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여인, 알 수 없는 시대

미술속의 러시아

by 이헌철
image.png 이반 크람스코이, 《미지의 여인》 Ⓒ트레챠코프 미술관

1883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이동파(Peredvizhniki, '순회전람회파')의 제11회 전시회장에 관람객들이 몰려들었다. 이동파는 20년 전 크롬스코이가 이끈 14명의 젊은 미술학도들이 황실 미술 아카데미에 반기를 들고 나와 만든 그룹이었다. 그들은 신화나 역사화 대신 러시아 민중의 삶을 그려서 작품을 들고 러시아 전역을 순회하며 전시했다. 당대 가장 진보적이고 사회의식이 높은 미술운동이었다.

그런 이동파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은 한 그림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겨울 저녁, 아니치코프 다리 위를 지나는 마차 위에 앉은 한 여인이 관람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검은 벨벳과 모피로 치장한 여인의 시선은 차갑고도 도전적이었다.

“마차를 탄 고급 매춘부다!” 당대 최고의 미술비평가 블라디미르 스타소프가 외쳤다. 다른 비평가는 더 신랄했다. “도발적으로 아름다운 여인이 벨벳과 모피를 두르고 호화로운 마차에서 당신을 향해 경멸적이면서도 관능적인 시선을 던진다. 이것이야말로 대도시가 낳은 더러운 존재들이 아닌가? 여성의 정절을 팔아 치장한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비천한 여자들이 아니고 무엇인가.”

민중의 고단한 삶을 고발하는 그림들 사이에서, 크롬스코이의 사치스럽고 도발적인 여인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처럼 보였다. 전시회장에는 젊은이들의 출입을 금지하라는 권고까지 나왔다. 러시아 최대 미술 컬렉터 파벨 트레챠코프는 이 그림의 구매를 단호히 거절했다. 화가 이반 크롬스코이의 《미지의 여인(Неизвестная)》이 일으킨 스캔들이었다.


대체 그녀는 누구인가

크롬스코이는 입을 다물었다. 그의 수많은 일기와 편지 어디에도 이 그림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녀가 누구냐”는 질문에 그는 캔버스를 가리키며 간결하게 답했을 뿐이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여인이오.” 사람들은 추측했다. 황제의 정부일까? 유명한 발레리나일까? 아니면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도스토예프스키의 나스타샤 필리포브나 같은 문학 속 인물인가? 어떤 이들은 그의 딸 소피아라고 주장했고, 어떤 이들은 알렉산드르 2세의 비밀 연인 예카테리나 돌고루카야라고 믿었다. 하지만 크롬스코이 자신은 정체보다 더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여자가 품위 있는 여자인지, 아니면 몸을 파는 여인인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 안에는 하나의 시대 전체가 담겨 있다.”

크롬스코이가 포착한 것은 19세기 후반 러시아 사회가 겪고 있던 근본적인 전환이었다. 전통적 가치가 무너지고, 새로운 여성상이 등장하며, 구질서와 신질서가 충돌하던 그 격변의 시기가 한 여인의 눈빛 속에 응축되어 있었다.

image.png 이반 N. 크롭스코이 Ⓒnamu.wiki


경멸받는 자의 경멸

그림 속 여인은 마차에서 약간 아래를 내려다본다. 크롬스코이는 교묘하게도 보는 이의 시선을 거리의 행인처럼, 즉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위치에 배치했다. 그 결과 여인은 거리의 군중을 내려다보며 도도하고 접근 불가능한 존재가 된다. 이것은 단순한 초상화가 아니었다. 크롬스코이는 개인과 군중의 대립을 그렸다. 사회가 경멸하는 여자가 그 사회를 향해 되돌려주는 경멸을 그렸다. 미술사학자들은 이 주제가 크롬스코이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반복된다고 지적한다. 고독한 개인, 군중과의 대결, 그리고 그 대결 속에서 드러나는 고통스러운 내면을 보여준다고 한다.

