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핀의
'볼가강의 바지선 끄는 사람들’

미술속의 러시아

by 이헌철
볼가강의 바지선 끄는 사람들 Ⓒ트레챠코프 미술관

1870년 여름, 스물여섯 살의 화가 일리야 레핀(Ilia Repine)은 볼가 강변을 걷다가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열한 명의 남자가 가죽끈으로 묶여 바지선을 끌고 있었다. 그는 당시 휴가 중이었고, 귀족 친구들과 유람선을 타고 강을 구경하던 참이었다. 레핀은 충격을 받았다. 샴페인을 마시며 강의 풍경을 즐기는 사람들과, 짐승처럼 배를 끄는 사람들이 같은 강변에서 보이는 이 극단적 대비가 그를 괴롭혔다. 그는 귀족 친구들에게 말했다. "저것 보세요. 저들을 봐야 합니다." 친구들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레핀은 잊을 수 없었다.


image.png 일리야 레핀(Ilia Repine)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그들과의 만남

레핀은 다시 강변으로 갔다. 혼자서. 그는 부를라키(바지선을 끄는 사람들)들을 따라 걸으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직 군인이 있었다. 짜르의 군대에서 20년을 복무했지만 제대 후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술과 빚에 쫓기다 결국 이 일을 시작했다. 전직 사제도 있었다. 카닌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체구를 가진 남자였다. 교회에서 쫓겨난 이유는 확실치 않았지만, 그의 이마는 여전히 넓고 지혜로워 보였다. 열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금발의 청년도 있었다. 아직 얼굴에 앳됨이 남아있는 그의 눈빛은 슬펐다.

레핀은 그들을 스케치했다. 굽은 등, 해진 옷, 거친 손. 하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얼굴을 그렸다. 3년이 걸렸다. 레핀은 수십 번 구도를 바꾸고 인물을 수정했다. 처음에는 배경에 샴페인을 마시는 귀족들을 그려 넣었다가, 나중에 모두 지워버렸다. 부를라키들만 남겼다. 그들만으로 충분했다.


그림 속 사람들

1873년, 그림이 완성되었다. 가로 2.8미터, 세로 1.3미터의 거대한 캔버스에 열한 명의 남자가 가죽 끈에 묶여 강변을 걷고 있다. 맨 앞에 카닌이 있다. 그의 얼굴은 정면을 바라본다. 관객을 똑바로 쳐다본다. 그의 눈빛은 고통스럽지만 당당하다. 그 옆의 금발 청년은 가죽 끈을 조금 느슨하게 하려고 손을 집어넣었다. 목이 아픈 것이다. 맨 뒤에 한 남자가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있다. 잠깐의 휴식인지, 체념인지 알 수 없다. 그들의 옷은 누더기고, 발은 맨발이거나 찢어진 신발을 신고 있다. 피부는 햇볕에 그을렸고 등은 굽었다. 하지만 그들은 품위를 잃지 않았다.

이것이 레핀의 천재성이다. 그는 그들을 불쌍한 사람으로 그리지 않았다. 희생자나 동정의 대상으로 그리지 않았다. 그는 그들을 고통받지만 존엄한 인간으로 그렸다. 이것이 레핀의 천재성이다. 그는 그들을 불쌍한 사람으로 그리지 않았다. 그는 그들을 고통받지만 존엄한 인간으로 그렸다.


들리지 않는 노래

그림에는 담기지 않은 것이 있다. 소리다. 부를라키들은 일하며 노래를 불렀다. “에이, 우흐넴!, 요, 힘차게!” 이 노래는 《볼가의 뱃노래》로 알려져 있다. 천천히, 무겁게, 발걸음에 맞춰 부른다. 작곡가 밀리 발라키레프가 1866년에 이 노래를 채집했고, 나중에 라흐마니노프와 스트라빈스키도 이 선율을 사용했다. 왜 그들은 노래했을까? 어떤 사람들은 리듬을 맞추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노래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침묵 속에서 이 일을 하면 그들은 짐승이 된다. 하지만 노래하는 순간 그들은 다시 인간이 된다. 노래는 저항이었다. 그들은 고통과 굴욕에 노래로 말했다. "우리는 여전히 여기 있다. 우리는 여전히 살아있다."

