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속의 러시아
1410년, 러시아 대지는 피로 물들었다. 몽골 타타르족의 침략이 계속되고 형제가 형제를 죽이는 내전이 끝없이 이어지던 시절이었다. 약탈과 학살, 불타는 마을과 절규하는 백성들, 죽음과 폭력이 일상이 된 그 어둠 속에서 한 수도사는 붓을 들었다. 안드레이 루블료프였다. 그는 세상을 향해 단 하나의 답을 내놓았다. 나무판 위에 황금빛 배경을 깔고, 세 천사를 그려 넣었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원을 그리며 앉은 세 존재, 성부, 성자, 성령이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고개를 기울이고 있고, 세상의 어떤 칼날도 범접할 수 없는, 고요하고 완전한 사랑의 교통이 있다.
이것이 바로 러시아 정교회의 <삼위일체> 이콘이다. 모스크바의 트레챠코프 미술관의 어둑한 전시실에 서면, 600년 전 그려진 이 그림 앞에서 여전히 사람들은 숨을 멈춘다. 세 천사의 몸짓이 만들어내는 원, 그 중심의 텅 빈 공간, 그 빈자리는 바로 우리를 위한 자리다. 사랑의 원무에 동참하라는, 천상의 초대장 같은 것이다.
그림이 아니라 쓰여진 것
러시아어로 이콘 화가를 '이코노피세츠'라고 부른다. '쓰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콘은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쓰여진다는 의미다. 성경이 문자로 쓰여진 복음이라면, 이콘은 색채로 쓰여진 복음이라는 의미이다. 중세 러시아의 수도원에서 새벽종이 울리면 이콘 화가들은 먼저 기도실로 향했다. 사순절에 준하는 금식과 기도로 시작해 마음을 비우는 작업이 먼저였다. 왜냐하면 이들이 만들어낼 이미지는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천상의 실재를 이 땅에 현현시키는 신성한 작업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콘 앞에 서면 먼저 당황하게 된다. 원근법이 뒤집혀 있다. 서양 회화에서 모든 선이 화면 뒤쪽의 소실점으로 모인다면, 이콘에서는 그 반대다. 소실점이 보는 이의 눈앞에 있다. 이것을 '역원근법'이라 부른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왜곡되어 보이던 이 기법의 의도를 깨닫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진다. 이콘 속 성인들이 우리를 향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 세계로 발을 내딛고 있다. 이콘은 창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천상을 엿보는 창이 아니라, 천상이 이 땅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창이다.
황금빛 침묵의 언어
20세기 초, 복원가들이 수 세기 동안 쌓인 그을음과 먼지를 걷어 내자 사람들은 경악했다. 음울하고 어두운 고대 회화라고 여겼던 이콘 아래에서 눈부신 색채가 드러났다. 황금색 배경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그것은 신의 빛, 영원의 찬란함이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곳, 죽음이 없는 세계, 성인들의 후광 역시 황금빛으로 빛난다. 루블료프의 <삼위일체>에서 세 천사의 옆모습을 둘러싼 완벽한 원형의 후광은 단순한 원이 아니라 신성한 광휘 자체다. 색채도 정해진 문법이 있다. 성모 마리아는 짙은 청색 옷을 입는다. 순결과 하늘을 상징한다. 그리스도는 청색과 적색 옷을 입는다. 신성과 인성, 하늘과 땅의 결합을 의미한다. 수도자들은 갈색 옷을 입고, 순교자들은 붉은 옷을 입는다.
모든 세부가 의미를 품고 있다. 손의 위치, 시선의 방향, 들고 있는 물건, 이콘 화가는 자유롭게 창작하지 않는다. '성화 견본집'이라는 책을 보며, 수백 년 전통이 정한 규범을 따른다. 성 베드로의 수염은 이렇게 생겼고, 세례 요한은 이런 자세로 서 있어야 한다. 흔히들 창의성의 부재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깊은 자유라고 생각한다. 자아의 욕망을 내려놓고 더 큰 진리에 복종하는 자유다. 루블료프는 정해진 틀 안에서 역사상 가장 완벽한 삼위일체 이콘을 창조해 냈다. 1551년 모스크바 공의회는 그의 작품을 '이콘 예술의 완벽한 표본'으로 선언했다.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비잔틴에서 모스크바까지
이콘 이야기는 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키예프 루시의 대공 블라디미르 1세가 비잔틴 제국의 공주와 결혼하며 정교회로 개종했다. 드네프르 강변에서 수천 명이 세례를 받았다. 그날, 러시아의 영혼이 다시 태어났다.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전래된 이콘 전통은 러시아 땅에서 독특하게 꽃폈다. 루블료프의 스승 페오판 그렉은 비잔틴 출신 화가였다. 그의 이콘은 강렬하고 금욕적이었다. 하나님의 심판과 두려움이 화폭에서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루블료프는 달랐다. 그의 붓끝에서는 자비와 평화가 흘러나왔다. 러시아 미술사학자 이진숙은 이렇게 평가했다.
"루블료프는 미천한 인간들의 어리석은 욕망을 질타하는 대신, 인간을 감싸 안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던 예술을 인간을 축복하는 예술로 변화시켰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었다. 천 년 제국 비잔틴이 무너지고 이슬람 제국이 들어섰다. 정교회의 중심지가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스스로를 '제3의 로마'라 선포했다. ‘두 개의 로마는 무너졌으나, 제3의 로마는 영원히 서 있을 것이다.’ 정교회의 마지막 보루라는 사명감 속에서 러시아 이콘은 더욱 찬란하게 빛났다.