역설적이게도 크롬스코이 자신이 이 모순을 살았다. 젊은 시절 그는 황실 미술 아카데미에 반기를 든 반역자였고, 민중의 삶을 그리겠다며 이동파를 이끈 진보적 예술가였다. 하지만 1883년, 《미지의 여인》을 그릴 무렵 그는 명성의 정점에 있었다. 황제 알렉산드르 3세와 황후의 초상화를 그리던 궁정화가가 되어 있었다.

그는 여성은 순수한 어머니이자 아내로서 고도로 도덕적이고 영적이며 타락한 관능의 베일이 없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의 삶과 그림은 종종 그가 설파한 이념과 충돌했다. 순수함과 도덕성의 옹호자였던 그가 역사에 남긴 것은 관능적이고 사치스러운 《미지의 여인》이었다. 누가 그녀이든, 그녀는 고도로 도덕적인 인물의 상징처럼 보이지 않았다.


안나 카레니나와 블록의 알 수 없는 여인

흥미롭게도 크롬스코이는 톨스토이의 친구였다. 그가 톨스토이의 초상화를 그리던 바로 그때,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를 집필하고 있었다. 톨스토이는 크롬스코이의 성격을 바탕으로 소설 속 한 인물을 창조했다고 한다. 그리고 훗날 『안나 카레니나』의 여러 판본은 표지에 바로 이 《미지의 여인》을 사용했다. 2008년 구겐하임 미술관의 큐레이터 발레리 힐링스는 이렇게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일종의 안나 카레니나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특별한 느낌, 특별한 러시아다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1906년, 시인 알렉산드르 블록이 같은 제목의 시 『미지의 여인(Незнакомка)』을 발표했다. 블록의 시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레스토랑에서 저녁에 홀로 앉아 있는 한 신비로운 여인을 그린다. 현실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는, 그러나 시적 화자를 매혹시키는 그 여인, 20세기에 접어들면서 크롬스코이의 그림은 블록의 시와 결합 되어 러시아 문화의 아이콘이 되었다.

놀랍게도 소비에트 시대에 이 그림은 두 번째 전성기를 맞았다. 1960-70년대 러시아 아파트마다 이 그림의 복제품이 걸렸고, <미지의 여인>이라는 이름의 초콜릿까지 등장했다. 스캔들로 시작된 그림이 러시아 여성성의 상징이 된 것이다.

질문이 있다.

크롬스코이의 《미지의 여인》이 여전히 우리를 사로잡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녀의 눈빛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질문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은 사회가 부여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하는가, 아니면 자신만의 길을 걸어야 하는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것을 경멸로 되돌려줘야 하는가?

크롬스코이는 그림 속 여인이 누구인지 끝내 밝히지 않았다. 아마도 그녀의 정체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체현한 시대, 그 시대가 던진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우리가 여전히 서 있다는 사실이다.

140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회도 비슷한 질문 앞에 있다. K-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들은 순종적인 전통적 여성상과 자주적인 현대적 여성상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나쁜 여자"로 비난받으면서도 자기 길을 가는 캐릭터들은 대중의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는다. 크롬스코이의 그림이 받았던 것과 똑같은 반응이다. 어쩌면 《미지의 여인》은 특정 시대나 국가의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여성이 스스로를 정의하려 할 때마다 반복되는 긴장의 이야기다. 사회는 여성을 정의하려 하고, 여성은 그 정의를 거부한다. 그 대립 속에서 여성은 “미지의 존재”가 된다.

1883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아니치코프 다리 위, 마차를 탄 여인은 여전히 우리를 내려다본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차갑고 도전적이다. 그녀가 누구인지 우리는 여전히 알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녀의 힘이다.


image.png 이반 크람스코이, 달밤, 1880


image.png 이반 크람스코이, 책 읽는 여인(화가의 아내), 1866년경, 트레챱코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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