레핀의 그림은 침묵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 침묵 속에서 들어야 하는 것은 바로 그 노래다.

반응들

1873년 5월, 그림이 처음 전시되었을 때 러시아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보수주의자들은 분노했다. "이것은 러시아를 모욕하는 그림이다!" 진보주의자들도 불편해했다. "너무 잔인하다. 이런 현실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는가?"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달랐다. 그는 그림 앞에 한참을 섰다. 그리고 이렇게 썼다.

"이것은 예술에서 진실의 승리다. 레핀은 러시아 민중을 모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존엄을 드러냈다. 이 남자들을 보라. 그들은 굴욕당하지만 굴복하지 않았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고통이 인간을 파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오히려 고통 속에서 인간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시베리아 유배지에서 그것을 배웠다. 레핀은 볼가강에서 그것을 목격했다.

차르의 둘째 아들이 그림을 3천 루블에 구입했다. 그림은 상트페테르부르크 궁전에 걸렸다. 아이러니다. 부를라키를 착취하는 시스템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 그 착취를 고발하는 그림을 산 것이다.

우리가 보는 것

오늘 우리는 그 그림을 어떻게 봐야 할까?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그것은 과거의 이야기다. 이제 부를라키는 없다.” 정말 그럴까? 세계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가죽끈에 묶여 있다. 빚이라는 끈, 가난이라는 끈, 절망이라는 끈에 묶여 있다. 우리 자신은 어떤가? 우리도 무언가를 끌고 있지 않은가? 직장이라는 바지선, 의무라는 바지선, 남들의 기대라는 바지선을 끌고 있지 않은가?.

레핀의 그림이 여전히 힘을 가지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19세기 러시아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조건에 대한 이야기다. 고통에 대한, 존엄에 대한, 저항에 대한 이야기다.

동정이 아니라 존경

레핀은 그림을 그린 후 이렇게 말했다. ‘나는 부를라키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 나는 그들을 존경한다.’ 처음에는 이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떻게 그런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을 수 있는가? 하지만 동정은 거리를 만든다. 동정하는 사람과 동정받는 사람과 위에 있는 사람과 아래에 있는 사람에 대한 동정은 그들을 객체로 만든다. 하지만 존경은 다르다. 존경은 평등을 만든다. 존경은 그들을 주체로 본다. 그들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보고, 고통받지만 결코 무력하지 않은 존재로 보는 것이다.

부를라키들은 피해자였지만 동시에 생존자였다. 그들은 끌리면서 동시에 걸었다. 그리고 그들은 노래했다. 그 노래가 그들을 인간으로 남게 했다. 침묵했다면 그들은 짐승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노래했다. 그래서 그들은 여전히 사람이었다.

1870년 여름, 스물여섯 살의 화가가 볼가 강변에서 본 것은 고통이었다. 하지만 그가 그린 것은 존엄이었다. 그는 인간이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일 수 있다는 진실을 드러냈다. 고통이 우리를 정의하지 않고, 우리가 고통에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중요하다는 진실이다. 부를라키들은 노래했다. 그것이 그들의 대답이었다. 우리의 대답은 무엇인가?

우리도 보이지 않는 바지선을 끌고 있다. 현대적인 가죽 끈으로 묶여 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노래하고 있는가? 우리의 노래는 무엇인가? 레핀의 그림이 15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를 움직이는 이유가 이것이다. 볼가강은 여전히 흐른다. 부를라키는 사라졌지만, 강은 흐른다. 그리고 강변 어딘가에서,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를 끌고 걷는다. 그러니 노래하자. 부를라키들처럼 고통 속에서도, 절망 속에서도, 가죽 끈에 묶인 채로도 노래하자.

노래하는 한, 우리는 인간이다. 노래하는 한, 우리는 여전히 우리다. 그것이 레핀이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동정이 아니라 존경을, 절망이 아니라 존엄을. 침묵이 아니라 노래를 하라고 외치고 있다. 그림 속 카닌의 눈빛이 여전히 우리를 바라본다. 150년의 시간을 넘어 그는 여전히 묻는다. “당신은 노래하고 있는가?”



image.png 레핀의 볼가강의 바지선 끄는 사람들 소장: 국립러시아미술관
image.png 톨스토이 초상 @트레챱코프 미술관
image.png 오! 자유 @트레챱코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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