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과 음악의 나라, 러시아
피아노 건반 위로 묵직한 화음이 떨어진다. 종소리처럼 울려 퍼지는 그 소리는 마치 시베리아 설원 위 외로운 교회의 종을 연상시킨다. 이어서 오케스트라가 장중하게 흐르는 선율을 노래하기 시작하면, 당신은 문득 깨닫는다. '아, 이 곡 어디선가 들어봤는데.'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다. 2015년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클래식 음악 1위에 오른 이 곡은,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명곡이다. 에릭 카멘의 팝송 'All by Myself'의 원곡이기도 하고, 마릴린 먼로의 영화 장면에서,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경기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이 선율과 마주쳐왔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음악이 절망의 심연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지옥의 재앙으로 불린 음악
1897년 3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24세의 젊은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교향곡 1번 초연을 지켜보고 있었다. 190cm의 거구에 열두 건반을 한 번에 짚을 수 있는 거대한 손을 가진 그는 이미 피아니스트로서 명성을 얻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작곡가로서도 인정받고 싶었다.
그는 일 년 내내 매일 일곱 시간씩 이 작품에 매달렸다. 악보 첫머리에는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 발췌한 구절들을 적어 넣을 만큼, 이 곡에는 그의 젊은 날의 사랑과 아픔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펼쳐진 것은 재앙이었다. 지휘자 글라주노프는 충분한 리허설 시간도 갖지 못한 채, 술에 취해 있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엉망진창이 된 연주였다. 그리고 뒤따라온 것은 평론가들의 잔혹한 혹평이었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wikipedia
러시아 5인조의 일원이었던 세자르 큐이는 이렇게 썼다. “만약 지옥에 음악원이 있다면, 이 곡은 지옥의 주민들을 기쁘게 했을 것이다.”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 모세가 이집트에 내린 ‘열 가지 재앙’에 비유되는 순간 라흐마니노프의 세계는 무너졌다.
3년의 침묵
그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당장이라도 쓰러져 발작을 일으킬 것처럼 3, 4년 동안 하루의 대부분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천재 피아니스트는 더 이상 작곡을 할 수 없었다. 한 음표도 쓸 수 없었다. 극심한 우울증이 그를 짓눌렀고, 자살까지 시도했다. 주변 사람들은 걱정했다. 이대로 러시아가 가장 재능 있는 음악가 하나를 잃게 되는 것은 아닐까?
1900년, 친구의 권유로 라흐마니노프는 정신과 의사 니콜라이 달을 찾아갔다. 음악을 사랑하는 아마추어 비올라 연주자이기도 했던 달 박사는 3개월간 그에게 최면요법과 자기암시 치료를 시행했다. “당신은 새로운 협주곡을 쓸 것입니다. 당신은 아주 잘해 낼 것이고, 그 협주곡은 정말 훌륭한 곡이 될 것입니다.” 달 박사는 최면 상태의 라흐마니노프에게 이 말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라흐마니노프의 마음에 다시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종소리가 다시 울리다
1900년 가을, 라흐마니노프는 다시 오선지 앞에 앉았다. 그리고 피아노 협주곡 2번의 작곡을 시작했다. 그가 가장 먼저 쓴 것은 2악장이었다. 느리고 서정적인 선율이고, 마치 긴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하는 것 같은 음악이었다. 이어서 3악장을 완성하고, 마지막으로 1악장을 썼다.
1악장 도입부의 그 유명한 종소리 같은 피아노 화음. 그것은 라흐마니노프가 어린 시절 러시아 정교회에서 들었던 종소리의 기억이자, 동시에 그의 긴 침묵을 깨는 부활의 신호탄이었다. 특이하게도 이 협주곡에서 피아노는 때때로 주인공이 아니라 오케스트라의 반주자처럼 연주한다. 그러나 그 겸손한 뒷받침이 오히려 오케스트라의 장엄한 선율을 더욱 빛나게 만든다. 마치 자신의 고통을 딛고 일어선 사람이 다른 이들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것처럼 연주된다. 곡은 단조의 어둠에서 시작해 장조의 빛으로 나아간다. 슬픔은 극복되고, 절망은 환희로 바뀐다.
1901년 11월 9일, 모스크바에서 라흐마니노프는 직접 피아노 앞에 앉아 초연을 했다. 연주가 끝나자 청중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그리고 그 박수는 멈추지 않았다. 연주 시간이 45분이었는데, 박수는 무려 1시간이나 계속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라흐마니노프는 글린카 상을 받았고, 명예를 되찾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다시 작곡가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감사의 표시로 그는 이 곡을 니콜라이 달 박사에게 헌정했다. 악보 첫 페이지에 새겨진 헌정사는 단순하지만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악마의 협주곡
자신감을 되찾은 라흐마니노프는 1909년, 또 하나의 걸작을 완성한다. 피아노 협주곡 3번. 이 곡은 2번과는 다른 의미로 전설이 되었다.
'악마의 협주곡'이라 불리는 이 곡은, 라흐마니노프 스스로도 “코끼리를 위한 곡”이라 말할 정도로 어려웠다. 초연을 해 줄 피아니스트를 찾지 못해 결국 자신이 직접 연주해야 했고, 헌정 받은 피아니스트 호프만은 “이건 나를 위한 곡이 아니다"”라며 평생 연주를 거부했다.
그런데 1928년, 25세의 젊은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이 곡을 연주했다. 라흐마니노프는 깜짝 놀랐다. 자신도 어렵게 느꼈던 그 곡을, 호로비츠는 마치 자신의 곡처럼 자유자재로 연주해 냈던 것이다. 라흐마니노프는 감격해서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항상 꿈꾸어 왔던 내 협주곡의 연주 방식이다. 지구상에서 이런 연주를 듣게 되리라고는 전혀 기대해 본 적이 없다.”
음악이 우리에게 말을 걸 때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이 우리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히 아름다운 선율 때문만은 아니다. 그 음악 속에는 절망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일어선 한 인간의 이야기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때때로 실패한다. 모두가 인정해 주기를 바랐던 일이 처참하게 무너질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순간,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이 우리를 짓 누른다. 하지만 라흐마니노프는 종소리는 다시 울릴 수 있고, 어둠은 반드시 끝나고 빛이 온다고 말한다. 그가 3년의 침묵 끝에 만들어낸 음악이 100년이 넘도록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당신이 이 곡을 듣게 된다면, 잠시 눈을 감아보라. 피아노의 묵직한 화음에서 종소리를 들어보라.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장중한 선율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당신의 마음 한구석에도 희망의 빛이 스며들 것이다.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은 그렇게, 오늘도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음악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아내는 영혼의 언어다." -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