제가 서구를 향해 연 창문이었고, 모스크바는 러시아 정교회와 슬라브 전통의 심장이었다. 마린스키의 청색 무대는 발트해의 물빛처럼 투명하고 냉철했다면, 볼쇼이의 붉은 무대는 크렘린의 성벽처럼 뜨겁고 장엄했다.
발레 평론가들은 두 극장의 스타일을 이렇게 구분한다. 마린스키 무용수는 서정적이고 영혼이 깃든 춤을 추며, 디테일과 순수한 고전 테크닉을 중시한다. 볼쇼이 무용수는 무대 공간을 대담하게 활용하며, 극적인 표현과 기교적인 묘기로 관객을 압도한다. 마린스키가 '정확성과 순수함'을 추구한다면, 볼쇼이는 '카리스마와 극적 긴장'을 추구한다. 어느 쪽이 우월한가는 끝없는 논쟁거리지만, 발레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마린스키가 근소하게 앞선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국경을 넘어선 발레리노들
21세기, 이 역사적 무대에 한국인 무용수들이 이름을 새기기 시작했다. 1991년, 당시 15세였던 유지연이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학교에 외국인 최연소 입학 기록을 세운 것이 시작이었다. 1995년 마린스키 발레단에 입단한 그녀는 당시 유일한 외국인 무용수로서, 2009년 수석 캐릭터 무용수로 승급하며 2010년 은퇴할 때까지 러시아 무대에서 활약했다
현재는 김기민이 2011년부터 마린스키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2025년 6월에는 전민철이 세 번째 한국인으로 입단했다. 청색과 은백색의 우아한 무대에서 한국인 무용수들이 러시아 고전 발레의 정수를 선보이는 것은, K-문화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시대에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글로벌 팬덤을 구축했듯이, 한국의 무용수들은 가장 전통적이고 엄격한 클래식 발레의 세계에서 자신의 자리를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