성육신의 신학
왜 이콘을 그리는가? 8세기와 9세기, 비잔틴 제국은 성상파괴운동으로 찢겼다. 성상파괴론자들은 외쳤다. “신을 형상으로 만드는 것은 우상숭배다! 십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이콘이 불태워졌다. 교회의 벽에서 성화가 깎여나갔다. 하지만 성상 옹호론자들은 반격했다. 가장 강력한 논거는 '성육신'이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는 말씀이 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인간이 되셨다. 만질 수 없는 분이 만져질 수 있는 몸을 입으셨다. 그렇다면 그분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은 우상숭배가 아니라 성육신의 찬양이다. 다마스쿠스의 요한은 이렇게 썼다.
“옛날에 하나님은... 형상으로 표현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시고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셔서 사셨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의 보이는 부분을 형상으로 만듭니다.”
842년, 제7차 공의회가 소집되어 이콘의 정통성을 재확인하면서 논쟁은 끝났다. 사순절 첫째 주일은 '정교회 승리의 주일'로 정해졌다. 지금도 그날이 되면 정교회당에서는 이콘들을 들고 행렬한다. 이콘을 향해 입맞추는 것은 나무와 물감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다. 카이사리아의 바실리우스는 말했다. “이미지에 바쳐진 경의는 원형에게로 전달된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의 사진에 입 맞추듯, 이콘에 입 맞추는 것은 그 속에 계시는 그리스도, 성모, 성인들에게 사랑을 표하는 것이다.
폭풍의 세기
1917년 10월, 세상이 뒤집혔다. 붉은 깃발이 겨울궁전을 휘감았다. 볼셰비키 혁명이다. 무신론을 표방한 새 정권은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 선포했다. 교회들이 폐쇄되고, 곡물 창고로, 공장으로 바뀌었다. 수많은 이콘이 거리로 내던져지고 불태워졌다. 황금빛 천상의 창문들이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이콘 화가들은 지하로 숨어들었다. 공방은 비밀리에 운영되었다. 적발되면 시베리아 수용소행이었다. 일부 역사적 가치가 인정된 이콘들만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루블료프의 <삼위일체>는 그렇게 트레챠코프 미술관에 보존되었다. 더 이상 기도의 대상이 아니라 예술품으로 보관되었다. 아이러니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일어났다. 1941년, 나치 독일군이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해 왔다. 무신론자 스탈린이 블라디미르의 성모 이콘을 비행기에 실고, 모스크바 상공을 순회시켰다. 며칠 후 독일군이 퇴각했다. 이것이 전설인지, 사실인지는 모른다. 중요한 것은 절박한 순간에 러시아인들이 찾은 것이 이콘이었다는 점이다. 70년간의 혹한이 지나갔다. 1991년, 소련이 붕괴했고, 기적이 일어났다.
부활
페레스트로이카의 바람이 불 때, 러시아 곳곳에서 교회의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하고, 폐쇄되었던 교회 문이 열렸다. 먼지 쌓인 이콘들이 다시 빛을 보았다. 지하에서 활동하던 이콘 화가들이 공방을 열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젊은이들이 수백 년 전통의 템페라 기법을 배우겠다고 몰려들었다. 달걀 노른자와 천연 안료를 섞는 법과 금박을 입히는 법과 성화 견본집을 읽는 법을 익혔다. 더 놀라운 것은 방향이었다. 서구화된 19세기 이콘 양식을 따르지 않고 루블료프로 돌아갔다. 15세기 황금기의 순수함과 영성으로 역원근법과 영적 절제와 전통의 본질로 회귀한 것이다.
2000년대 들어 러시아는 새로운 이콘의 중흥기를 맞았다. 모스크바 다니엘 수도원, 트리니티-세르기우스 대수도원, 발람 수도원에서 이콘 공방들이 활기를 띠었다. 전 세계 정교회당에 공급할 이콘들이 제작되고 있다. 하지만 위기도 있다. 대량 생산된 인쇄 이콘, 전통 기법을 무시한 상업적 복제, 영성 없는 장식품으로 전락하는 경향에 진정한 이콘 화가들은 경고한다. “이콘은 예쁜 그림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마음 없이 만들어진 이미지는 이콘이 아닙니다.”
현대인에게 이콘은 무엇인가
스마트폰 화면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600년 전 나무판 위의 그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콘은 속도를 늦춘다. 조용하다. 처음에는 밋밋해 보인다. 하지만 앞에 오래 서 있으면, 무언가가 일어난다. 소음이 걷히고, 일상의 잡념이 가라앉는다. 세 천사가 만드는 원 안으로, 그 고요한 사랑의 교통 속으로 시선이 빨려든다. 어느새 당신도 그 원 안에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이콘이 하는 일이다.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참여시키는 것이다.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초대하는 것이다. 천상으로 난 창문은 일방통행로가 아니다. 우리가 저쪽을 보는 동시에, 저쪽에서 이쪽을 본다. 성인들의 시선은 항상 우리를 향해 있다.
정교회 가정에는 '이코노스타시'라는 이콘 코너가 있다. 동쪽 벽 모서리에 작은 선반 위에 그리스도의 이콘, 성모의 이콘, 가족을 지켜주는 성인의 이콘을 모신다. 촛불이나 등잔을 켜고, 아침저녁으로 그 앞에서 기도한다.
네델란드의 영성가 헨리 나우웬은 이 이콘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이 그림을 묵상한 책 『주님의 형상을 찾아서』에서 삼위일체 이콘을 묵상하면서 <사랑의 집으로의 초대>라 하였다. 그렇다. 이콘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두려움과 폭력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이 마련하신 사랑의 집이 있고 그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